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총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내가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문화예술의 공급과 수익성 제고라는 두 가지 명제였다. 문화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예술 경영원칙이다. 즉, 문화예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한편 수익모델을 창출하여 이익을 극대화해 나가기로 하였던 것이다. 예술에 기업의 경영 전략을 접목한 것이다.
나는 우선 세종문화회관을 활성화하기에 앞서 미국의 링컨센터, 프랑스의 퐁피두센터,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적인 센터와 유명축제들을 조사 분석하여 옛날 시민회관 시절부터 따져 개관 50주년을 맞는 2011년까지의 장기 전략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을 세계적인 복합문화예술센터로 도약시키기 위한 극장의 개선작업에 착수하였다. 브로드웨이를 브로드웨이답게 만드는 것이 극장이듯이, 세종문화회관이 예술의 요람이 되어 광화문 일대를 예술의 향기로 가득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나의 구상이었다.
이에 따라 나는 먼저 극장의 얼굴인 로비와 야외무대를 고치고, 그동안 오래 방치해두었던 컨벤션센터와 컨퍼런스홀을 이벤트홀과 학술세미나장으로 일반에 공개하였다. 그리고 1978년에 개관되어 20년이 넘은 노후시설 중에서 파손이 심한 전기, 통신, 소방, 기계, 시설과 화장실을 전면적으로 보수하였다.
또한 중앙계단 상부공간에 극장을 상징하는 유리돔을 설치하였으며, 대극장에서 뒤편 분수대광장을 잇는 통로에는 아케이드 ‘아트피아’를 조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종홀과 소연회장, 식당과 커피숍에 이르기까지도 각종 포럼과 행사 및 회의를 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사계절을 상징하는 야간 조명등도 밝혀놓아 한밤중에도 도심 속의 문화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인지될 수 있도록 하였다. 봄이면 회관 정면 계단에서는 북소리 합주가 울려 퍼지고, 뒤편 분수대 공연장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합창단이나 교향악단의 ‘깜짝공연’이 펼쳐져 직장인들에게 단비 같은 휴식처가 되도록 하였다.
외형적인 개선에 이어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의 각종 공연도 질적 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였다. 나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세 가지 특징, 즉 상업적인 뮤지컬, 예술성과 흥행성을 가미한 이벤트성 공연, 순수 예술성만 추구하는 질적 수준이 높은 공연 들을 벤치마킹하였다. 따라서 대중적인 작품 50%, 순수예술작품 70%를 유지하여 중간층의 고객을 대거 끌어들인다는 전략으로 나갔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종래에 대관에만 의지하던 세종갤러리에 원로와 종진이 참여하는 초청 개관 기념전을 직접 기획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대가들의 명화전을 계속해서 열었다. 대극장에서는 정명훈 지휘의 팝콘서트, 백건우와 파리 앙상블, 스위스 보리스 베자르 발레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초청 공연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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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과 슈튜트가르트 발레단을 초청하여 내한공연을 가진 후 축하 리셉션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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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직접 러시아에 가서 볼쇼이발레단을 초청하였고,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 프랑스 문화의 날에 공연될 프랑스 로열딜럭스 마당극을 유치해왔다.
그러나 외부 단체의 초청공연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부 산하단체의 공연 수준이 떨어지면 극장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세종문화회관 산하의 9개 예술단체의 정기 공연도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런 일환으로 매년 예술단원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을 심사하게 된 것이다.
시립 산하 단체의 단원이라면 적어도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중의 프로들이 펼치는 숙련된 공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보리스 베자르나 슈투트가르트를 부러워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바로 그들과 대등한 실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한편 나는 예술의 전당에서 후원회를 조성한 것처럼 세종문화회관에서도 후원회 조성에 앞장섰다. 우선 당시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를 후원회 명예총재로 모시고, 강원룡 목사를 총재로 위촉하였다. 그리고 박용성 상공회의소 소장을 후원회장으로 추대하여 200명 가까운 회원을 확보하였으며, 이들 후원회를 통하여 모은 후원금은 총 4억 7천만 원이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나는 세종문화회관의 재정 자립도를 2000년 19.5%에서 2001년 26.3%, 2002년에는 36.3%로 끌어올렸으며, 전국 극장 중 가장 우수한 극장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총감독이 된지 1년 반 만에 나는 ‘사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총감독’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사장’이나 ‘대표’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세종문화회관 간부들과 논의해보니 ‘대표’보다는 예술의 전당처럼 ‘사장’으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하여, 소정의 절차를 밟아 명칭을 ‘총감독’에서 ‘사장’으로 바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