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병원장을 맡은지 6개월이 되자, 병원은 1천 병상이 다 가동 되면서 수지도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무렵이었다. 1990년 9월 11일, 병원이 홍수에 잠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피해 정도는 훗날, 그러니까 2005년 뉴욕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커트리나가 현지 병원을 꿀컥 집어 삼켰던 장면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잘라 말해, 그 날의 사건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만한 재난이었다.
홍수로 인해 삽시간에 지하 3층은 물론 지상 1층까지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당연히 전기, 상하수도, 통신수단이 한꺼번에 마비되었으니, 건평 2만 8천 평이나 되는 거대한 병원이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천명에 가까운 병원 입원 환자들을 비롯하여, 방문객, 외래 환자, 직원 등 약 5천명이 고립된 병원 속에 갇혀 있었다.
이 재난을 극복하고 복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천여 명에 가까운 입원 환자를 후송하는 작전과 곧 이어 총력을 기울여 행해진 복구작업은 일찍이 그 전례가 없던 한편의 인간 드라마였다.
지금도 그 당시에 겪었던 홍수사태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홍수가 나기 전날, 오후 늦게부터 비가 심심치 않게 내리더니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할 때부터는 하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내리붓는 듯한 굵직한 장대비가 무서우리만치 쏟아졌다. 빗물이 도로에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보자 걱정이 되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밤새 얼마나 비가 왔는지, 다음날 아침 8시경 풍납동 근처에서 빗물이 도로로 넘쳐흐르는 바람에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혀 올림픽대로로 돌아서 출근했다. 나는 2층 원장실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 진입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한강의 지류인 성내천과 병원을 한 획으로 가르는 제방을 마주했다. 금방이라도 제방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안광식 시설과장을 불러 병원이 안전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큰일입니다. 만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배수 펌프장이 침수로 작동을 멈추기라도 하면 당장 병원에 물이 차오를 것입니다.”
안 과장은 우선 지하실 쪽의 누전을 방지하기 위해 변전기와 발전기를 끄겠다고 말했다. 상상하기도 싫었지만 아무래도 병원이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는 실무자의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퍼뜩 1천 병상의 환자 및 중환자실 환자들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즉시 최종무 기획실장과 관리실의 정택모 관리부장, 그리고 이명선 총무과장 등에게 지시를 내렸다.
“현재 수술하고 있는 사람은 빨리 수술을 끝내고 지금부터는 수술을 새로 시작하지 말라고 하세요. 인공신장실도 전기가 없으면 꼼짝하지 못할 테니까, 그곳 환자들도 지금 치료를 중단시키고, 지하층 직원들에게는 주요 서류 등을 챙겨 당장 대피하라고 명령하세요. 자, 빨리 빨리 움직여요!”
이미 방송으로 알렸고, 지하에 있는 주요 장비와 의무기록 차트 등 중요한 서류들은 지상 층으로 옮기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홍수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를 인명피해가 제일 걱정이었다.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더욱 커져만 갔다. 지하층에서 인원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울산대 의과대학생들을 동원해 의무기록지를 3층 위쪽으로 운반하도록 지시했다.
“식당 사람들도 빨리 식사를 마치게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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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 9월 11일의 대홍수에 대한 조선일보 1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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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원장실은 이미 작전상황실로 바뀌어 있었다. 수재 기록 일지를 기록하는 임형석과 나의 지시를 기다리는 몇몇 직원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정확히 오후 1시 30분. 물이 병원 안으로 들이닥쳤다. 누런 황톳물이 병원 건물을 향해 봇물 터지듯 밀어닥치는 기세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널찍한 진입로를 타고 한꺼번에 밀어 닥친 물이 병원 건물을 향해 밀려오면서 그 물을 수용할 공간이 좁아지자 굳게 닫힌 문을 밀고 삽시간에 쳐들어왔다.
놀란 나는 건물 안쪽 창가로 달려갔다. 아래층의 닫힌 문을 집채만한 물귀신이 밀어뜨리다시피 하면서 그대로 무자비하게 자리 잡는 것을 보았다. 물살의 힘이 어찌나 세고 빠르던지, 보고 있는 내가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병원은 이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순간에 전기가 죽어서 엘리베이터며 화장실의 수세용 탱크도 작동을 멈추어버렸다. 동시에 수돗물도 공급이 중단되었고, 전화기선을 매설한 곳도 물에 잠겨버리는 바람에 통신두절상태가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다.
갑자기 병원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클랙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얼른 창가에 얼굴을 댔다. 옥외에 세워둔 승용차들이 지붕까지 물이 가득 찼는데, 수압 때문에 차 안의 배터리며 부속품들이 충격을 받아 저절로 클랙슨을 울리게 된 것이었다. 마치 살려달라는 듯이.
나는 지하 주차장에 인명피해가 있으면 어쩌나싶어 몹시 걱정스러웠다. 상황실에는 온갖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심지어는 환자 보호자까지도 무슨 정보를 들을까 싶어서 그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때 주차장에서 올라왔다는 한 남자에게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말았다. 주차장에서 미처 피신하지 못한 여자 한명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순간 소름이 돋으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남자의 두서없는 말소리가 우왕좌좡 하는 동안, 어둠의 기운이 내려앉은 실내를 간간히; 번쩍번쩍 쪼개는 번개와 세상을 빠개버릴 것처럼 천둥소리와 당황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완전히 혼을 빼놓을 지경이었다. 병원 전체에서 외부로 통하는 전화는 단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연락망을 붙잡은 내 나는 공포를 억누르며 냉철한 판단력을 잃지 않으려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 중환자실은 어찌 돌아가고 있을까. 나는 전령을 보냈다. 그리고 수술실에 인력을 추가했다. 전기가 끊긴 상황이었으므로, 인공호흡이 필요한 환자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손으로 눌러주는 수동식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만 했다. 전령은 계속해서 8층, 9층까지 계단을 뛰어올라가 입원실까지 들여다본 다음 내게 각각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물론 지상 1층까지 침범했고, 어른의 무릎까지 차오르고서야 멈추었다. 지하층에 있는 그 많은 장비가 몽땅 물에 잠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했다. 전기, 상하수도, 주방이 모두 초토화되었으니, 날이 새면 천여 명의 환자들을 모두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할 판이었다.
나는 서병태 부원장과 김기용 부원장은 외국 출타 중이었기 때문에 내과 과장 홍창기 선생을 불려 들여서 참모역할을 맡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