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부터는 서울종합직업훈련원에서 훈련부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대학동기인 윤기가 공생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이 훈련원의 이사장이었다.
원래 서울종합직업훈련원은 서울시가 맡고 있었다. 그때 삼선교에는 소년 직업훈련원이 있었고, 한남동에는 소녀 직업훈련원이 있었다. 그런데 직업훈련원 생활이 무척 열악했던 모양이었다. 이 아들이 배가 고프다며 비 오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데모를 하며 서울시청으로 진격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분란이 있고 난 뒤 당시 양택식 시장은 직업훈련원을 민간에게 위탁시키려 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서울시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때 윤기를 변희남 과장 집에 데리고 가서 “이 친구가 훌륭한 사업가입니다. 믿고 맡겨도 좋을 겁니다.” 하면서 소개시켜 준 일이 있었다.
윤기는 사회복지사협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천성이 일을 좋아하고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일을 잘 하기 위해 밤새워 토론하고 공부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에 그는 인정을 받았고, 서울시 직업훈련원을 위탁받을 수 있었다.
윤기는 그 전부터 내게 직업훈련원 일을 같이 하자며 권했지만 나는 “친구하고 일하고 싶지 않다. 친구와 일하면 사이가 나빠질 수 있어.”하면서 거절해왔던 터였다.
나와 각별했던 윤기는 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지사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공부만 하던 그는 어느 날 자살한 재일교포 노인이 죽은 6개월 만에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그 뉴스를 듣자마자 그는 자신이 가야할 곳이 사회복지의 길임을 깨달았다.
동지사대학을 중간에 그만둔 그는 재일교포 노인들을 위한 ‘고향의 집’이라는 노인시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사카, 고베, 교토, 동경에 각각 자리를 잡은 고향의 집은 한일국교 정상화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도 일본을 방문하면 꼭 들르는 곳이 고향의 집이었다.
윤기가 이사장으로 있는 공생복지재단은 목포 공생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목포 공생원은 1928년에 윤치호 전도사가 먹을 것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던 7명의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 당시 윤기의 어머니인 윤학자 여사가 전쟁 고아인 아이들 500여명과 같이 생활하면서 크게 알려졌다.
윤기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인이지만 한국에 보인 사랑과 희생에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윤학자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목포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그 죽음을 애도했으며, 목포시는 목포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예를 보였다.
윤기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사회복지의 길에 더욱 매진했다. 친구이지만 그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와 사회복지의 미래에 대해 토론을 하다보면 날이 가는 줄 몰랐다. 그만큼 윤기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회복지의 한 길에 몸을 던졌다.
그런 윤기가 내가 한국청소년연맹을 그만두자 더 적극적으로 내게 직업훈련원에 와서 일해주기를 권유했다.
“네가 훈련원을 맡아라. 네가 이 사업을 하도록 추천한 거 아니냐?”
그의 끈질긴 요청에 결국 나는 직업훈련원의 책임자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서울시 암사동에 있는 직업훈련원에서 훈련부장을 맡았다.
직업훈련원에 간 나는 주간에는 학교에 못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야간에는 실직 상태에 있는 영세민들에게 직업훈련을 했다. 이곳에는 학교에 나왔지만 한글을 몰랐던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 학교는 낙제제도가 없었기에 졸업을 해도 한글을 모를 정도로 학교에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된 아이들이 있었다.
나의 선배인 엄문웅 장로는 당시 배재중학교 교감이었다. 엄문용 교감은 내가 직업훈련원에서 한글 교육을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학급에서 한명씩 해서 30명을 데리고 왔다. 한글을 몰라 학교 교과과정을 따라잡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엄문용 교감은 내게 :“우리 아이들 좀 입학시켜 달라.”고 부탁해왔다. 그때 직업훈련원에는 들어오려는 아이들이 많아 힘들긴 했지만, 나는 최대한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와의 관계 속에서 학생들의 교육과 지도를 하면서 나는 적지 않은 희열을 느꼈다. ‘학교 교육의 사각지대에 이런 문제가 있구나.’ 나는 학교 교육에서도 소외받고 있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할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직업훈련원의 조직은 원장을 중심으로 훈련부장이 있고, 교무과, 총무과, 생활지도과 총 3개과로 구성되었다. 내가 훈련부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힘썼던 것은 직업훈련개발과 심성개발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유네스코 연수원으로 1박 2일 동안 연수훈련을 자주 갔다. 거기서 축구도 하고 놀다가 오면 아이들은 감동했다.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소리 지르며 놀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사회사업과 학생들까지 동참시켜 직업훈련원 아이들의 생활지도와 심성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했다. 체육대회와 여러 행사를 통해 인성훈련을 시키는 등 사회사업과 학생들과 열러 활동을 펼쳤다.
직업훈련원에서는 직업교육을 위해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는데, 무엇보다 실습현장이 중요했다. 그러면 능력 있는 교사를 채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자격 있는 사람 중에 현장실무에 강한 사람으로 실기 교사 2명을 뽑았고, 이론교사 한명을 교사로 배치했다.
이곳에서는 기계정비나 자동차정비, 가구, 디자인, 인쇄, 조립 등 직업훈련원에서 실습을 하고 현장에 나가면 곧바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1년 과정만 가지고는 불가능했다.
직업훈련을 통해 제대로 된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직업훈련원시설에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었다. 투자가 필요하다면 제도의 개선도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