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에 미네소타대학에 학사 관계 시찰차 가셨으니 그 짧은 기간 중에 훙륭한 위생물관계의 연구까지 해오셔서 주위를 놀라게 한 바도 있다.
그 후 교수님의 연구생활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위생물관계로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게 되셨고 1960년에 한국농화학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으로 취임하시어 돌아가실 때까지 연임하셨는데, 농화학회를 통하여 전국의 농화학관계자를 한 마음이 되게 규합하여 친목과 단결로서 연구열을 북돋우시어 농화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1962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학장으로 되신 후부터는 남다른 연구열과 탁월하신 지도통솔력은 다시금 전 농과대학, 아니 전국의 농업계에 까지 미쳤으며 1967년 10월에 한국농림수산학협회를 창립하여 초대 학회장으로 취임하시어 우리나라의 모든 농수산관계 학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여 상호협조, 농업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모든 일에 너무 엄격하시고 일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으셔서 중요한 요직에 계시면서 여러 가지 닥쳐오는 일을 하나도 마다 하시지 않고 담당하시다 보니 자연 강철같은 선생님의 체력에도 무리가 겹쳤다.
돌아기시기 직전에도 일본에 갔다 오셨다가 다음날로 제주도에 가시는 등 너무나 바쁜 나날을 보내신 것이 노구에 무리를 더 가져온 것으로 생각되며 1968년 12월 3일에 유명을 달리 하셨다. 교수님은 이미 가셨으나 교수님이 남기신 업적과 고고한 정신은 길이 남아 오늘날에 와서도 우리 후진들을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직후
나는 1950년 5월 27일에 농과대학 농화학과 4년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대학교수 조무원(현재의 조교)발령을 문교부에 상신 중이었다.
6월 26일 일선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당시에는 38선 근처에서는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 자주 충돌이 있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은 의례히 소규모 충돌 정도로 생각하고 그다지 심각하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 당시는 육군참모총장인 채병덕 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육군이 한번 움직이는 날에는 아침은 개성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느니, 우리 국군은 대통령이 진격 명령만 내리면 일제히 쳐들어 갈수 있게 만반의 태세가 갖추어져 있다.”는 등 큰소리를 쳐댔기 때문에 국군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 대통령은 새해 연두사에서 38선 이북의 실지회복을 18번처럼 외치고 있었으므로 무참하게 38선이 전면 돌파당하여 서울이 점령되고 전 국토가 전쟁에 휩쓸리는 참극이 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나는 그 이전에도 자주 그러하였듯이 서울에 있는 친구인 유군종 군을 찾아보기 위하여 27일에 서울에 올라갔다.
수원역에서 보니 기차에 많은 군인이 실려 북상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약간 심상치 않은 감을 느끼기는 하였으나, 서울 시내에 가서도 하늘 높이 못 보던 비행기가 1~2 대 날아가면서 가끔 기관총을 쏘아대는 소리가 들리고, 거리에는 우마차에 이사짐을 실어 북쪽에서 오는 피난민을 가끔 볼 수 있을 정도로 서울시내에서의 시민의 일상생활은 평상시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친구를 만났으나 그날 밤 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오후에 귀가하고자 서울역에 나와 보니 역광장에는 평상시와는 달리 피난민 같은 인파가 평소보다 약간 많았다.
그런데 수원가는 기차가 운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때 마이크를 단 국방군 정훈과의 지프차가 역에 나와 방송하기를 북에서 침공한 인민군은 용맹한 국군이 모조리 격퇴시켰으므로 걱정 말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을 되풀이 방송하고 있었으므로 역에 나왔던 사람들도 상당수가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수원 가는 날 기차는 당장 없다 하여도 저녁때 내려가는 통근차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내일 수원 지방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서울역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기도 지루하고 하여 전차를 타고 노량진역까지 가서 내려 그곳에서 걸어서 대림동 가는 세 갈래 길에 왔을 때였다.
저 멀리 2대의 비행기가 남쪽 하늘에서 북쪽으로 날아오다가 몇 개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길을 가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하여 우왕좌왕 하는 것이 보이고 나는 일정시대에 배운 방식으로 손을 쳐들어 손가락 사이로 폭탄 떨어지는 방향을 가늠해봤다.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떨어지는 것 같이 생각되어 겁도 나고 하여 재빨리 근처의 도랑에 숨었더니 폭탄은 북쪽의 여의도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여의도에 비행장이 있었는데, 그것을 폭격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나는 완전히 혼비백산하여 전율을 느껴 겁도 나고 하여 거기서 단숨에 걸어서 안양까지 왔다. 안양까지 오는 길에 사람이 탄 승용차와 짐을 실은 화물차가 비교적 많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조금 전의 비행기의 폭격 등으로 그때에는 완전히 난리가 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안양역에 와보니 부산지방에서 올라온 객차가 수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차는 서울로 출발할지를 모르고 한없이 정차하고 있었다. 거기에 탔던 승객도 별다른 안내방송이 없어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덮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미리 예측한대로 서울에서 통근차가 도착하였으므로 나는 그것을 타고 수원에 왔다. 학교에 가보니 함께 졸업한 조덕현 군이 과(科)실험실에서 밥을 짓고 있어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고 속히 서울 집에 가라고 권하고 내가 사는 고등동의, 처가로 갔다. 조 군과는 그것이 마지막으로 전쟁이 끝나 제대를 하여 다시 만날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밖에 나가보니 수원역에서 서호의 먼 곳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서울서 온 기차가 늘어서 있는 긴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지난 밤인 28일 2시에 한강철교가 폭파되었는데, 그 이전에 서울을 빠져나왔던 기차, 열차들이었다.
따라서 만일 그 이전의 예와 같이 그날 서울에서 잤더라면 필자의 운명은 알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되었듯이 한강이 끊기어 피난하지 못하고 후에 인민군의 의용군에나 끌려갔을지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정말 사람의 운명은 실로 종이 하나 차이로 크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 후 며칠이 지나는 사이 신성모 국방장관이 수원역전에 와서 여전히 큰소리 치면서 연설을 하는 것을 듣기도 하였고, 정부가 수원의 농과대학으로 이전한다는 말도 들려왔다.
세상사는 엉망진창이 되어가니 학교문제도 언제 정상화될지 예측이 되지 않아 처가에서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충북 영동의 본가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