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운반 인솔 (19회)

실제 군무라야 나는 별로 할 것도 없었다.

이때까지 굶어온 터에 식사 때마다 두툼한 고기 덩어리가 상에 올라오니 이것을 맛있게 먹고는 부두에 나가 내 부대의 배가 죽변 쪽에서 실어오는 탄약을 내리고 이것을 예하 연대에 불출해주는 사무가 저절로 진행되는 것이나 보고 있으면 되고 미처 내 배가 꺼지기 전에 또 두둑한 고기가 깃들인 식사가 나오니 우선 배고팠던 한은 푼 셈이었다.

전투일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 내 탄약부대도 그때마다 이동하게 되는데, 일선부대가 지나가면 곧 뒤따라 헌병대와 내 탄약 보급소가 들어가니 일절 민간인이 없는 곳에서 팔자에도 없는 일종의 억지 왕노릇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 난데없이 병기부장이 나타나서 무슨 탄약이 현재 몇 발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수시로 변하는 탄약의 재고를 알 수 없어 우물쭈물하면 당장 기합이었다. 탄약장교가 105미리 포탄이 몇 발 있는지도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후 부터는 매 시간마다 바뀌는 재고탄약 수량을 적어서 가지고 다니는데 또 병기부장이 탄약 재고를 물은 다음 내가 호주머니에서 그 재고표를 꺼내는 것을 본 병기부장은 탄약재고를 머리에 외워두어야지 그것을 보고하면 누구는 모르냐는 것이다.

그리고 병기부장이 있을 때 사병이 몇 명이라도 하는 일 없이 놀고 있으면 벼락이 떨어진다, 절대 사병은 시간을 주어 놀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문제이다. 마음이 강하지 못한 나는 고생하는 사병이 때때로 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무조건 기합을 넣어 괴롭히자는데 의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야 복종심이 강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군대에서는 일리가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때 강릉의 송림에 주둔하고 있을 때였다. 그 동네에 사는 한 노인이 밤에 내 숙소에 찾아왔다. 이 부대의 책임자냐고 물은 다음 인사를 하고 나서 귀 부대 사병이 이 동네 처녀를 건드리니 이것을 통제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장교로서 별도로 숙소에서 자고 혼자 왔다 갔다 하고 필요 없는 일은 사병과는 별로 하지 않으니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다. 사병들과 대화가 있다하여도 누가 이러한 것을 나에게 일러 바치겠는가! 사병을 모아서 일장 훈계를 하여 주의를 주었으나 얼마만한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매일 20여대의 트럭으로 묵호항에 닿은 배에서 내린 탄약을 강릉의 탄약소로 운반할 때는 대개 내가 인솔하는 수가 많았다. 어느 날 오전에 탄약을 싣기 위하여 강릉을 떠나 묵호가 얼마 남지 않은 곳까지 왔을 때 대로에 두 청년이 보이는데 한 사람은 아는 사람 같았다.

차를 세워보니 농대 농학과 2년 후배인 함영수 씨(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장을 지냈으나 작고 하였음) 아닌가. 연유를 물었더니, 집이 강릉인데 피난 갔다가 집으로 복귀하는데 도로에 통행을 못하게 하여 난처하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일반 도로는 군수물자 수송관계로 민간인의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한 끝에 내가 묵호에 갔다 올 테니 기다려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탄약을 싣고 그 자리에 와보니 도로에는 20명 이상의 대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처하였다. 자동차에는 덮개인 호로가 덮어 씌어 있기는 하나 군용차에는 민간인을 일절 태우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더욱이 탄약차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것도 1~2 사람이면 모를까 20여명이나 되니 말이다. 이것저것 생각하였으나 몰인정스럽게 그냥 내팽개치고 갈수도 없어 할 수 없이 전부를 차에 나누어 태웠다.

그리하여 몇십 리나 갔을까 군단의 헌병 검문초소에 다다르게 되었다. 헌병이 다가오더니 어찌된 민간인인가 묻길래 상황이 급하여 작업인원을 징발해가는 길이라 하였더니 징발증을 보자는 것이었다. 지금의 긴급상황에 징발증은 무슨 징발증이냐고 강하게 나갔더니 여자는 없지, 하면서 각 차의 호로안을 뒤지기 시작하였는데, 마침 한곳에 함형의 누이동생인 여자가 나왔다.

헌병은 화를 내면서 전부 차에서 내리게 하였다. 이제 문제가 커진 것이다. 함씨 가족 수송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벼락이 떨어졌다. 나에게 오더니 탄약차에 민간인과 여자를 태웠다는 자인서를 쓰라는 것이다. 아무리 달래고 타일러 봐도 새로 배치된 듯한 헌병 하사는 요지부동이다.

서로 실랑이를 하다 보니 벌써 약 1시간이나 지났으니 늦게 가면 이것 또한 큰일이다. 할수 없이 “그래, 쓰겠다. 쓸 것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천우신조인가 요행이도 그곳에는 펜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내일 이곳을 통과할 때 써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날은 그대로 지나왔으나 다음 날 부터가 문제이며 다시 그곳을 지나갈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나는 가지 않고 선임하사관만 인솔시켜 보냈더니, 내 수송대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헌병이 나와서 차를 세워 그 장교 어디에 갔느냐는 것이었다.

선임하사가 돌아와서 그 사실을 말할 때는 내 간이 콩만하게 작아졌다. 진짜 탄약차에 민간인과 여자를 태웠다는 자인서를 쓰는 날이면 틀림없이 군법회의감이고 군기와 처벌만을 18번같이 되새기고 있는 수도사단에서 무슨 벌이 내릴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그 헌병이 다른 곳으로 가기까지 20여일이나 그곳으로 나가지 못하고 부대에 앉아 속을 태우는 나날을 걱정스럽게 보냈다.

사단탄약 보급소는 전투가 소강상태일 때는 보통 연대에서 탄약을 타러오면 요구량을 내주는 것이나 전투가 격렬할 때에는 추진보급이라하여 사단에서 탄약을 실어다가 일선 연대에 갖다 주는 수도 있다. 전쟁이라는 것은 길이 있던 없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져서 적과 싸우게 되니 때에 따라서는 길이 험한 전투지역에도 탄약을 보내야 하므로 그곳에 운반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옛날부터 강원도 운전수라 하면 특별히 운전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강원도의 길이 그만큼 험하고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느 곳이나 잘 포장되거나 정리되어 별 어려움이 없으나 그 당시는 옛날 산의 나무를 깎아 내린 것을 반출하기 위하여 아무렇게나 만들어놓았다가 별로 쓰지 않은 위험한 길이라도 차가 탄약을 싣고 가야 했다.

1951년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산속의 길은 눈에 덮여 있거나 빙판이 져 있었다. 여기를 10~20대의 트럭에 탄약을 싣고 주야 없이 운행하며 탄약을 갖다 준다. 대개 나도 직접 차를 인솔하여 가게 된다.

그 당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운전수는 민간인뿐이므로 아무나 후방에서 운전할 수만 있으면 조건 없이 징발하여 차를 몰게 했다. 일정한 근무 시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일선에서 적과 격전이 벌어져 탄약이 급히 필요하게 되므로 거의 24시간 차를 몬다. 그러니 베기겠는가. 까딱하면 졸게 되므로 옆에 탄 조수는 그것을 감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