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월에 김호진 교수님은 현재의 농촌진흥청의 전신인 농업시험장의 장장으로 영전하시고 그 후 1949년 11월에 중앙농업기술원의 부원장이 되셨다.
1947년에 그 당시 명강의로 인기가 높았던 이춘녕 교수님이 연구차 미국에 가시고 유지관계를 전공하였으나 모든 분야에 결처 다재다능 하셨던 최경상 교수님이 김호진 교수님이 가신 뒷자리인 과장을 맡게 되었다.
김호진 교수님은 농업시험장과 중앙농업기술원에 가신 후에 해방 후의 혼란 속에서 여러 가지로 바쁘신 기관장으로 계시면서도 학생들을 위하여 시간을 맡으면서 강의를 나오셨다.
그 당시는 교수부족도 있고 하여 교수에 따라서는 가끔 휴강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또한 서울대학교 설치에 대한 소위 국대안 반대도 있고 하여 강의가 계속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김호진 교수님의 강의는 여간해서 빠지는 일이 없었고, 부득이한 공무로 그 시감에 강의를 하지 못하시면 반드시 사전에 보강시간을 정해주셔서 틀림없이 그대로 이행하셨다.
교수님이 강의에 대하여 얼마나 엄격하였던가 하는 것은 후에 교수님이 작고하시기 직전에 서울대학부속 병원에 계실 때 강의를 몇 시간 못하시게 되자 같은 과의 이계호 교수를 불러 이미 강의를 하신 곳을 어김없이 지적하시면서 다음날부터 대강()하라는 지시를 내리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6.25사변 전후의 강의는 교과서는 별도로 없이 교수가 노트를 만들어 그대로 읽고 설명하는 식이었는데, 교수님의 강의 육성은 카랑카랑 하시고 쨍쨍 울리는 것이었으나 다른 교수에 비하여 노트를 읽는 속도가 어떻게나 빠른지 학생들이 처음에는 거의 받아쓰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때 필기를 놓치면 참고서도 별로 없을 때라 다음의 시험 때를 생각할 때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필기를 미처 하지 못하여 빠트린 곳을 메우려고 이 친구 저 친구의 노트를 기웃거려봤자 대동소이하게 그 부분은 공백이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매사에 그러하셨으나 특히 강의에 더 엄격하셔서 강의시간이 되면 반드시 몇 분 전에 오셔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조금이라도 이 시간에 늦은 학생은 강의실레 들어가는 것은 아예 단념하고 만다. 그 이유는 교수님이 어떻게나 무서운지 시간이 조금 늦어 강의실에 들어갈 수 있는 배짱이 있는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이와 같으니 강의가 빠르다는 불평은 물론, 받아쓰지 못한 것을 다시 불러달라는 말은 생각도 못하고 앞뒤로 돌아보다가 벙어리 냉가슴 달래는 식으로 그저 묵묵, 다음을 정신없이 필기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1946년 3월에 대구농업전문학교가 대구로 내려간 다음 그 학교가 2년제 초급대학으로 되었으므로 함께 내려갔던 학생들이 그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1948년에 다시 수원에 있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화학과로 편입을 하게 되었는데, 편입을 받아주는 전제조건으로 3~4학년에서 이수하는 학점이 평균 B급 이상이 되어야 졸업을 시킨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그 당시는 학점이 일반적으로 너무나 짜서 A, B는 거의 없고 C, D가 태반이고 F만 면하면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이들 편입학생들이 의기양양하게 들어왔으나 김호식 교수님의 강의를 처음 듣고 나서는 의기소침하여 근심이 태산같이 쌓여 근심이 가득한 채 풀이 죽어 학교를 다녔는데, 어떤 학생은 김호식 교수님의 강의를 살인강의라는 별칭까지 붙이게 되었다.
그리고 학점에서 어떻게나 엄격하셨던지 기말시험을 치러서 첫 번째에 F학점을 면하는 수는 극히 드물고 2차 시험을 치루면 겨우 전학생의 50퍼센트 정도가 C, D를 맞아 통과하고 반드시 3차 시험까지 쳐야만 대부분의 학생이 F학점을 면하여 통과하고 1~2명은 언제나 낙제 점수로서 머물게 마련이다.
이러한 것은 기정사실로서 학생들이 교수님의 강의를 신청하게 되면 사전의 각오와 정신적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강의에 임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학년제가 되어 지금과 같이 그 과목을 회피할 수도 없고 꼼짝없이 교수님이 내리신 시련을 겪게 된다.
이와 같이 어렵게 교수님의 과목을 때우고 나면 그 과목은 학생 누구나 다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깡그리 외울 정도가 되고 보니 정말 이 과목은 마스터하는 셈이 된다.
위생물 관계를 이와 같은 고생을 하며 배우게 되니 그 방면의, 기술자들이 별로 없던 그 당시에 학생들은 이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일인자가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았으니, 자연히 졸업 후에 이 분야에 진출하는 자가 많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품업체의 간부 사원으로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출신이 비교적 많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겠다. 이와 같이 어려운 시련을 겪다보니 어린 나이의 학생들은 철없이 김호식 교수님을 무섭게 여기고 멀리하는 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졸업시기가 되면 그 학생의 성격자질에 따라 적재적소에 어김없이 배치 취직시키고 후에 졸업생이 학교에 찾아오면 교수님은 이미 예전의 그 무서운 김호식 교수님이 아니었다. 모든 일에 자세하시고 친절하실 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 직장을 바꾸던가 하는 경우에도 전부 교수님의 배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되니 사제지간의 정은 타에 비할 바 없이 두터워지며 졸업생이 모이기만 하면 학생시절의 학점따기 어려웠던 추억, 그리고 졸업 후의 교수님의 인자하신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시간을 보내는 수가 많았다.
6.25사변으로 피난 갔던 학교가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던 1951년 7월에 김호식 교수님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셔서 교수님께서 창설하시어 기반을 다지어 놓으셨던 농화학과를 재건하시게 되었다.
수복 직후에 사변 전에 계셨던 교수님들은 대개 이북으로 납치되거나 그만두시고 김호식 교수님 혼자만 남게 되었다. 따라서 농화학과의 전학년을 혼자서 강의하셨으므로 강의 시간 수는 한때 무려 주당 20시간이나 되었으며, 거기다가 교수과장직까지 맡으셨으니 정말 초인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 후 이성환 교수님, 맹도원 교수님, 심상칠 교수님이 오시고 1955년에는 미국에 가셨던 이춘녕 교수와 돌아오시게 되어 사정은 호전되었고, 1957년에 조덕현 교수님과 필자가 이 학교에 오게 되어 교수님의 강의를 나누어 맡게 되었다.
이때 미네소타 대학교와의 계약으로 본 대학을 새롭게 재건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도 남다른 정력을 쏟으셔서 실험기기자재가 농화학과에만 너무 충실하게 도입한 관계로 한때 농과대학은 농화학과 대학 이란 비평도 받은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