중학교 진학 (9회)

강덕호 선생님은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수업도중에도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일어나는 일도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베트남 이야기나 베트남의 통일을 위해 싸운 호치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기억난다. 아마 우리가 분단되어 있으니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나라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6학년 담임은 김용우 선생님이었다. 이 분은 특별한 교육이념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는 분이었다. 다양한 능력이 많았는데, 학교신문도 내고 교가를 짓기도 했다. 교사로서 사명감이 높아 평교사인데도 헌신적으로 우리들을 교육하였다. 당시 초등학교에는 야간 자율학습 같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숭인초등학생 전 학년에게 수업이 끝나고도 밤 9시까지 자율학습을 시켰다.

한참 놀기 좋아했을 때라 우리들은 자율학습 공부를 하다가 선생님이 출장 때문에 학교 밖을 나가기만 하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축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불빛도 제대로 없는 운동장은 그야말로 컴컴했고 땅은 퍽퍽했다. 그렇지만 축구를 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는 별로 꺾이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공을 차고 운동장을 달리다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한골이라도 넣으면 그야말로 요란스레 소리를 지르며 웃어댔다. 그렇게 축구를 하면서 땀을 흘리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오면 또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숭인초등학교는 꽤 학교가 넓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땅의 반을 잘라서 미군부대가 사용하고 있었다. 학교와 미군부대 사이에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우리가 축구를 하고 있으면 철조망 뒤에는 구경을 하는 미군들이 있었다. 그들은 간혹 레이션(전투식량)이나 초콜렛을 던져주기도 했다. 특별히 크리스마스 때는 커다란 초콜릿읋 선물로 주기도 했다.

우리 반 친구들은 잘 놀기도 했지만 김용우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이었으니, 공부도 특별히 모범적으로 해야 했다. 체육시간이 되면 남학생들은 윗도리를 벗고 개울가까지 뛰어갔다 오도록 하는 체력단련도 시켰다. 우리반은 학생 수가 90명 정도 되었는데, 이 분이 담임이어서 우리는 꼼짝없이 도시락을 두개씩 싸고 다녀야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공부를 꽤 잘했다. 성적은 모든 과목에서 골고루 좋았는데, 다만 수학은 어려웠다. 고등공민학교에서 숭인초등학교로 한 학년 건너 뛰어 전학한 것이 문제였다. 다른 과목은 책읽기는 통해 극복할 수 있었는데, 수학은 기초과정을 꼼꼼하게 밟지 못해서 그런 건지 성적이 다른 과목에 비해 좋지 않았다. 다른 과목은 상위권이었으나 수학은 상위권 성적에 못미쳤다.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장을 받았다. 우등상 표창장과 함께 받은 상품은 놋쇠로 만든 밥주발이었다.

부모님의 뜻으로 들어간 수송중학교

중학교는 수송중학교에 들어갔다. 이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은 순전히 보모님의 뜻이었다. 1차에서는 나이가 많이 떨어지자, 아버지는 2차로 전기학교를 추천하며 그 중에서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수송중학교를 택했다. 당시 전기과가 있는 학교는 경성전기학교, 수송중학교, 한양공고 전기과 이 세 학교밖에 없었다.

▲ 1957년 중학교 친구 홍성완, 박충기와 함께

수송중학교를 택한 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수송’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집안에 형제들이 많으니 집에서는 뒷바라지를 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형들은 줄줄이 일반 중.고등학교를 다니거나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 뒷바라지에 지치셨는지 보모님은 내가 전기고나 상고로 가서 한전이나 은행에 취직하기를 바라셨다.

그때 이미 포천의 시골 땅을 거의 다 팔아서 가지고 온 돈은 바닥이 났고, 비단장사도 망해버려, 복덕방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였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암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복을 사 입어본 적이 없었다. 죄다 형들에게 물려받아 입었다. 옷이 크거나 하면 접어 입었고, 작아지면 작은 대로 입고 다녔다. 그런 점은 아쉬웠지만 형제 많은 집에서 그건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형들이 많으니 좋은 점도 많았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형들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특히 여섯째 형은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 싸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도움도 많이 받았다. 갈등이 생겨 형들하고 싸울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부대끼며 크는 가운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것 또한 많았다.

학교는 매일 걸어 다녔다. 미아리 집에서 학교가 있는 안국동까지 빨리 걸으면 1시간 20분 가량 걸렸다. 집에서는 차를 타고 다니는 줄 알고 차비를 주었다, 하지만 용돈이 없으니 나는 차비라도 아껴서 용돈으로 사용해야 했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네친구들과 함께 걸어 다녔다. 걸어 다니면서 장난도 많이 쳤다. 전깃줄에 새가 앉아 있으면 신고 있던 검은 운동화를 벗어 던져 맞추기도 하고,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이 보이면 얼른 뛰어가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축구를 많이 했다. 낡고 바람도 빠진 공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축구를 하기에는 충분했다.

장난기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고민도 많았다. 또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기에 용돈도 제법 필요했다. 그런데 걸어 다니면서 차비를 아끼는 것만으로는 늘 돈이 부족했다. 교회 회비도 필요하고, 책도 사봐야 했다. 또 가끔 친구들과 만나 빵이라도 사먹으려면 돈이 더 필요했다.

생각 끝에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집과 가까운 동네인 돈암동에 가서 신문을 돌렸다. 겨울저녁에는 찹쌀떡을 팔기도 했다. “참쌀떠억~”하고 골목을 다니다보면 앳된 목소리를 듣고, 창문을 열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골목길을 휘도는 바람에 매섭고, 추운 날씨에 손은 얼었지만, 떡을 팔고 곧바로 현금을 받는 장사에 재미가 붙었다.

신문배달은 1년 정도 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운동도 되고 할만 했다. 신문배달을 마치고 나면 집으로 와서 교복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었다. 집에서는 내가 신문배달하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식솔들이 많아 저마다 들락달락하니 새벽 일찍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집과 너무 가까운 동네에서 배달 일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신문 배달 일이 길어지자 점차 소문이 났다. 결국 이 소문을 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버지는 나를 불러 크게 혼을 내셨다. 변명조차 할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신문배달은 그 길로 접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