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는 일제시대 그 중에도 2차 대전을 치루는 와중에 어학을 한참 배울 나이에 중학교에 다니다보니 일반적으로 영어가 서툴렀다. 특히 농업학교를 다닌 학생은 거의 영어를 배우지 않은 것과 같으니 해방이 되자 다른 수학 같은 기초과목도 문제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영어가 특히 문제였다.
대학의 영어시간의 강의정도로 수준이 너무 높아 해석을 해주면 그것이 그런가 정도이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할 능력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영어를 배우려 해도 사설강습소가 서울에 1~2곳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이유야 어떻든 영어공부가 나에게는 시급한 문제이므로 겨울방학에 집에 내려가지도 않고 서울의 서울강습소에 다니면서 하숙집에 혼자 남아 공부를 하였다. 그 하숙집은 옛날 일본식 집으로 다다미만 깐채 겨울에 불을 때지 않았으므로 찬 방에서 공부하면서 한 겨울을 지냈다.
봄이 되어 날이 풀어지면서 나의 몸도 풀어지더니 항상 감기 기운이 없어지지 않고 몸이 노곤하고 불편하였다. 약을 복용해도 별 치료효과를 보지 못하였으며 이 병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입대한 후까지 계속되었다.
원래 나는 건강한 체질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렇게도 어려운 처지를 겪으면서도 소학교와 농업학교를 다니는 동안 별로 앓아 누워보지 못한 개근상짜리였다. 따라서 건강에는 자신이 있어 별로 개의치 않고 무리를 하다 보니 건강을 해치게 된 것이다. 항상 몸이 불편하나 학기시험 때가 되어 긴장을 하면 씻은 듯이 몸의 아픔이 없어져 그대로 학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2학년 때인 1947년 4월 21일에 일선 김 씨인 현재의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양가는 옛날부터 잘 아는 사이로서 집안 간의 중매에 따라 성혼이 되었는데, 나는 선이라고는 처가에 가서 저 멀리 옆모습을 약간 볼수 있게 앉아 있는 것을 한번 바라본 것이 전부였고, 결혼할 때까지 별도로 만난 일조차 한 번도 없었다.
결혼은 수원 고등동에 있는 처가에서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쓰고 우리나라 고래의 전통식으로 거행하였는데, 그 당시는 수원에 대용차가 별로 없어 처남이 겨우 구한 ‘쓰리쿼터’ 차를 타고 결혼식장에 갔다. 결혼식이 끝나고 영동으로 신행 갈 때는 축하하려는 동기생 학생들이 영동까지 떼로 몰려와서 성황을 이루었다.
그때 결혼식을 하였으나 양가 다 같이 패물이나 예물은 하나도 없었고, 요사이 흔해 빠진 금반지 하나 장만하지 못하였으나, 먼 훗날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끔 말하는 내자의 불평에 무슨 변명을 할 거리가 없어 그저 머리나 긁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리고 요사이 누구나 결혼식 후에 빠짐없이 신혼여행이라는 것을 꿈에 조차 생각하지 못하였다. 결혼식에는 충북학생 대표로 농공과의 이상용 군 등 여러 친구가 축사를 하였는데 그 중 영동농업학교 동창대표로 유군종 군이 다음과 같은 축사를 하였다.
- 축사 -
즐거움! 기쁨! 인간생활의 형용사 중에서 언제나 불러보고 싶은 이 말, 항상 그러하기를 원하는 이 상태.
움트는 새싹의 향기는 드높고 청명한 대기 아래 계수도 청명한 이 땅 수원. 산자수명한 계경에 무르녹는 이곳에서 가장 즐거운 인생의 새 출발의 첫걸음을 디뎌내는 친우 김재욱 군과 김갑수 양의 화촉의 성전을 올리는 이 마당에 즐거움을 나눠가질 수 있는 우리의 기쁨 또한 이를 바 없는 광영에 몸 둘 곳을 모르는 바이다.
삼동영설을 통과하고 국화가 양춘화기를 받아 오인이 심목을 태열케 하며, 천지의 소원을 노정하야 정원의 미관을, 동산의 화태를 제절가형 하며 녹록히 진화하는 생의 봄을 맞이한 이때 화창한 봄볕에 백화가 난만하고 창창한 훈풍에 군도도 화장하고만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대로 찾아온 춘절, 어김없이 유전하는 사계의 봄철을 맞아 삼라만상이 마음껏 생의 연동을 하고 있는 이때 귀댁이 건곤에 충만한데, 이십이 성상을 겪어 난만히 피어오른 한 떨기 채송화 송이에 심화하는 이십삼 세의 노봉이 꽃을 찾으니 달시한 일체의 화초가 즐겨 찾는 봉첩과 더불은 첩, 이 마당에 전개되는 양인의 호화판이야말로 인생의 축소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랑 재욱 군은 일찍이 그 관용한 도량은 만인을 포용하고 명석한 두뇌는 상하에서 정평이 있었으며, 원만한 인격은 타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지덕을 본받게 하였고, 명랑한 성격, 활달한 태도는 동문 기우들로 하여금 감격하여 마지않게 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지우 김재욱 군.
숙녀의 평은 근자에 그 이름을 떨치고 단정한 용모. 아름다운 인정은 마치 동방예의지국 숙녀의 상징인 듯, 하륙한 선녀인 듯한 신부 갑수 양!
요조숙녀 고이고이 자란 터에 호남아를 맞아 맺어지는 음양의 조화. 청실홍실의 굳은 맹세는 마주 푸는 귀밑머리가 백발까지 공생하라는 양인의 이 복된 자리를 받드는 우리의 감격이야말로 필설이 그 능함을 다하지 못하는 바이다.
천금의 보옥도 임자를 만나 더욱더 광채를 내는 것이며 칠십 근의 청용도로 명장의 손에서만 혼, 오를 전율케 하였습니다.
천하고금 만사가 가상하거늘, 어찌 대봉 재욱 군에 배하는 숙봉 갑수 양의 금일부터가 그렇지 않을까 의심하리요.
금일의 일기와도 같이 화창한 인간 동원의 건설은 불분가지일 것이요, 신랑 후일의 대성은 신부 금일의 숙행으로 더불어 더욱 빛나리라는 것을 더욱 믿어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
신랑 재욱 군이여 그리고 신부 갑수 양!
머리를 들어 사방을 보시라.
평온한 저 들판 건너 푸른 물이 흐르고 다시 산이 있고, 계곡이 있습니다.
가시덤불도 우거졌고, 화초도 푸르며 아름다운 꽃도 피어있습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들으시라. 신의 섭리대로 자연의 수레는 쉴새 없이 전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의 새 항로는 그대들의 앞동산에 핀 춘화와도 같으며 뒷 숲속에서 노래하는 뭇 새와도 같은 심경일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뱃길에는 강도 건너야 할 것이요, 모진 뇌우를 만나 풍랑에 시달리기도 할 것입니다.
-중략-
이 성스러운 과제를 이행하는 자리에서 신랑신부의 천수만복을 진심으로 빌어마지 않습니다.
저 독대 상위에 알밤같은 호걸 아들과 대추같이 어여쁜 딸들이 만당할 것을 아울러 빌고 금년이라도 곧 조국 완전자주 독립되는 날 장남의 생남례 축하초대장이 있기를 지금부터 고대하며 축하의 말씀을 그치겠습니다.
단기 4281년 4월 31일
영동공립농업학교 동창생 대표
성균관대학 유군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