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 뚜, 묵직한 저음의 기적이 사무실 창을 흔들면 또―, 또, 작은 고동들이 경망스레 섞여든다. 부두에서 몸을 떼거나 붙이려는 모선(母船)과, 그의 운신을 도우려는 예선(曳船)들의 호응이다. 보나마나 지금은 고조(高潮) 전 후 한 시간 이내의 시간대이며 도크는 들고나는 배들로 분주할 것이다.
양묘기(揚錨機)가 감아올리는, 혹은 풀어 내리는 닻줄 소리와 펄럭이는 깃발, 반쯤 드러난 스크루가 공중으로 차올리는 물보라 등.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나섰던 삼십 리 길 읍내 오일장터의 그것 같은 설렘이다. 거기에 항구 특유의 애조가 해무(海霧)처럼 깔려든다.
내가 항구도시에 연을 두게 된 것은 20년 전이었다. 전신이 국영(國營)이었던 해운회사를 그만두면서부터였다. 회사의 부도에 따른 은행관리로 새 주인을 기다리는 기간과 절차의 갈등이 가볍지 않았다. 십칠 년 동안 여념 없이 근무했던 첫 직장이었지만 사표를 제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능력 있는 재벌의 등장으로 회사의 전도가 양양해진다면서 잠시만 참자는 만류도 있었지만 나로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게 사람을 보낸 이가 바로 항구도시의 어느 회장이었다. 대기업도 좋긴 하지만 이제는 조금 느긋하게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전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항구도시의 인연이었다. 그렇게 한 십 년을 지내고 나면, 내가 웬만한 속박들은 벗어나리라는 기대였다. 그렇게 십 년을 살았건만 내가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엮은 생업의 기틀이 바로 지금의 사무실이다. 그로부터 어느덧 또 십 년이 되어 간다.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업종이다. 이곳에 지점이나 사무실을 두고 있지 않은 선주들의 업무대행이다. 그러자니 거래처는 대부분의 외국 선박회사들과 약간의 국내 해운회사들이기 마련이다. 그들 선박들의 입항과 출항을 수속하며 일체의 용역을 주선하고 관리한다.
젊은 직원들이 항구와 배를 오르내리는 사이,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간혹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다. 대부분이 지인들의 소식이나 안부, 아니면 각종 모임의 연락사항들이다. 현장 업무에 관한 것이라면 굳이 내가 받지 않아도 된다. 어느덧 다가온 노을빛 시간의, 내 작은 삶의 조촐한 여유다.
나도 가끔은 부두로 내려가서 배의 트랩을 오르고 선장실을 노크한다. 선장이 내어놓는 캔 맥주를 그와 함께 마시면서 그로부터 대양과 항로의 소식을 듣는다. 바다가 삶의 터전인 그들과의 대면은 언제나 베링(Bering) 해의 미역냄새 같은 풋풋한 자극이다. 그러고도 시간과 취흥에 여백이 생기면 나는 그를 도시의 주점으로 안내한다.
불고기에 소주 몇 잔을 곁들이면 그들은 이내 소년처럼 행복해진다. 그런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바다색깔로 푸르고 맑다. 해발 십 미터 언저리의 활성오존에 긴 세월 밤낮없이 씻긴 효과다.
어둠이 짙어지고 항구의 불빛이 그만큼 더 빛나면 그와 나는 작별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
“행운의 항해를……”
“다음에 또, 건강히……”
인사가 좋아 재회의 다짐이지. 그와 내가 다시 만날 일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득하다.
그는 항구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지낼까. 더 짙은 알코올의 취흥으로 몰입할까. 아니면 또 다른 본능으로 탐닉해 갈까. 어쨌든 그는 순수하다. 항해가 지속되는 한 그는 영원의 나그네이므로.
밀물처럼 다가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져가는 그들의 모습이 좋다. 그래서 나는 자주 사무실 뒷산, 맥아더의 동상이 있는 공원의 숲속에 숨어 앉아서 아득한 시간 저편의 추억과 선망의 눈길로 그들을 전송한다. 출항의 깃발을 해풍에 날리면서 수평선 너머로 스며드는 그들의 건강한 자유가 부럽다. 그러면서 아는 이 없는 공원 벤치에서 혼자 외롭다.
가능키나 하다면 나도 다시 바다로 나가고 싶다. 그래봤자 이제는 서양의 옛 시인이 노래했던 타륜(舵輪)이나 흰 돛대, 껄껄대는 친구들 같은 사치는 이미 없음을 안다. 그러나 잿빛 안개에 싸인 바다 위로 훤하게 트여오는 새벽하늘, 무지개를 뿌려대는 뱃머리의 물보라, 밤하늘의 별자리와 길잡이 항성들이야 지금도 여전하리라.
