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유승현 신부에게도 여러분에게 알려지지 않은 아픈 상처가 있었답니다. 신학교에 도전했다가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고 인내하며 다시 도전해서 오늘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그가 책한 성서구절에서 용기를 가져라 하는 말처럼 실망하지 않고 주님께 끝까지 매달려 그분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만을 보고 물 위를 걸어간 그 용기가 오늘의 영광이 된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에게는 성소가 없는가보다 하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 신부님은 예수님만 바라보며 물 위를 걸어서 주님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 믿음과 용기와 인내와 성실함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선배사제로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제는 첫째로 성무일도와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거룩한 성사를 집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권한은 사제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직무입니다. 사제만의 특권이요, 은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이 희생 봉헌하셨듯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봉헌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사제의 길은 영광의 길이기도 하지만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사제의 성소는 죽을 때까지 완성하는 것이지 사제서품을 받았다고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사제가 되는 것보다 사제로 평생 거룩하게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부터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축성된 기쁨을 잊지 말고 평생토록 성실히 살아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는 둘째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입니다. 혹시 젊었을 때 게으름을 치우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소홀히 하지 마시고 미사시간 20~30분 전에 항상 사제가 먼저 성당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신자들은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기도하는 신부 거룩한 신부라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
어느 가톨릭잡지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신자들은 똑똑한 사제를 원하기보다 성스러운 사제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사제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제는 참 인간이거나 참사제이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라도 신자들에게 만족시키면 성공한 서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고 많이 반성해보았습니다. 사제 이전에 인간이 먼저이지요.
그리고 노파심에 한마디 더해보면 신부에게도 유혹이 있답니다. 어느 글에서 보니까 그 사람을 시험해보려고 여자와 돈과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제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늘 경계하며 기도로 잘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신부는 주일강론은 물론이고 매일미사 강론까지 성실히 준비해야 합니다. 신자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감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원고를 적어서 또박또박 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몇 년 지나고 나면 강론의 원고가 한권의 책으로도 될 수 있고 본인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유 신부님의 부모님과 그 가족들에게도 부탁말씀 드립니다. 새 사제의 부모님은 기쁨은 잠시뿐이고 앞으로 남은 날들을 아들 때문에 마음 졸이며 지낼 때가 많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개인 누구누구가 아니라 어느 신부님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릴 것입니다. 영광스럽기도 하겠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아들 신부가 실수나 하지 않을까? 다른 사름들에게 나쁜 소식을 듣지 않을까? 얼굴이 축이 나면 건강이 어떤지 걱정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사제 부모님도 사제와 함께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볼 때 유 신부님은 거룩한 사제로 부모님들도 지금까지 하느님 안에서 살았으니 주님께서는 잘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 여러분에게 부탁말씀 드립니다.
사제란 선택받은 하느님의 종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인간적으로 약점이 많은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허물을 보지 마시고 축성된 사제로 보시고 성인사제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새 신부에게 아버지 신부로서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가면 도리가 아니지요. 제가 오늘 강론한 원고를 신무님께 선물로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강론원고를 쓴 것입니다. 생각나면 한 번씩 읽어보시고 오늘의 축복을 기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제는 누구인가>라는 좋은 시가 있어서 소개하면서 제 말을 마치겠습니다.
사제는 누구인가?
사제여!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대는 무로부터 왔느니라.
그대는 그대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는 하느님을 향하는 중재자요, 제사장이니라.
그대는 그대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느니라
그대는 그대의 것이 아니니 그대는 모든 이의 종이니라
그대는 그대가 아니니 그대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이니라
그러면 그대는 무엇인고?
사제여!
그대는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것이니라, 아멘!
-2013년 1월 18일 원평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