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으로 휴양
이제 치료는 할 만큼 해보았으나 차도가 시원치 않아 좋은 고향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형제들과 상의하여 고향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집은 대충 손을 보고 부활축일 보고 그 이튿날 병원에서 고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화댐 상류경치가 좋은 양옥집이었다. 이 집은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가족별장으로 지었고, 오랫동안 장형께서 어머님을 모시고 살던 곳이다.
이곳에 오면서도 건강문제 특히 비뇨기과와 우울증은 치료 중이었다. 다만 고향이란 향수가 나를 위로해주기는 했지만 병마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평소에 꿈꾸었던 자연과 어 가까이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금 편안했다.
다행히 아랫마을에 하동공소가 있어서 주일이면 그곳에서 미사도 봉헌해주고 신자들과 친교도 있어서 좋았다. 시간을 메우기 위해 서예도 하고 짬짬이 글도 썼다, 마당 한편에는 텃밭이 있어서 그곳도 들랑거려봤지만 수확은 없었다.
고향집에서 닭이랑 토끼랑 강아지가 친구도 되기도 했지만 육체의 피로감으로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이때 남원의료원에서 위내시경과 장내시경을 했는데 대장에서 용종을 5개나 제거하다보니까 퇴원 후 출혈로 재입원을 한 적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노후에 병원과의 관계가 불편한지 모르겠다. 이런 중에도 고통을 잊어보려고 일감을 찾아 남원의료원에 일주일에 한 번씩 미사를 봉헌해드리고 환자들을 위로해주는 일을 자청했다.
남원성당 박성팔 신부가 도와주었고, 병원담당 수녀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한 아우가 자주 찾아와 숙식을 같이 하며 함께 해주었다. 가끔씩 골프장에 나가 나이 건강을 챙겨주기도 했다. 때로는 이웃마을에 있는 형님내외분도 찾아와 도움을 주었고, 공소 신자들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먼 곳까지 와서 식당도우미로 나를 챙겨준 루시아 자매님에게도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고마워요.
내가 고향에 머물면서 병상일기를 적은 중에 한두 가지가 생각나는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누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부처님은 인생을 고해라 했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게라 했다.
부처님도 지친 고행을 멈추고 수행 길을 찾았으며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고 싶었다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어주소서 하였지요
하물며 평범한 인간에게야
고통은 참기 어려운 고문이겠지요
세상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의 길목에서
교회와 사찰에서는 기도소리가 멈추지 않지만
병든 세상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더라
누가 이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아! 인간인 나는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네
다만
미생물은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듯이
고통 또한 신앙의 눈 없이는 볼 수 없는 것
고통은 누구나 원하지 않지만
의지만으로는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는 길을
예수님 말씀하시네요
자기 몫의 고통의 무게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도 하네요
십자가 뒤에는 부활이라는 선물도 약속했지요
신앙인은 십자가의 두려움도 크지만
부활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답니다
아멘.
흙무덤
흙무덤 내 고향 하늘 아래
사계절 꽃피는 청춘이었는데
세월 간 고향 땅엔
주인 잃은 흙무덤만 늘어나고
할미꽃만 피었더라
병들어 찾아온 고향 땅
인걸은 어디가고
밟히는 게 추억이요
재이는 게 흙무덤뿐이더라
고향에서 약 1년간 지내다보니 사람이 그리워졌다. 식당 자매에게도 외딴곳에서의 생활은 힘들었다. 나 하나 편하자고 자매님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는 것이 마음 쓰였다. 이곳에서 더 이상 머문다는 것이 나에게도 함깨 한 자매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고 본당을 바로 맡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교구청에 상의해보니 마침 요셉동산 양로원 지도신부가 유학을 가게 되어 자리가 비었다는 답변이었다. 나에게는 안성맞춤의 자리였다. 이렇게 되어 요셉동산과의 인연이 맺어졌다.
내 몫의 무게
나는 어느 순간 건강을 잃고 나서 삶이 갸우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을 찾기 위해서 병원을 들락거렸고, 명의를 찾아 도움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모두가 희망을 주지는 못했다.
한때는 희망의 끈을 놓기도 했었지요.
어느 날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를 아는 사람들의 기도소리였습니다.
나는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다보시는 예수님
성체불 앞에서 내려다보시는 예수님
나는 지금도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내 몫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나에게 덜어주라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 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 고통의 무게는 가벼워졌습니다.
주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은인들에게 축복해주시고
청하옵건대
제 몫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또한 자비도 베풀어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