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탄약 병기단 근무
505병기단은 그 당시 서울 창신동에 있는 동덕여자고등학교 옆에 있는 어떤 고아원에 새로 창설된 부대였다. 미군에서 정식으로 탄약업무를 인계 받으려며는 314병기단에 대등한 한국군 병기단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때는 전에 장충단에 있던 미 314병기단이 그 당시의 동덕여자고등학교로 이동해와 있었다. 옆에 있어야 탄약업무를 배우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이 병기단의 탄약장교의 보직을 맡았다. 단장은 박무열 대령이나 탄약장교의 정식 T.O는 중령이었는데, 중위인 내가 맡았다.
원래 탄약업무는 생기는 것이 전혀 있을 수 없으니, 일반장교는 별로 좋아하는 직책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군 지휘계통은 인사권만 가지고 있고, 탄약업무는 마음먹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니 잘 모른다. 따라서 탄약업무는 한국군의 상관, 그리고 상급부대와는 별로 관계하지 않고 미 314병기단과 탄약장교인 내가 직접 연락을 하게 되어 있었다.
매일 춘천에 있는 100대대의 현황을 보고받아 이것을 미 병기단에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지금 무슨 탄약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어떤 탄약이었다. 전날 상당히 많은 수량이 있었는데, 이유 없이 그것이 오늘의 100대대 재고현황에서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진 것이다.
연유를 알아본즉 그것은 탄약의 조그마한 부속품인데, 이것을 큰 포탄으로 잘못 알고 이때까지 그렇게 보고해왔다는 것이다. 100대대도 505병기단 산하이니까 이것을 단장이 알기만 하면 무조건 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미 314병기단의 탄약장교에게는 보고 안할 수가 없었다. 미군 장교가 보고를 받더니 고개를 까딱까딱 하더니 실제 내일 모레 나와 함께 현지에 나가보자는 것이었다.
단장에게는 적당히 다른 용무로 간다고 핑계를 대고 미국 장교와 춘천에 가서 실제 전에 쌓여있던 장소를 답사하고 그쪽 고문관과 상의를 하더니 알았다는 것이다. 착오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그것으로 이 문제는 끝났다. 이것을 한국군 상부에서 알면 별로 관심도 없어 알려고 하지도 않다가 큰소리치며 처벌이니 어쩌니 야단이 났을 것이다. 이것도 미국군의 행정의 한 단면이다. 착오가 난 것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나중에 강원도 춘천에서 근부하던 김영래 동문(충남대학교 교수였다가 은퇴하였음)이 단본부에 함께 근무하게 되어 재미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일정기간 교육을 마친 505병기단은 춘천으로 이동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나 나는 1954년 4월 16일 부로 육군사관학교로 전속명령이 났다.
육군사관학교 교수
그 당시 육군사관학교는 진해에 있었다. 교수부 화학과에 배속되었는데, 사관생도에게 일반 화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마침 농과대학 농화학과 동기인 조덕현 군이 같은 화학과에 있어 언제나 공부도 같이 하고 대부분 여가시간도 같이 지냈다.
그러나 그 해 여름에 학교가 서울 태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 많은 짐을 화물열차로 이동하는 것은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여하튼 학교가 서울에 있으니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여름방학에 영동 집에 내려가 아내와 상호, 선호의 두 딸을 데리고 처음 서울 신설동에 방 하나를 빌려 새살림을 차렸다. 살림이라야 이불과 약간의 옷보따리가 전부였다. 그러나 새 살림을 차렸다 하여도 집에서 별도로 방을 얻을만한 돈을 가져오지 못했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 그 방을 나가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방은 방학 동안에 사글세를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집의 방을 얻으려하니 가진 돈이 모자라 난처하였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제기동에 그 전에 수원에서 조군과 함께 신세를 졌던 그 당시 경기고등학교의 역사 선생님으로 계시는 석만균 선생님의 집이 있어 찾아가 사연을 말한즉 언제나 인자하신 내외분은 방이 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기 집에 오라는 것이었다.
염치불구하고 그 집에 세를 들었다. 정말 지금생각해도 누구나가 베풀기 어려운 자비였다. 일생동안 그 분들의 신세를 잊을 길이 없다. 지금 미국 LA에 거주하시는 석 선생님의 가족에 행운이 깃들기를 다시 한 번 더 비는 바이다.
육군사관생도는 그 당시 11기생과 12기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반이 여러 개 있어 일반화학도 반이 많으므로 4~5명의 장교가 교수로서 강의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를 개설하지 얼마가 되지 않은 관계로 여러 가지 부실한 점이 있었다. 따라서 화학 교과서도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의 교과서를 그대로 번역한 것을 사용하였다. 실험도 약간은 있었다. 육군사관생도는 장차 우리나라 군을 깨끗하게 바로 잡겠다는 의지 아래 학교 교육도 명예제도라 하여 시험시간에도 교수의 감독이 있었다.
육사 교수 중에는 대학 학부 재학 중에 군대에 들어온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서의 교육 시간 외에는 나가서 그 전에 중단하였던 공부를 마저 마치기 위하여 자기들이 원래 다니던 학교를 다니게 하였다. 그러니 나도 어렵게 다니던 대학원을 이제 마음 놓고 다니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학기가 되었으니 졸업논문도 써야한다. 그 당시는 전쟁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상태이므로 자연화학계통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도 대개 실험을 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문장을 종합하여 논문을 꾸려나갔다.
나는 요행히 육사교수부 화학과에 있게 되었으므로 다른 사람보다 여건이 좋은 편이라 약간의 실험연구를 하기로 하여 “동김치 중의 비타민C함량의 변화”란 제목으로 동김치를 담구어 비타민C, PH와 산 등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니 지금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한 것이나 그 당시는 실험을 한다는 자체가 상당한 것이었다.
앞에서 말한 석만균 선생 댁에 아무 월세나 전세도 내지 않았고, 거처하였으나 가정생활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영외거주를 하는 것이므로 나 혼자가 먹는 것에 해당하는 식량과 약간의 부식비로 요사이 환산하면 5만원정도 될까 말까 하는 5천원의 돈을 매달 주었다.
한 사람의 식량으로 온 식구가 먹고 지냈고, 땔감으로 쓸 연탄 살 돈도 모자랐다. 착한 아내는 불평 없이 살림을 꾸려나갔는데, 나와 아이들은 그대로 먹게 하고 자기는 시래기국을 주로 먹고 점심을 먹지 못하는 수도 있었다. 근처에 있는 제재소에 가서 나무를 켜고 난 찌꺼기 모서리나무를 사서 이고 와서 땠다. 이것이 연탄보다 값이 싸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비교적 생활이 넉넉했던 석 선생님이 아내가 어린아이를 업고 나무를 이고오는 것을 보게 되어 안쓰러운 나머지 외면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것을 훗날 두고두고 되풀이한 석 선생의 회고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