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관 구입
2년을 이렇게 살다가 어려움이 많아 성당 가까운 곳에 3천 평 정도의 땅을 구입했다. 주차장도 있고 평일미사와 소그룹 모임도 할 수 있는 상당히 큰 주택이었다. 이곳에 입주하면서 식당 주방인도 채용해서 식사문제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학교를 나와 미국 생활에 익숙한 한국인 수녀까지 두게 되어 본당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한인 본당은 신자수도 늘고, 각 신심단체 특별히 이때에 성령기도회는 본당에 많은 힘이 되었다. 성서 40주간을 시작하여 30여명 정도가 종강식을 가지는 기쁨도 있었다. 사제관 구입으로 장소에 부담이 없어 소그룹 화합과 각종 모임이 주간 내내 멈추지 않았다.
골프시작
교포 사목은 낮에는 신자들이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다. 하루가 무료할 때가 많았다. 전순홍(요셉) 형제님께서 나에게 골프를 배워보라며 골프채를 사주고 연습장에 등록까지 해주셨다.
이렇게 되어 처음으로 골프를 배우게 되었고 여유 시간에는 필드까지 다니면서 골프에 푹 빠졌다. 다행히 본당에 남자 여자 청년팀이 있어서 주일날 공소 방문이 없는 날에는 꼭 참석해서 친교를 나누었다. 이러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골프광이 되었다. 지금은 건강상 TV에서 나오는 프로골프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성지순례
내 나이 40대 중반, 호기심 많고 꿈도 컸던 그 시절, 나는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나 가고, 하고 싶은 것은 다 체험한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당시 미주 한인 교회는 성령기도가 뜨겁게 번지고 있었다. 특별히 미주한인천주교 성령지도신부였던 왕영수 신부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왕 신부님의 인솔 아래 미주한인 성령기도회팀 120명이 비행기를 전세 내서 구약의 시작인 이집트를 시작해서 신약의 예수님 죽음이 있었던 이스라엘 그리고 마지막 로마까지 7박 6일 동안 여행했던 성지순례를 잊을 수 없다. 이때 우리 본당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참가했다. 이런 인연으로 나는 협조자로 미주 여러 곳을 다녔고, 유렵과 남미와 중남미까지 다니면서 봉사했다. 그 덕분에 돈 안들고 세계를 한 바퀴 돌아다녔다.
특히 남미 아르헨티나 성당기도회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기도회 참석자만도 100명을 넘어 큰 은혜가 있었다. 기도회가 끝난 후 그 유명한 이과수폭포 투어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나이아가라가 세계 최고의 폭포라고 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웅장한 창조주의 걸작품이었다.
박정일 주교님과 멕시코 방문
이때쯤 정승현 신부가 멕시코에서 남미선교를 위해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박정일 주교님이 교포사목 담당이기 때문에 우리 본당에도 들르고 멕시코 가시는 길에 동행하여 동창인 정승현 신부를 만났다.
덕분에 멕시코 아카폴코 해양지에서 해수욕도 즐겨보고 유명한 유적지도 여러 군데 구경하였다. 애틀란타에는 주교님과 신부님이 가끔씩 들러주셨다. 대전 교구 경 주교님과 박정일 주교님은 골프를 좋아하셔서 오실 때마다 골프 대접은 필수 메뉴였다.
그곳에 있을 때 전주교구 김병엽 신부, 안용기 신부, 현유복 신부, 세분이 찾아주셔서 함께 여행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한기호 신부와 이순성 신부가 방문해주었다. 동생 서석두도 방문해서 플로리다 주에 있는 디즈니랜드와 그랜드캐니언과 나이아가라 폭포 LA에 있는 헐리우드 등 여러 곳을 여행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제가 사목 이야기는 하지 않고 여행이야기만 한다고 식상해할지 모르지만 이곳에 있다 보면 손님 대접도 사목의 일부였다.
창피했던 지퍼사건
북미주 교포사목 신부들은 1년에 한 번씩 총회가 있었다. 1987년 총회는 캐나다에서 있었기 때문에 나는 비자 문제로 시내에 있는 캐나다 영사관에 찾아갔다. 건물에 들어서자 긴장한 탓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볼일을 마친 뒤 7층에 있는 영사관에 가기 위해 승강기를 탔는데, 오전 11시경이어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키가 작아 승강기에서 뒤쪽으로 밀렸다. 마침 내 앞에 50대로 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서류가방을 들고 서있었다. 승강기 문이 닫히고 올라가는 순간 또 화장실 생각이 나서 지퍼를 만져보니 지퍼가 열려 있었다. 당황되었지만 눈치 채지 않게 지퍼를 제 자리에 올려놓았다.
5층 쯤 되어서 ‘땡’하는 벨소리가 났고, 내 앞에 있던 여자가 내릴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자가 내리려고 하였으나 그 여자 원피스 뒷자락이 내 바지 지퍼에 물려 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 정말 난감한 순간이었다. 지퍼를 내려 보았으나 옷에 끼어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 여자의 옷 뒷자락을 잡고 따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광경을 눈치 챈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시쳇말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내가 당황하여 쩔쩔 매고 있는데, 그 여자는 침착하게 내 지퍼를 잘 내려 일이 해결되었다.
나는 식은땀이 나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도 그 여인의 침착한 태도를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는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천주교 신부가 무슨 망신인가.
만약 이런 일이 한국에서 있었다면 따귀 한대는 약과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수치심을 느낀다. 그 여인은 어쩌면 그렇게 침착하고 대담했을까. 지금 같으면 정식으로 사과라도 했을 텐데 그런 여유가 없어서 자리만 피하고 싶었다.
나는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여인의 사려 깊은 배려에 감사함을 잊지 못한다. 역시 일등 국민은 다르다는 존경심이 생겼다, 그 뒤부터 원피스 입은 여자가 승강기에 오르면 지금도 긴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