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행정’이니 ‘예술경영’이니 하는 말이 나오기도 훨씬 전에는 실무자 위조로 일이 진행되었다. 요즘처럼 분야가 많아서 공무원도 각자 전문 분야의 일만 하면 크게 번거로울 일이 아니지만, 1970년대만 해도 행정이 그저 주먹구구식이어서 웃지 못할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보통 한 사람이 여러 분야의 일을 담당하게 되다보니, 행정 업무가 복잡하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뜻하지 않은 돌발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실무자 선에서 즉각즉각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1970년대 초반에는 예술정책을 다루는 주무 부서인 문화공보부 관계 공무원들까지도 학문적으로 체계적인 예술 행정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식적인 판단으로 우선 시행을 하고, 그 뒤에 수습을 하는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행정을 다루어왔다. 전문 예술행정가라기보다 일반 인문대학 출신이면 무난하게 다룰 수 있는 분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에 공연법이나 음반법만 하더라도 일제 강점기의 것을 그대로 번역해 사용할 정도였으니,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더구나 문공부는 정책을 수립하는 최고의 상급기관이기 때문에 각 시도의 해당 기관에서 수시로 법적인 해석이나 행정지도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주무 부서인 문공부 공무원은 질의에 대한 답변을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
|
| ▲ 문공부 재직 시절 작곡가 박시춘 연예협회 이사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으며 |
|
1973년 어느 여름 날, 부산시 공보실에서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공연장을 짓는데 현행 공연법에 의하면 학교와의 거리가 300미터 밖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직선거리로 측정하는 것인지, 골목길을 따라 곡선거리까지 포함하여 측정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때 나는 검토한 후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며 일단 그 답을 유보해 둘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른바 ‘최상급 기관’에서 전문가라고 지칭하는 입장에서 차마 그렇게 말하기는 싫었다. 또 다른 일로 바빠서 얼른 전화부터 끊고 싶어서 상식선에서 말이 나오는 대로 대답하였다.
“직선거리로 300미터입니다.”
그 다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확실한 것도 모르고 잘못 가르쳐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급히 공연법 규정을 살펴보니, 직선거리와 곡선거리의 구분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부랴부랴 공연법 시행령에 있는 300미터 거리 측정 방법의 오해 요소를 시정, 국무회의까지 통과시켜 직선거리로 300미터라는 것을 명시한 완벽한 제도를 만든 적이 있다.
|
|
|
|
| ▲ 초원의 집을 경영하던 안병균 씨는 나중에 나산그룹을 키워낼 정도로 큰 기업가가 되었다 (동아일보 1994. 11.14.) |
|
|
|
이처럼 당시의 공연법이라는 것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어서, 행정 업무를 보는데 애로가 많았다. 그래서 불편한 법을 점차 개선해가면서 일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공연법에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공연할 때는 필히 문공부의 승인을 얻게 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서울시나 지방도시의 조그마한 카페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공연하는 외국인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문공부에 공연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현재 나산그룹의 안병균 회장은 당시 종로에 있는 <초원의 집>카페 사장으로 있었는데,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문공부 공연과에 들러 그때마다 바뀌는 외국인 공연 허가를 받곤 하였다. 그때 나는 예술행정의 정책을 수립해야 할 중앙정부에서 일개 요식업소에서 일어나는 요식행위에 해당하는 행정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 공무원으로서 조그만 권한이라도 더 누려본다는 의미에서 그대로 방치해두기도 하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설픈 행정이 아닐 수 없다.
나산그룹 안병균 회장은 몇 년 전인가 서울대학교 기숙사를 짓는데 30억 원인가 하는 거금을 희사했다고 들었다. 30여 년 전 외국인공연 허가를 받기 위해 문공부를 드나들던 그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