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연합회 인권위원회는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며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간 단체였다.
성남교회에서 만난 청년들과는 ‘성오회’란 모임으로 이어져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데, 그중 한 사람이 오형범 장로의 아들인 오철주이다. 모임을 하다보면 술이 나오는데, 그럴 때면 나는 즐겁게 한잔을 청했다. 그런데 오철주가 그런 나를 보고 “아니 장로가 무슨 술을 마시냐?”고 핀잔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임마, 너희 아버지에게 배운 술이야.”하며 웃어넘기곤 했다.
성오회 멤버는 이혜정, 안철, 이애정, 김형기, 성남기. 이복기 등 20여명인데, 나는 그 모임에 자주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가끔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다. 그 시절이 그리울수록 사람들도 그립다.
성남교회에서 배운 사회복지 현장
성남교회에서 나는 사회복지를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온 몸으로 배웠다. 야학을 한 경험은 미아동 감리교회에서도 있었지만, 성남교회엣 만난 아이들은 또 달랐다. 성남교회에 만난 아이들의 환경은 더 열악했고, 손 내밀 곳조차 없는 아이들은 사회의 어둠 속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차마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없는 나날이 많았다. 야학을 찾아온 아이들과 만나 상담하고, 공부시키느라 늦은 시간까지 교회에 남아 있는 일이 잦았다.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시간이 어중간하면 오 장로 댁에서 신세를 지기 일쑤였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교회를 내집처럼 여기면서 잠을 청해야 했다.
그때 내 머리 속에는 교회사회복지 사업이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과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였다.
그러던 중 어린이집과 야학을 하는 동안 점차 아이들을 정식 학교로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학은 정식 인가가 되지 않아 초등학교라도 제대로 보내야 검정고시라도 치러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초등학교에 무턱대고 보낸다고 이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도 걱정거리였다.
야학에 다니는 아이들의 집을 방문해보면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곳에서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고심 끝에 찾은 학교가 삼광초등학교였다. 삼광초등학교는 해방촌에 있었는데, 해방촌은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삼광초등학교라면 이 아이들도 별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야학을 하다 보니 훼방을 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야학을 통해 아이들이 개선되어 나가니, 불량한 아이들이 교회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 식으로 수업을 방해했다. 이때 남대문경찰서 소년계에 있던 이주자 씨와 그의 동료들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남자아이들을 따로 모아 ‘텐보이즈클럽(Ten boys club)’을 만들었다. 이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만나 대화도 나누고 산으로 캠핑을 가기도 했다. 산에 가면 아이들이 직접 솔가지를 모아 불을 지펴 밥을 해먹었다. 둘러 앉아 키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함께 지내다보면 아이들의 생각의 키는 한 뼘씩 자라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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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년 8월 성남교회 텐보이즈클럽 회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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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환경이나 주변환경 때문에 나쁜 짓도 하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었다. 믿어주는 만큼 아이들은 생각 외로 빨리 변화했다. 그들 스스로도 변화되는 자신을 보며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은 많은 일에 치여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나에게 꽤 보람된 일이었다.
또 윤락을 하는 여자아이들을 모아 만든 ‘해바라기클럽’도 있었다. 12살부터 16살 가량의 이 여자아이들은 시골에서 올라와 포주들에게 팔려간 아이들이었다. 아직 어린 이 아이들은 낮에는 교회 마당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공기놀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4시가 되면 약을 먹고 윤락촌으로 들어가 성매매를 해야 했다.
그 아이들이 윤락행위를 하는 곳에 가보았는데,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방에 때에 찐 담요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도저히 이런 곳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용케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서울역 주변을 다니는 지게꾼이나 넝마주이, 리어카꾼들이었다.
내가 보살피는 해바라기클럽의 아이들은 12명이었다. 나는 이 명단을 남대문경찰서 소년계에 있는 이주자씨에게 주었다. 이주자씨는 나와 같이 마운틴알몬드클럽에서 봉사를 했던 이로 최초로 학사경찰이었다.
그런데 해바라기클럽의 명단을 이주자 씨에게 준 이유가 있었다. 간혹 경찰이 단속을 나오면 십중팔구 이 아들은 잡혀가야 했다. 잡혀갔다가 포주가 돈을 써 풀려나면 또 아이들은 그 생활을 반복하거나 다른 곳에 팔려가야 했다. 그러나 해바라기클럽의 아이들만큼은 잘 설득시켜 집으로 돌려보낼 테니 잡아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대신 나는 아이들에게 통장을 만들어주었다. 도장은 내가 갖고 통장은 아이들에게 주면서 돈을 모으도록 했다. 상담을 해보니 아이들의 꿈은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술집을 차리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설득해나갔다. 아이들을 설득하는 일에는 이주자씨도 함께 했다.
내가 이러한 작업들을 해나가니, 이 아이들을 관리하는 폭력조직의 깡패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성남교회 앞에는 우리가 잘 다니는 화성다방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나를 거기로 불러냈다. 그 깡패들도 어린 나이였지만 앞뒤없이 사는 이들이라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교회 청년들도 있고, 야학을 하면서 알게 된 아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결국 깡패들과 협상하여 해바라기클럽의 아이들 중 이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 먹은 두 여자아이를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성남교회에서 하는 복지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나의 일이었다. 노인복지프로그램도 만들고, 교회사회복지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성남교회에서 한 프로그램은 호응이 좋아 보건복지부 국립사회복지 연수원의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성남교회에서 하는 사회복지 사업이 점차 알려지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던 아이들이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자,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성남교회의 사회사업이 성과를 보이자, 점점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 등에서 취재를 왔다. 성남교회의 사화사업이 언론매체에 소개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