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장, 의사시니어클럽 운영위원장
수필은 마음의 고향이며 나그네 길입니다. 몽테뉴는 수필을 자기 고백적인 글이고 사색과 검토의 글이라고 하였습니다.
의사 수필가 김화숙 선생님의 《나의 열정 나의 소망》은 자전적 에세이 모음 첫 작품으로 저자의 인생 여정이 마치 석양에 비친 황금물결 같아 누구나 읽고 나면 쉬이 잊혀지지 않는 찬란함과 숙연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고희를 넘긴 작가는 ‘여성의 얼굴에는 개인의 스토리가 새겨져 있다. 기쁨과 보람과 더불어 수많은 좌절, 번뇌, 슬픔, 고통을 이겨낸 흔적이기도 하다.’라며 글 속의 에피소드마다 저자가 겪어온 인생의 편린들을 보여줍니다.
필자와의 교분은 저자가 20년 전 내과 개원의로 서초구의사회 임원을 맡고 활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의료계에는 현안 해결을 위해 합리적이고 적극적 행보를 하는 젊은 여의사가 거의 없었기에 저자의 독보적인 활약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오늘까지 뜨거운 열정으로 현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지켜본 저자는 항상 미소 띤 밝은 표정에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교성이 뛰어난 분이면서 일처리는 매사에 철저하고 원칙주의자였습니다. 한 치 앞이 불안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심약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을 접하고 난 뒤에도 내면은 강한 자아와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저자의 발자취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네 아이의 어머니였으나 주부 노릇을 해본 적 없는 저자가 덴마크 연수 시 경험한 김치 담기의 실패 정황은 종양학을 연구한 젊은 날의 치열한 학문 수련에 대비되어 독자에게 큰 공감을 주고 웃음 짓게 합니다. 인생의 후반부로 가면서 저자는 꿈꾸듯 자신의 일생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련하게 그려줍니다.
‘내 영정 앞에는 흰 국화꽃보다 내가 좋아했던 젊은 날의 사진들과 예쁜 꽃, 나의 수필집, 즐겨 듣던 음악 앨범, 손때 묻은 청진기가 놓인 장례식장’을 바라는 모습에서 여성의 정체성과 순수함을 불쑥 내비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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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호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장 [출처 ; 유석희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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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족사랑의 밑바탕에는 저자의 가슴 속 깊이 존재하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볼 수 있습니다. 자랑거리 일 수밖에 없는 저자의 의사 패밀리 모두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이 깃든 교육과 깊은 인생철학을 먹고 자랐기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추억합니다.
그러나 별세하기 전의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은, 유년시절부터 집안의 대들보였던 오빠의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은 충격과 슬픔과 상처로 남아 저자의 글 곳곳의 행간에 자리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국립의료원 스텝에서 개원의사로 변신할 때의 저자의 번민은 우리 의사들 대부분 겪는 선택의 갈등인데 저자는 ‘죽음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환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과연 얼마나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를 자문하며 실존의 한계에 도달합니다.
그러면서 개원의사로서 삶을 이렇게 다짐합니다. ‘작지만, 정도를 가는 병원’ ‘환자가 진료실을 나갈 때 만족하고 나갈 수 있는 병원’ ‘만약 내 가족이라면 어떤 방향으로 진료할까?’ 이런 고뇌를 바탕으로 결국 성공적인 개원의로 인정받으며, 저자는 의료계와 동창회, 동문회 여자의사회의 지도자로 그의 역량을 맘껏 발휘하셨고 오늘 날 존경받는 자랑스러운 여자의사 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스스로 자기 인생을 정리합니다. ‘여자 의사로 살며 수련, 결혼, 출산, 육아, 진료, 연구, 해외 연수, 주부, 시댁, 친정…. 하얀 백색광에서 일곱 가지 빛을 만들어 내는 무지
개가 나의 인생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동안 나는 어떤 호칭을 갖고 살아왔나? 아가씨 의사, 아줌마, 선경 엄마, Dr. Kim, 원장님, 회장님, 고문님, 박사님 등이다.’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자기 성찰은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지금은 잠시 쉬어야 할 때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삶의 진실을 형상화하고, 작가의 체험적 내면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장르입니다. 저자의 이번 첫 수필집 《나의 열정 나의 소망》이 자전적으로 정리되면서 긴 세월의 체험을 향기 짙은 철학으로 회고하였기에 또 다른 수필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의사의 길을 걷는 동료와 후배들 특히 여성 의학도들에게 필독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