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병기부대 근무
휴전회담이 오래 끌었으나 이제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된 모양이다. 휴전이 되면 병기업무도 한국군에 넘겨주어야 하므로 탄약을 저장해두었다가 중부전선에 배치되어 있는 각 사단에 불출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한 100병기 대대가 춘천에 창설된 것이다.
춘천의 남쪽 넓은 땅에 여기저기 일정한 거리를 띄어 많은 탄약을 쌓아놓고 있고 한쪽에 부대본부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1953년 3월 26일에 부대에 가서 부임신고를 하였다. 100대대에서는 약 20명의 장교가 함께 근무하고 있었는데, 탄약의 보관관리, 보급 등 통상적인 탄약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휴전 막바지가 되었을 때, 어떤 포탄인지 그 종류는 잘 기억되지 않으나 중요한 탄약이 한발도 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사단에서 탄약을 수령하기 위해서 온 장교들은 아우성치며 난리가 나고 나도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미 고문관에게 이 긴급사실을 상의하였더니, 하는 말이 우리가 떨어졌으면 적은 이것보다 더 일찍이 떨어졌을 것이므로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 자기 자신이 가진 상황표를 내놓으면서 하는 소리가 이미 그 포탄은 자기가 연락을 해서 부산 해운대에서 특별열차에 실려 ‘그린 라잇’이라는 암호명을 붙인 차가 모든 경부선의 다른 차를 제치고 조금 전에 시흥역을 지났으니, 오늘 밤 늦게 이곳을 도착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탄약업무도 대대에 배치된 고문관 대위 한 사람이 중요한 일을 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한국군 전화로 대구의 육군본부를 부르려면 몇 군데의 교환을 거쳐야 하므로 몇 번인가 통화를 기다렸다가 겨우 연결이 되어도 무슨 소리인지 상호간에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소리가 적고 잡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고문관이 사용한 전화는 대구가 곧 나오게 될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같이 소리가 크고 명료하였다.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할 때에 각 부대에 배속되어 있던 고문관이 전투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휴전되기 전에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우리 국군 단독으로 북진한다고 얼려댔지만 당장 미 고문관이 승인하지 않으면 한발의 탄약도 나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미군의 행보가 사무능력은 대단한 것이며, 우리들이 무엇이 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기합을 넣고 큰소리만 치고 악을 쓰는 식과는 전혀 다르다.
100대대에 견지 몇 달 지난 어느 날 나에게 서울의 장충단에 있는 미 314병기단에 사병 2명을 데리고 가서 탄약브리핑 업무기타를 배워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정식 탄약업무를 미군에서 인계받기 위한 사전교육이었다.
장충단의 어느 건물에 있는 미 314병기단에 가니 단장이 대령인데, 나를 다른 장교에게 일일이 소개를 해주었다. 약 20명의 장교가 있었는데, 이들 장교는 내가 야전에서 보던 고문관과는 달리 다 같이 교양도 높고 대단한 신사들이었다. 식사시간이 되어 장교식당에 가보니 아까 소개받은 많은 장교가 단장을 상좌로 하여 쭉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양식이 처음 생전이고 분위기 자체가 다르므로 어찌해야 좋을지, 당황하게 될 뿐이었다. 전에 들은 말도 있고 하여 보니 포크를 정말 왼쪽 손으로 쥐고, 오른손을 칼질을 한다. 나도 슬금슬금 눈치 채지 않게 옆 사람 하는 것을 보아가며 그 사람들 하는 대로 따라 하였다. 식사를 다 하고 나서도 식사를 했는지 얼떨떨하고 소화가 될 리가 없었다.
밤이 되니 어디 다른데 나가서 잘 데가 있느냐고 묻기에 잘 데가 없다고 하였다. 서울 시내는 아직 수복이 되지 않아 민간인이 별로 없었다. 그러면 자기들의 장교숙소에 함께 가서 자란다.
알려준 천막 속에 가보니 일렬로 야전침대가 쭉 열을 지어 놓여 있었는데, 그 하나를 지정해주었다. 그러나 밤이 어두워져 모드 잠이 들어도 불을 끄지 않아 촉수가 높은 전기불빛이 눈부시게 비친다. 그런데 미국장교는 모포도 별로 덮지 않고 발가벗은 채 하나같이 엎드려 자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낮선 풍경을 보니 잠이 올 리 있겠는가! 뜬 눈으로 하루 밤을 그대로 세고 말았다.
다음날부터는 다리 밑에 자더라도 좋다고 생각하여 다른 곳으로 나가서 잤다. 이 부대에서 교육을 받은 다음 춘천에 있는 100대대에 돌아가서 부터는 예하의 각 부대의 탄약현황을 수집하여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
도둑 대학원 다니다
전쟁도 1953년 7월 7일 휴전이 되니 여러 가지가 평온해졌다.
그런데 1950년 5월전 전쟁이 나기 전 대학원에 입학하였다가 자연 휴학이 된 형태이니 어떻게든 이것을 마쳐야겠다. 그때의 시국으로 봐서 제대라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어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춘천에서 어떻게든지 학교를 다니기로 하였다.
1953년 2학기에 등록을 하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원에 가서 수강을 하고 세미나를 하였다. 그 외출이 정식으로 허가가 난 것이 아니다. 감히 그때 상황으로 남 보기에는 공부하러 가겠다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너무 사치스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치를 봐서 슬쩍 무단외출을 한다.
생각해보라. 춘천과 수원의 거리가 얼마나 먼데. 그리고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남의 트럭을 얻어 타고 툴툴거리는 길을 수원까지 천신만고 왔다가 밤에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매주 한번씩 되풀이 하니 그것도 남의 눈치보아가면서 말이다. 한번 들통이라도 나는 날이면 그 이후의 조치는 뻔하다. 요행히도 3, 4개월은 그럭저럭 버텼다.
그때의 대학원 공부는 김호식 선생님이 주시는 논문, 지금 기억에 아밀라아제 등의 효소에 관한 논문을 주시는데, 이것을 다른 대학원 학생과 나누어 공부를 해 와서 각자가 돌아가면서 해석을 하고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돌아가면서 교대교대로 식사를 한 턱 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던 중 1953년 8월 27일 서울에 있는 505병기단으로 전속명령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