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가 되어 봄철의 어느 날 여늬 때와 같이 전주역에 주둔하고 있을 때 아침 나절에 전주역의 간부가 내 막사에 찾아왔다.
여기 부대의 책임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였더니 댁의 부대 병사가 역에 적재되어 있는 목재(당시는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복구하이 위하여 미국에서 원조한 목재 등의 원자재가 각역에 다량 적재되어 있었음)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자기들 처지가 난처하니 원상복구 시켜 놓게 하되 그렇지 못하면 상부에 보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전 소대원을 집합시켜 일장 훈시와 함께 경고를 하고 선임하사에게 사건의 처리를 위임하였다. 이들 병사들은 이북 기타에서 데리고 나왔다가 다시 동해안에서 이곳으로 데리고 온 가족(이북에서 데리고 온 여자들은 이미 가족이 된 경우가 많았다)을 먹이자니 군에서는 돈 한푼 나오는 것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돈 문제에 관한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만 더하고 넘어가야겠다. 당시 군에서는 군인 본인의 회복과 세끼니 식사를 제공하는 외에 한 달에 몇 갑의 담배를 주고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군인가족은 다른 수입이 없는 한 긂어죽게 되어 있었다.
나는 영동에 큰집이 있으니 아내와 아이는 그곳에 가 있어 별 문제가 없으니, 다른 장교 더욱이 가족이 있는 나이가 비교적 많은 고급 장교는 어떻게 생활한단 말인가. 전쟁 중이고 정부에 예산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국가에서도 너무나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하였다.
그러니 그 당시 소위 후생사업이 성행할 수밖에 없어 트럭이 전쟁은 안하고 후방에 나와 나무 기타 화물을 실어 나르는 운임 값을 벌어 부대에 납부하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으나 공염불로서 아주 높은 상부에서도 눈감아 주는 모양으로 이것으로 사단의 고급장교들이 먹고 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군복무 중 이러한 돈 한 푼 냄새조차 맡아 본 기억이 없다.
요사이 와서 군대에 가는 것이 싫고 어쩌고 하는데, 이것은 모두 호강이 넘쳐 잠꼬대하는 소리이다. 지금의 군복무는 첫째 전투가 없으니 전사할 위험이 없는데다 매월 월급이 나오고 휴가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닌가. 옛날 일을 생각하니 요사이 하는 불평들은 너무 어이가 없다.
1952년 3월 29일 부로 육군 중위로 진급되었다. 이럭저럭 공비토벌도 일단락 되었는지, 전투는 소강상태인 모양인데, 52년 7월 10일부로 제7사단 병기부로 전속 명령이 떨어졌다.
다시 7사단으로
집에 며칠 들렀다가 1952년 7월 9일경 중부전선에 있는 양구 7사단 병기부에 도착하였다. 병기부장에게 신고를 하니 봉투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사단 인사참모에게 갖다주라고 하는데, 도중에 그 내용을 보니 전방에서 한참 적과 교전 중인 예하 8연대에 발령을 내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병기장교는 사단 사령부까지 가게 마련이고 더욱이 수도사단의 일선에 근무하였으면 당연히 이제 후방에 있는 병기대대 아니면 병기단에 전속되는 것이 상례인데, 이것은 다시 7사단 그리고 더욱이 일선연대에 가라니 불평을 아니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연대에 가면 작전장교와 병기장교는 작전수행을 위해서는 무리한 것을 강요당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탄약이 부족하면 사단에서 잘 주지 않는 경우에도 이유 없이 가져오라고 윽박지른다. 동시에 자칫 잘못하면 무능장교라 하여 기합이 떨어진다.
그 당시 내 건강이 상당히 좋지 못하였으므로, 이러한 상황에 견딜 것 같지 않아 생각할 끝에 병기중대장인 이갑성 대위에게 통고만 해놓고 사단 의무대에 입원해버렸다. 의무대는 어떤 강변에 천막을 치고 그 속에 있었는데, 여름에는 햇볕이 세게 쪼이니 덥기 마련이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부대에 오자마자 의무대에 왔으니, 건빵하나 가지고 찾아오는 병사 하나 없었다.
일선에는 전투가 벌어져 있고, 하루하루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여름에 장마가 지니 하천가에 있던 의무대는 그 후방 지원부대인 이동외과병원에 합쳤다. 여기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병명은 폐침윤이라고 되어 있으나 별다른 치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날마다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고민이 대단하였다 실제로 나는 7월 18일부로 일단 7사단 예하인 제8연대로 발령이 나긴 하였으나, 연대에는 실제로 병력이 필요한데, 내가 가지 않으니 발령이 취소되어 나의 소속이 다시 사단부로 되어 있었다.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퇴원을 해버릴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단 병기중대 선임하사란 자가 찾아왔다. 장교님 이번에 많은 병기장교가 후방으로 발령이 나서 다가고 현재 병기장교가 모자라니 어지간하면 나와서 근무할 의사가 없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장기 입원으로 그렇지 않아도 고민하던 차이므로 마지 못하는 양 퇴원하여 다시 탄약장교로서 복귀하여 중대와 상당히 떨어진 사단탄약 보급소에 가서 근무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는 것보다 활동을 하니 건강도 더 좋아졌다. 미군 고문관과도 호흡이 잘 맞아 보급장교도 겸하게 되었다. 사단에 필요한 탄약, 차량, 총포를 포함한 여러 가지 병기는 고문관의 사인이 있어야만 상급 보급부대에서 타 올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고문관과 잘 통하니 사인을 잘 받으므로 보급장교까지 함께 맡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몇 달을 지났을까, 또 큰 사고가 터졌다. 하루는 보급소 옆의 산을 보니 웬 여자 한 사람이 보였다. 의심이 나서 사병을 시켜 데려오게 하였다. 일선에는 민간인 여자가 잇는 것을 보안관계에도 문제가 큰 것이다.
데려와 조사해보니 인접 되어 있는 미군부대를 목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사생결단하고 일선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얼마나 굶었는지, 20여세 되어 보이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문제가 생겼다. 이 여자를 발견하였으니 처리를 하여야 하는데, 이것을 사단의 방첩대에 넘기자니 가엾고 일이 시끄러워지므로 선임하사관과 의논한 결과 인접되어 있는 미 제7사단의 PX차가 나갈 때 내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일 날은 그 차가없어 하룻밤을 어디서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새벽차로 내보내게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 밤에 사단 보안대에서 들이닥쳐 그 여자를 잡아갔을 뿐만 아니라 내 부하병사도 몇 명 붙들려갔다.
알고 보니 내가 발견하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기간동안 탄약고가 넓으니 구석의 취사장 근처에 숨겨두고 밥까지 먹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책임을 져서 일시대가 발령이 났다. 보안대와 헌병대에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 사병은 위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나는 곧 복귀하여 먼저 그대로 근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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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로는 둘째딸인 선호를 1952년 12월 30일 영동집에서 낳았다는 편지가 왔다. 해가 바뀌어 1953년 3월 26일 부로 춘천에 있는 100병기대대에 전속명령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