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아동복지과와 홀트아동복...

성남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다보니 어느덧 3년이 흘렀다.

교회사회사업을 하니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느낀 점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교회예산의 20%는 그 지역사회를 위해 써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는 교회 안의 일뿐만 아니라 문밖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오랜 소신이다.

성남교회에서의 활동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다보니, 서울시에서 관심을 갖고 나를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 서울시청 아동과의 변희남 과장이 나를 찾아왔다.

“언론을 통해 성남교회에서 하시는 일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서울시에서 아동과를 신설했는데, 오셔서 꼭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변 과장의 태도는 정중했지만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의지는 강하게 드러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회복지에 관한 열정이 뜨거운 것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새로 생긴 아동과의 책임자로서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변 과장은 나에게 아동과의 전문위원직을 제안했다. 나는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상의를 했다. 서울시에서 일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나는 1972년 2월부터 서울시청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동과의 전문위원이 되는 나는 어린이보호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만든 것이 ‘365일 어린이 보호운동’이다.

이 운동은 청소년 지도자 심인보와 함께 진행했다. 그는 이 인연으로 후에 삿갓 멤버로 오래 어울렸는데, 지금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고 없다.

이 운동을 하기 위해 먼저 ‘학교, 주말에도 개방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나는 학교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개방하여 아이들의 놀이터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도록 도왔다. 이 운동은 학교가 지역사회와 밀착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한편 청소년돕기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어린이미술대회를 개최하거나 아동의 발달을 위한 세미나도 여러 번 열었다. 이 일들을 기획하면서 행동과학연구소와 같은 다른 단체들과 협력해서 일을 진행했다

그런데 2년동안 열심히 일하는 동안 점차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당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伏地不動)한 모습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또 전문위원이라고 하지만 사무관 대우(직급으로는 과장과 계장 사이}로 있으니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진급이 되지 않는 문제점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기획을 해도 주사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묵살되는 경우가 많았다.

공무원의 봉급이 적은만큼 나도 서울에서 받는 월급이 무척 적었다. 직급대로 받는 것이니 나를 데리고 온 변희남 과장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현실이 눈앞에 닥치자 변희남 과장이 머리를 썼다.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을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내 봉급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지원하도록 부탁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서울시와 관련이 있어서 서울시 아동과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봉급을 받고 서울시에 파견직원으로 일했다. 그런 식으로 봉급문제는 해결이 되었다지만 진급이 안 되는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 1968년 12월 사은회를 마치고 강남대학 친구들과 함께

당시 나는 월급을 타면 아내에게 모두 주고 용돈만 다시 타서 생활했다. 그 용돈은 그야말로 차비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나가서 밥을 사먹으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없었다. 집에 친구라도 데려가면 아내는 밥상을 차리기 위해 친정에 가서 음식을 얻어 와야 하는 형편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형편은 회사 점심시간이 되면 여실히 나타났다. 점심시간이 되면 남자들은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고, 여자들은 도시락을 싸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었다. 여기도 저기도 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혼자 나와 냉수로 속을 달래야 했다.

퇴근 후 사람들은 술을 마시러 갔지만, 술을 잘 안 마시던 나는 그 자리에 낄 수도 없었다. 아니 나는 교회를 다닌다고 술을 안 마실 거라 생각한 동료 공무원들이 나를 술자리에 아예 처음부터 끼어주지 않았다.

직장동료들의 따돌림을 받으며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은 내게 너무도 괴로웠다. 그러던 중 어쩌다가 술자리에 끼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소주에 양주, 맥주 등 온갖 술을 나에게만 자꾸 권했다.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점을 잘 알았기에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마셨다.

술을 잘 먹지 않은 나였지만 말술을 잘 먹지 않은 나였지만 말술을 드시던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그 많은 술에도 취하지 않았다. 물론 나 또한 약점이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취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처음 갖게 된 이 술자리에서 잘 넘어갔기 때문에 동료들은 그 뒤로는 술자리가 생기면 나를 불렀다. 이제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문제는 당시는 유신정권 시절이라 통금시간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술을 먹다가 늦어지면 낭패를 당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가 있게 디는 날이면, 교통경찰을 하는 후배의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귀가를 하곤 했다.

결국 이 덕분으로 서울시청의 직원들과 잘 어울리게는 되었지만, 술 때문에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진급문제와 더불어 술 때문에라도 나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생각 끝에 나는 변희남 과장에게 봉급을 받는 홀트아동복지회로 가겠다고 말했다. 당시 홀트아도복지회의 책임자는 부청하 회장이었다, 그는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회장출신으로 나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부 회장은 내가 홀트아동복지회로 가면 나를 사회사업가협회(한국사회복지사협회)의 사무국장으로 쓰려고 했다. 내가 발이 넓으니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홀트아동복지회 구성원들의 반발로 나는 사무국장으로 발령받지 못했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나는 일 년만에 홀트아동복지회를 그만두고 나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