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솔만 하는 나도 매일 차를 타고 다니니 피곤하여 어느새 잠이 드는 수가 적지 않았다. 잠결에 갑자기 아악! 하는 소리가 나서 잠을 깨어보면 구부러지고 빙판 진 언덕길을 자동차가 가다가 제동을 거니 차바퀴가 언덕 쪽으로 미끄러지다가 위기일발 벼랑 끝에 가서 아슬아슬하게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아차하면 수십 미터나 되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곧바로 지옥으로 갈 판이다. 이러한 고비도 여러 번 있었다. 전쟁이니 이런 위험한 일도 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원체 모두 긴장하다보니 큰 사고는 없이 이럭저럭 겨울은 지나갔다. 그러나 해빙되어 봄이 되니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평지도로를 운행 중 운전병이 졸아 차가 전복되는 등의 사고가 여러 번 일어났다.
그때는 눈이 오기만 하면 대관령은 차가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쟁을 안 하겠는가. 눈이 여러 날 계속 내리던 어느날 사단에서 명령이 나에게 떨어졌다. 김 소위는 사병 두 사람을 데리고 도보로 대관령을 넘어 어느 산속에 가서 전투를 하고 있는 1연대에 일본에서 공수되는 탄약을 받아 보급해주라는 것이었다.
중대한 사명이었다. 적과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최전방에 가야하니 긴장될 수밖에 없다. 쓸 만한 사병 2명을 데리고 카빈총으로 무장을 한 다음 출발하여 대관령을 넘어 걸어가는데 아무리 가도 가도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다. 일선에 가까울 텐데 한 사람의 그림자도 안 보이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잘못하면 적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적이나 갑자기 나타나면 꼼짝없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 갈 수는 더욱 없었다. 걱정하면서 얼마나 갔는지 두 시간 이상 걸어가서야 비로소 1연대가 나타났다. 몇 시간 지나니 배가 불록한 수송기가 일본에서 왔는지 10여대가 날아와서 몇 바퀴 상공을 돌더니 수없이 많은 탄약과 레이숀 등의 병기, 병참보급물자를 낙하산에 달아 떨어뜨렸다.
나는 작업 인원이 없으므로 실제로는 연대 병력이 탄약을 모으고 단지 서류상으로 인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떨어뜨린 탄약 중에는 1연대의 화기에는 없는 로케트 폭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연대에 넘겨 줄 수 없으므로 사단탄약 장교인 내 차지가 되는 것이다.
밤에도 절대 신을 벗는다든가 하지 못하게 비상상태로 자게 하며 가까운데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듯 포 쏘는 소리, 기관총 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니 언제 어느 때 후퇴명령이 날지 알 수가 없었다. 전세가 불리하여 후퇴할 때는 로케트 포탄은 내가 폭파하여 처치해야 하나 나는 폭파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비조차 없었다.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속히 이 포탄은 사단에 후송해야 내 임무를 완수하게 되는 것이다.
사단에 차를 보내달라고 통신 연락을 해야 하는데, 통신선이 여간해서 내 차례가 되지 않았다. 백방으로 노력하고 기다려 겨우 사단에 전화연결이 되기는 했지만 말소리가 개미소리 같아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크게 지르고 악을 써가며 겨우 차를 보내달라고 연락을 하기는 하였다.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눈이 멎어 3일째 되던 날 사단에서 몇 대의 트럭이 왔다. 급히 로켓 포탄을 차에 실려 출발하였는데도, 10리를 못가서 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잠시 지나니 길에 눈이 쌓여 차가 갈수가 없었다. 결국 차가 길에서 눈에 파묻히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눈 속에서 하룻밤 뜬눈으로 지내고 나서 다음날 눈이 내리는 것도 멈추고 공병대가 눈을 치운 다음에야 겨우 차가 움직일 수가 있어 천신만고 끝에 강능에 이르러 그 포탄을 사단 탄약보급소까지 운반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사단의 전선이 전진하여 주문진에 주둔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명령이 떨어졌다. 즉시로 주문진에 있는 탄약을 전부 삼척으로 수송이동 시키라는 것이었다.
