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몇 가지 큰 의문이 있었다. 그중 첫째가는 것이 ‘창조의 신비와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것이었다. 성경에서는 비유로 말씀이 기록되어 알아들을 수 없었다.
또 하나는 불가에서 말하는 무(無)와 공(空)과 견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다. 경(經)에도 그렇고 큰 선사들도 그렇고 모두가 비유로 말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거기다 ‘예술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하는 숙제에 당면했다. 쉰이 될 무렵부터는 죽음이라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던 생과 사의 문제가 다급한 내 문제로 현실화한 것이다. 잠자는 시간 말고는 종일토록 그 궁금증 안에 내가 있었다. 날마다 쉬지 않고 생각하는데 하나도 풀리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하늘의 구름은 옛날같이 흘러가고 뜰 앞 모과나무는 철 따라 모습을 바꾸는 데 한 치의 오차가 없다.
문득 한 욕심이 솟아나 내 하늘을 뒤덮고 사방은 분간할 수 없이 캄캄해졌다. 한 치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공간에서 나는 그 의문을 풀려고 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나의 하루다.
큰 스승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고 옛 성현들은 말한다. 그러나 내 귀엔 아주 멀리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종소리 같다. 스승의 가슴에 온몸을 내던지고 ‘맘대로 하십시오.’하고 눈 딱 감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찌 그런 큰 은총을 감히 바라겠는가. 꿈속에서나마 잠깐 그랬으면 하고 생각한다.
절대자가 있는가. 그분은 어떤 분이기에 이 억천 만세를 있게 하시고 이 무한의 시간과 공간에 우리를 있게 했는가.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줄 알았다. 부끄러워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들도 다 처지가 비슷했다. 견성하면 무엇을 보는 것이냐고 많은 이에게 물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알고 보니 남들도 대개 나와 처지가 비슷했다.
극락과 천국을 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리하여 아예 그곳에 영원토록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성인의 가르침을 믿으면서도 내가 삶으로 실천하지 못하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천국은 지척이요, 바로 여기가 천국이라고 한다. 내가 그렇게 살 수 없으니 믿음도 소용없는 성싶다.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그림 일을 한다. 바로 하고 있는 것인지, 잘못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대예술가의 심경은 어떨까 하는 점이 늘 궁금하다.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감정과 의식이 노는 곳을 구경하고 싶다.
해가 갈수록 절실해지는 것이 죽음의 문제다. 죽음 자체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두려움이 있다. 그럴수록 삶에 대한 바른 인식과 감사의 염(念)이 깊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은 잘 해야지 하면서도 지내놓고 보면 또한 공염불이었다.
반 고흐는 동생한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이만 끝내야겠다. 내일 일찍 풍경을 그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야.”
내일 일하기 위해 지금 자야겠다는 뜻이다.
피카소도 그랬다.
“붓을 놓는 것이 괴롭다.”
그림 작업이 얼마나 좋은 것이길래 또 얼마나 절실한 것이길래 그토록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일까. 나도 그래 봤으면 하는 것이 꿈이다.
문득 한 욕심이 솟아올라 하늘을 흐려놓고, 문득 또 한 욕심이 솟아올라 구름을 헤치고 햇살을 되찾으려 한다.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 고요한 날이 늘 그립다.
김 추기경님을 뵙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을 비운 형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간단히 스쳐 지나가는 대화였지만 좋은 그림과 마음 비움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얼른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비워지지 않던데요!”
추기경님도 안 되더라 하셨다. 그러시면서 죽어야 된다 하셨다. 덧붙이시기를 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15분이 더 지나야 비워진다는 것이다. 함께 웃고 나서 그날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여러 날이 좋았다. 자유와 해방에 대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15분이라는 근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상관없다. 진정한 해방과 자유는 육신의 죽음 그 너머의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