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와 <손에 손 잡고> (10화...

짐 실은 리어카를 끌 때 앞에서 끄는 사람도 힘들지만 뒤에서 미는 사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끄는 사람은 방향만 잘 조정하면 되지만, 뒤에서 미는 사람은 팔과 다리에 힘을 주어 언덕위에 올라갈 때 까지 잠시도 힘을 빼서는 안 된다. 계속 힘을 써서 밀어주어야 리어카가 뒤로 미끌어지지 않고 단숨에 언덕 위 까지 올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전면에 서 있는 연예인보다 더 힘든 것이 뒤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기획자, 작곡가, 연주자, 매니저 같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런 여러 사람들의 열정이 한 연예인에게로 집중되어 무명의 설움을 극복하고 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88서울올림픽에서 <손에 손 잡고>를 부른 코리아나의 경우, 나는 그들이 10대 초반일 때부터 어떻게 커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내가 직접 관여한 일이었고, 매니저나 기획자들이 어떤 열정으로 그들을 키워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 당시 한국은 달러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정부의 해외여행 규제가 아주 심하였다. 공연을 위해 나가는 예술인들도 절차가 까다로워 웬만해서 해외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할 때였다.

1967년 경 10대 초반의 어린이들로 이루어진 보컬그룹 코리아나가 미8군 무대에서 한참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코리아나의 매니저 김영수 씨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코리아나가 해외에 나가고 싶어 하는데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무슨 공연초청이라도 받은 거요?”

나는 현실적으로 그 청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았지만, 우선 해외에 나가려 하는 목적부터 알고 싶었다.

“유럽에 나가서 활동하고 싶어서요.”
“잠시 공연 차 나가는 게 아니라, 아예 유렵에 머물면서 활동을 하겠다구요?”
“국내 무대는 너무 좁습니다. 코리아나는 미8군 무대 활동만 가지고는 아까운 인재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가수들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경수 씨는 내게 매달리다시피 하였다.

“어려울 것 같은데요. 잠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장기체류인데다, 아직 코리아나는 어린애들입니다. 아마 비자 발급도 어려울 겁니다.”

당시 코리아나는 나이가 겨우 12세에서 14세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다.

내가 안 된다고 거절하자, 그 후에도 김영수 씨는 몇 번씩이나 찾아와 사정을 하였다. 나중에는 당시 코리아나 단장을 맡고 있는 김영일 씨까지 같이 와서 내 소매를 붙들고 늘어졌다. 참고삼아 말하면, 김영일 씨는 나중에 코리아나 멤버인 홍화자 씨의 남편이 된 사람이다.

아무튼 두 사람이 하도 사정을 하는 바람에 나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칙을 고수하면 코리아나를 해외에 내보낼 수 없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김영수 씨와 김영일 씨가 이구동성으로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코리아나는 대성할 수 있는 그룹입니다. 해외에 나가서 성공만 하면 운동선수 이상으로 국위선양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부에서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달러 때문에 해외여행조차 규제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코리아는 해외에 달러를 쓰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달러를 벌어들이려고 나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아주 열정적이었다. 나는 그 열정에 굴복하고 말았다. 특히 그들의 입에서 나온 ‘국위선양’이라는 말에 코리아나를 해외에 내보낼 수 있는 약간의 당위성과 명분 같은 것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실정은 해외에 나라 위상을 알리는데 관심의 초점이 가 있었던 것이다.

“알았습니다. 한번 노력해보도록 하지요.”

▲ 88서울 올림픽에서 손에 손잡고를 부르는 코리아나

그 뒤 나는 코리아나를 해외에 내보내기 위해 온갖 복잡한 공문서를 다 만들어가면서 노력하였다. 역시 나이가 어리다는 게 코리아나가 해외에 나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나는 ‘국위선양’이라는 이유를 가지고 상급자를 설득시키는데 주력했다.

이렇게 해서 일단 코리아나의 해외 진출 승인을 받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그 다음은 유럽비자가 문제였다. 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자발급을 받기가 수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틈새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방법을 찾으면 다 나오게 되어 있다. 결국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어렵게 코리아나를 해외에 내보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유럽에 진출한 코리아나는 처음에 많은 고생을 하였다. 겨우 10대 초반에 불과한 어린아이들인데다 체류비도 적게 가지고 나가서 먹기 살기조차 빠듯한 실정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더구나 유럽 여러 나라의 텃세가 심하여 어린아이들이 보컬그룹으로 활동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위스 한국대사관에서 공문이 날아왔다. 코리아나가 비자 연장 신청을 하러 왔는데, 현지에서의 활동도 변변치 못하고 미래의 희망도 불확실하여 귀국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자꾸 와서 졸라대니까 귀찮으니까 나에게 정식으로 코리아나의 소환절차를 밟아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스위스 한국대사관에 편지를 보내 계속 체류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좀 더 두고 보면서 코리아나가 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인정으로 호소를 한 것이다. 내가 이처럼 코리아나의 소환조치를 철회하고자 나선 것은 기왕에 특별케이스로 해외에 나갔으면 성공해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해외에 나가서 별로 활동도 해보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코리아나를 해외에 내보내자고 강력하게 주장한 나의 입장도 곤란해질 수 있었다.

코리아나는 그 후 계속 해외활동 무대를 넓혀가면서 성장하여 1982년에는 외국 신문에 기사가 나는 등 서서히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였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국내 신문기자들에게 외국기사를 받아 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시 일간 스포츠의 이상우 전무가 외국 신문에 난 코리아나 기사를 받아 실었고, 스포츠서울에도 기사가 나가면서 국내에서도 해외에서 활동하는 코리아나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상우(현재 굿데이신문 회장) 씨는 그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코리아나를 기사화 시켜주었다.

그때부터 코리아나는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에서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가 불려지게 되면서 그들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다.

<손에 손 잡고>가 나오게 된 것도 숨은 사연이 있다. 88서울 올림픽 준비 계획이 한창일 때, 김영수 씨와 김영일 씨가 내게 찾아와 말했다.

“이번 서울올림픽에 코리아나가 참여할 수 있게 힘 좀 써주세요.”
“내가 무슨 힘으로?”
“우리 코리아나가 해외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에 대해 거듭 감사드립니다. 이왕 키워주는 김에 이번 서울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나는 무슨 일이고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매듭을 지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코리아나가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결국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문공부에서 공연 담당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사람을 찾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나는 우선 당시의 88서울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 문화행사 본부장을 찾아가 코리아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나 혼자의 의견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문화행사와 관련된 여러 인사들에게 청을 넣어보시지요.”

본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화생사와 관련된 인사들을 열거하였다. 나는 곧바로 당시의 예술감독, 문화공보부 예술국장, 체육부 기획실장,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등등 여러 사람에게 코리아나를 추천하였다.

그들은 곧 코리아나에 대한 정식 검토를 시작하였고, 최종적으로 코리아나를 88서울올림픽 개회식 및 폐회식 문화행사 초청가수로 결정하였다. 노래는 영화 <탑건>의 음악을 담당해 유명해진 이탈리아 작곡가 조르지오 모르도가 맡았고, 작사는 김문환 씨가 지은 <손에 손 잡고>로 확정되었다.

88서울올림픽은 성황리에 끝났고, 그 후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는 오래도록 인기곡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코리아나가 본격적으로 국내 텔레비전 타기 시작한 것도 그때 부터였는데, 그 노래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나는 혼자 감회에 젖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