병기중대에는 일제 도요다 트럭이 약 20대가 있었고, GMC 1대, 레이카차 1대가 있는데, 도요다 트럭은 경량급 화물차로서 포장된 도로나 가게 만들어져 있었으므로 무거운 탄약을 가득 싣고 그 당시는 포장이 되지 않은 일반 도로를 그것도 나무를 베어 내리는 산길을 사정없이 몰고 가다보면 차바퀴 촉을 비쳐주는 여러 장의 스프링이 몇 장씩 부러지게 되므로 한번 수송 나갔다 중대에 들어오면 언제나 부러진 스프링을 다른 새것으로 교환하여 다시 운행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라지에타 속의 냉각수는 어느 차나 안 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수송행렬이 한 시간쯤 가게 되면 차를 세워 개울가의 물을 양동이로 퍼서 보충하곤 하였다. 그 중에도 물이 많이 새는 차의 라지에타는 고춧가루를 한주먹씩 집어 놓고 물을 넣는데, 고춧가루가 라지에타 새는 구멍을 막아 물이 적게 새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차에는 물론 방향지시기니 깜빡이 같은 것은 없고 왼쪽 손으로 왼쪽, 오른쪽을 가리키는 식으로 가르켜 가며 커브를 돌아갔다. 차의 시동도 현재와 같이 셀모타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차 앞에서 스타킹을 손으로 힘겹게 돌려 발동을 걸었다. 그리고 보급행렬에는 반드시 GMC아니면 레이카 차가 맨 뒤에서 따라갔다. 도중에 차의 스프링이 몽땅 부러지든가 또는 다른 고장이 나면 이것을 끌어오기 위하여서였다.
이러한 차로 주문진에서 삼척으로 전 탄약을 급하게 왕복하여 수송하게 되니 부러진 스프링을 교환할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2일째 오후가 되니 운행할 수 있는 차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옮길 탄약은 남아 있는데 말이다.
눈에 핏발이 선 병기부장이 오더니 차가 몇 대나 움직일 수 있느냐고 물어오므로 당장 수리하지 않으면 한대도 움직이지 못한다 하였더니, “이 무능한 장교”하며 소리를 지르더니 주먹으로 1대 폭력을 쓰는 것이 아닌가? 생전에 아직 누구에게 당한 기억이 없는데 참으로 화가 나서 대들까도 생각하였으나 아차 참아라 참자 “참는 자에게 목이 있나니”
잘못하면 하극상에 몰리게 될 뿐만 아니라 금방 1선에 보내면 보병 1선 소대장이 되어 싸워야 한다. 실제 병기장교는 사단 사령부까지 배치하게 규정되어 있으나 볶아대는 전쟁터에서는 그런 인사규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실제로 사단에 있는 병기장교가 일선 연대에 배속되는 경우는 허다하며 또 다른 사단에서는 보병 소위가 되어 일선에서 적과 직접 싸우기도 하였다니 참으로 참아 그리 하여 고비를 넘겼다.
그때의 급박한 상황은 후에 알고 보니 적인 중공군이 우리 3군단을 돌파하고 삼척 쪽으로 공격해 내려오고 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국군 3군단이 무너져서 군단장이 헬리곱터로 간신히 빠져나왔다 한다.
전쟁이란 참혹하고 비참한 것이다. 가끔 사단에서 사단장 이하 참모가 일선의 진지 검문을 나가는 수가 있는데, 그때 나도 자주 따라 나갔다. 1선에 배치된 사병들은 전전긍긍 매일 밤 적이 인해전술로 공격해오니 언제 당할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당시는 여간해서 병력보충이 잘 안되므로 예비대로 교대하여 쉬게 하는 수는 있을 수도 없고 후방부대로 교대하는 수는 더욱 없었다. 전사를 하여야만 땅속으로 가서 쉬게 되는 것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 사병의 표정을 보니 이것이 전쟁이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한 곳에 가니 농과대학의 축산과던가 2년 후배가 장교로 배치되어 있었다. 신체도 건장하고 늠름한 소대장인 소위가 나에게 하는 말이 “선배님, 나는 절대로 안 죽습니다. 왜냐하면 총알이 나를 피해갑니다.”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번 진지 검열을 갔을 때 그 장교는 보이지 않았다.
여러 독자들이여, 전쟁영화 같은 것을 보면 전쟁이란 것을 일종의 활극정도로 남의 일이니까 그냥 보아 넘기지마는 이것이 내 자신이 당할 때를 생각해보시라. 전쟁은 지상 최대의 비극임에 틀림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