스콜보다 무성한 남지나해의 저녁놀, 쪽빛 산호해의 상아빛 준령 대보초(大堡礁), 인도양과 대서양이 합수하는 희망봉의 삼각파도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정말이지 그럴 수만 있다면 이대로 죽 항해만 하다가 어느 날에 문득 대양의 물굽이를 베개 삼아 내 마지막 잠에 들고 싶다. 그러나 이제 내겐 항해가 허용되지 않는다. 가난했던 나라의 국비로 항해사가 되었으면 종신 항해가 본연이겠거늘, 육상에서 해운을 영업한다면서 젊음을 오염시킨 인과에의 응보다. 진정 항해는 세파에 찌들지 않은 우직한 사내들의 몫인 것. 그러기에 나는 지금 더는 다가갈 수 없는 물 기슭에 멈춰선 채, 잃어버린 낙원에의 그리움만 절실한 것인가.
바닷길이 막혀있다면 전원의 오솔길이라도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수월하지는 않으리라. 아득한 어느 날, 도시에의 바람이 들면서 야멸스레 뿌리쳤던 땅. 그곳의 삶과 전통이 가난과 무지의 원천인 양 혐오하며 외면했던 그 산하를 맨송맨송 찾아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터득한 허영의 겉치레를 말끔히 벗어던지고 떠나올 때의 알몸으로 돌아간다면, 언제나 묵묵한 그곳의 산과 강은 돌아온 탕아를 맞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받아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만 내 탯줄과 태반을 묻은 그곳 전원이야말로 나를 낳고 기른 아버지요 어머니일 테니깐.
두렵고 힘들더라도 떠나야 한다. 혼탁한 도회지의 기틀을 접고 각박한 시가지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아직도 창창한 여생에 재2의 성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의 삶이, 이 땅에 출생을 신고하고 자라나서 가정을 엮어 후손까지 퍼뜨린 생존의 부역(賦役)이었다면 이제부터의 그것은 내 본래의 원형으로 회귀하는 과업이리라. 왔다가 돌아가는 한 살이에 볼품이야 있든 없든 꽃을 피우고 열매로 익어가는, 참으로 소중한 과정이리라. 그러나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기도 하리라.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비명에 횡사하는 삶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러기에는 우리들 각자의 존재가 너무나 존귀하다. 나의 고고지성에 어머니는 출산의 고통을 감읍으로 적셨고 할머니는 구부러진 열 손가락을 마주 부비면서 삼신할미의 점지에 사은의 치성을 올렸다.
기왕에 나설 길이라면 흔쾌히 내닫을 일이다. 몸과 마음에 약간의 기운이라도 남아있을 때에 감행해야 한다. 자칫 머뭇거리거나 움츠리다가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침의 약수터와 저녁의 경로당이 생활의 직경으로 굳어져서는 큰일이다. 어느 세상이든 소용없는 잔존은 쓰레기가 된다. 이웃 어느 나라에서는 정년 후의 무위도생을 그의 아내들이 낙엽이라 부른다던가. 쓸어도 쓸려나가지 않으려고 달라붙는 그것들은 젖은 낙엽이라던가.
편안한 휴식이야 애초에 어디에도 없는 것. 백 가지의 풀과 나무들이 서로 다르듯, 외롭더라도 나만의 오솔길을 찾아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삶과 죽음까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가야 한다. 쉬엄쉬엄 걸어도 좋으리라. 그러나 중단 없이 걸어가야 한다.
어둠이 깃드는 숲속에 눈마저 푹푹 내리지만 아직은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던 서양 어느 시인의 행보가 좋다. 우리네 매월당의 만청(晩晴)은 더욱 절실하다.
날이 저물도록 짚신발로 걸었네
산 하나를 지나면 또 하나의 푸른 산
마음에 상(像)이 없는데 형(形)이 어찌 있겠으며
도(道)의 근본에 명색이 없거늘 어찌 거짓 도가 있겠는가.
간밤의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았건만 산새는 노래하고
봄바람이 다 불지 않아도 들꽃은 피는구나.
짧은 지팡이 짚고 돌아가는 길에 첩첩봉우리들이 조용하고
비취빛 아지랑이 속에 내 저무는 날의 파란 하늘이 열리리.
(종일망혜신각행:終日芒鞋信脚行, 일산행진일산청:一山行盡一山靑.
심비유상해형역:心非有像奚形役, 도본무명기가성:道本無名豈假成.
숙무미희산조어:宿霧未晞山鳥語, 춘풍부진야화명:春風不盡野花明.
단공귀거천봉정:短笻歸去千峰靜, 취벽란연생만청:翠璧亂烟生晩晴.)
■만청(晩晴) : 해가 지기 전에 파랗게 개는 하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