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의 단풍
선운사 단풍은 소리가 크다
발자국 자국마다 바스락거린다
선운사 낙엽은 추억도 많다
눈비 내리고 바람 맞으며 기다려 준
선운사 단풍은 립스틱보다 짙다
수줍음 모르고 짙게만 쳐바른다
낙엽 단풍 바람
그대는 나의 사랑하는
늦가을 선물입니다
_ 시집 ‘하루를 살아도’ 중에서
고창성당 50년 축시
9대 신부 서석구(사도 요한)
하느님께서는 50년 전
세상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던
고창읍 읍내리 386-1에
주춧돌을 놓으시고 복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어언 50년
주촛돌은 성전이 되었고
복음의 씨앗은 2000배의 열매로
눈물로 뿌린 씨가 기쁨으로 거두었도다
한 알의 밀알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주신다는 말씀
믿음으로 되돌려 받았나이다
담쟁이 넝쿨이 한 땀 한 땀 짜깁기를 하여 집 한 채를 완성하듯이
거목 한 그르고 그늘을 주고 나그네가 쉬어가고 새들이 깃들 듯이
50년의 역사 속에 생명의 몸이 강물처럼 힘차게 흘렀나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곳에 희년을 주시어 사랑과 용서 자유와 평화의 축복을 주셨나이다
이제 100주년을 향한 힘찬 도약을 주소서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소리가
고창읍을 넘어 울려 퍼지게 하시고
강물 같은 사랑과 평화가 구름을 타고
신자들의 기도소리가 하늘까지 오르게 하소서
그동안 이곳에 머물고 간 성직자 수도자들에게도
착한 목자로 살게 하시고 양들에게 봉사자가 되게 하소서
한때 저도 이곳에 몸 붙이고 살 때 행복했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였으니
조님 말씀 명심 또 명심하겠나이다
사랑의 하느님
고창성당 공동체에 축복 허락하시고
당신 따르는 양들을 푸른 물가로 인도하사
언제나 목마르지 않는 당신의 생명수를 마시는
영광과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있게 하소서
아멘
1986년 교포사목
막상 발령을 받고 낮선 이국땅에 간다는 사실이 쉽지만은 않았다. 짐을 꾸리면서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되었다. 앞에서도 사제 갱년기라는 말을 했지만 어디론가 떠나고픈 호기심 이면에 두려움도 있었다.
석 달만에 수속을 마치고 그해 봄에 비행기를 탔다. 애틀란타에는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LA에서 갈아타고 15시간에 걸쳐 도착했다. 본당 신자들과 당시 상부했던 한봉섭 신부님도 나와서 맞이해주었다. 처음에는 긴장이 되고 시차도 있었지만 심하게 피곤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본당 현황
당시 한인교회는 성당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 성당을 사용했는데, 한 달에 7백 불을 사용료로 지불했다. 주말미사시간은 오후 1시에 있었다. 미사 참례 신자 수는 약 4백 명 정도였다. 미사가 끝나면 지하 휴게실에서 간단한 음식과 커피타임이 있었다. 이때가 친교의 시간이었다. 친교가 3시쯤 끝나면 다른 주에 있는 공소에 가서 고백성사와 미사를 봉헌해주고 집에 오면 밤 12시가 넘었다.
먼 곳은 비행기로 가서 하룻밤에 자고 다음날 오는 곳도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알라버마주 버밍햄 공소다. 이곳에는 당시 한국 금성전자 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신자들이 많았다. 공소회장은 당시 NASA(미 우주항공국)에 의사로 근무하는 이병갑 씨로서 대단한 열성으로 공소를 돌보고 계셨다.
이 씨는 대신학교까지 다니다가 중도에 신학교를 나오신 분이다. 언젠가는 술 한 잔을 하면서 아직도 신부의 꿈을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참 성실하고 고마우신 분이었다.
이때 애틀란타주에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어거스트와 콜롬버스 공소가 있었고, 비행기로 다니는 플로리다주에 올랜드와 템파 노스캐롤라인에 살롯 공소도 다녔다. 어떤 때는 애리조나주에 피닉스란 군인공동체도 방문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바쁜 생활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다.
특히 국제결혼으로 할 말이 많았던 언니들의 말을 다 들어주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떠날 때가 마음이 아팠다. 지금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국의 불쌍한 달들아, 굳세게 살아다오. 아! 보고 싶다. 주님! 그들을 축복해주소서.
미국 본당 사제관에서 본당신부와 보좌신부 그리고 폴란드 신부 4명이 함께 살았다. 아침은 각자가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은 파출부가 와서 해주었지만 나는 양식이 맞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
신부들이 하루씩은 본당 일직을 했는데, 수요일은 내 차례로 온종일 사제관에 있으면서 전화도 받고 찾아온 신자들에게 상담도 해주는 일을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로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지만 젊음이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다. 주님은 나에게 감당할 힘을 주셨다. 주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