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고집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몰랐고 열두 살 위인 형수(兄嫂)님이 업으시고 우는 나를 달리면 더 극성스럽게 울어대어 더 난처하였다고 한다.
울음이 그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역정을 내시므로 할 수 없이 집 뒷산으로 나를 업은 채 올라가셔서 울음을 그치게끔 얼르시었다고 한다. 때로는 누님도 나를 업고 얼르셨는데, 그 말 중에 우리 아무개 공부 잘해서 학교 선생되고 또 무엇인가 주어 섬기셨는데, 그 중 마지막에 박사가 되라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 어려운 집안 형편에서도 동네 서당에서 어깨 너머로 한문을 공부하시어 문장도 대단하셨을 뿐 아니라 신학문에도, 계통적으로 배우신 적이 없으시어 좀 서투르시기는 하시나 일본 사람과 능히 글이나 회화로 소통하실 수 있었고, 생각하시는 바도 완고하시기는 하나 대단히 신식이셨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 사랑방에는 밤마다 여러 누님과 형님이 빠짐없이 나와서 공부를 하였다. 아버지께서 시키시니 꼼짝없이 공부를 하는 체 하고 앉아는 있으나 실제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 일은 드물고 그림을 그리는 등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동네 어린이는 그때의 어린이들이 대개 그러하였듯이 추석명절에는 그네를 타고 정월 대보름에는 논두렁에 불을 지르고 뒷산에 가서 연을 날리며 때로는 철사를 구부려서 만든 자작 스케이트 또는 썰매를 타고 동네 앞의 물이 고인 논의 얼음판 위에서 놀기도 하였다.
매년 봄이 되면 미친개가 산이나 들판에 돌아다녀 이것을 잡아 없애는 것이 연중행사였고, 이 개에 물리면 광견병에 결려 죽게 되니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병(癩病) 환자는 어린아이의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하여 어린이를 해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어린이 혼자 사람이 없는 산이나 가지 말라는 주의도 귀가 아플 정도로 들려왔다.
실제로 봄이 되면 미친개에 물려죽고 나병환자에게 죽음을 당한 어린이의 소문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나는 1933년 4월 만 7세 되던 해에 집에서 약 5km 떨어진 구미시내의 구미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 여자가 학교를 다니는 경우는 드물고 남자라도 상당히 개화된 집안에서만 학교를 보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학생도 많아 그 중에는 장가를 간 학생도 몇 명 있었다. 따라서 나는 가장 어린 편이므로 키대로 줄을 서면 언제나 맨 앞줄에 서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5km정도가 아니라 어찌나 먼지 맞바람 치는 겨울날에는 단번에 갈수 없어 길옆에 있는 인가의 남쪽 벽에 서서 추위가 덜하게 한참 쉬었다가 가기도 하였다.
시내 가까운 곳에는 금오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지나가는 개울이 있었는데, 그 위에 다리가 없으므로 비가 많이 와서 홍수라도 나면 그냥 개울을 건너갈 방도가 없으므로 할 수 없이 그 옆에 높이 지나가고 있는 경부선철도의 철교 위를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서 책보를 허리에 둘러맨 채 사생결단하고 뛰어가서 건넜다.
이것이 어린 시절의 아리따운 기억의 한토막이나 근래에 가보면 그 깊던 개울이 어지간히 메꾸어져서 그저 보통 얕은 개울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마을 뒤쪽에 산이 있고 그 너머에 상당히 큰 못이 있었는데, 학교를 가고오고 할 때에는 그 못뚝을 거쳐 물레방아 간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 물레방아 간에는 언제나 나병환자가 우글거려 혼자는 무서워서 갈수 없어 2~3명이 함께 모여 뛰어 지나다녔다. 여름철에는 못뚝에서 자란 아카시아나무 밑에 뱀들이 우글거려 무섭기도하여 주의하며 지나다녔다.
1학년 때의 기억으로는 그 당시 내가 촌놈같이 보였는지 학교가 끝나 집으로 가려하면 시내에 사는 신호식(서울대 농대 농화학과 동문)이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촌놈이라며 여러 차례 놀려대며 찝쩍거리는 것이 아닌가. 견디다 못해 하루는 화가 극에 이르러 사생결단하여 신군에게 달려들었더니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는 관계가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친해진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어깨에 매는, 요사이 흔해 빠진 가방 같은 것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처지인지라 누구나가 다 같이 흰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싸서 어깨나 허리에 둘러매고 다녔으므로 한바탕 뛰고 나면 어김없이 도시락의 반찬으로 넣은 김칫국물이 책보에 벌겋게 물들었고, 하교 길에는 덜그럭덜그럭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당시에는 점심을 싸가지고 가는 도시락 통도 드물어 우리 집에 한 개가 있었는데, 그 한 개를 내가 싸가니 두 살 위의 작은 형님은 놋쇠 주발에 점심을 싸가는 형편이었다. 이것을 다른 동네 아이가 놀리기도 하여 형님의 처지가 난처하기도 하였다.
2학년 때의 어느 날 친구 하나가 내 옆으로 가까이 오더니 귀에 대고 소곤대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이 오줌을 누시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아! 선생님도 오줌을 누시어, 천만 뜻밖의 일이다. 선생님은 특수한 사람으로서 변소에 가지 않고 잠도 자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러면 선생님도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게! 이와 같이 그때 우리들은 선생님은 보통 사람이 아닌 신에 가까운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붓글씨를 연습하는 습자시간에는 헌신문지에 글씨를 써서 시간을 지내게 되어서 다행이나 그림을 그리는 도화시간에는 한반 60명 학생 중 크레용을 가진 학생은 10명 정도이고 다른 학생은 아무것도 갖지 못하였으니 한 시간 동안 우두커니 그대로 걸상에 앉아 있었다. 대다수가 크레용이 없으니 그때는 그것이 통했고, 보통이었다.
그 당시에 조선총독인 우가기(우항)란 자가 농촌진흥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학생들에게는 짚신을 신고 다니게 하였다. 따라서 나도 일 년에 한 켤레씩 사주는 고무신을 아낄 겸 짚신을 신고 다녔다. 그러나 여학생은 그래도 학교까지 고무신을 신고 오는 학생이 많았다.
하루는 아침 조회시간에 갑자기 일제조사를 하여 고무신을 신은 학생은 별도로 줄을 서게 하여 톡톡히 기합을 넣고 창피를 주었다. 그후 부터 여학생은 학교 가까운 곳까지 고무신을 신고 왔다가 학교 근처 아는 집에 가서 고무신을 벗어 짚신으로 갈아 신고 학교에 가고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고무신으로 갈아 신고 돌아가기도 하였다.
집에 돈이 없으니 월사금이나 기타 학교에 내야할 돈은 기한 내에 내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한번은 누님이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여 학교 선생님이 누님을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집으로 쫓겨 온 누님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그길로 당장 학교에 가시더니 교장실로 들어가셔서 교장에게 큰 소리로 항의를 하시니 교장과 담임선생님께서 손발 다하여 싹싹 빌었다고 한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그 고을에서는 대단한 유지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구미보통학교 다닐 때의 봄철 원정(遠足, 현재의 소풍)은 1학년만 빼놓고 2학년 이상은 언제나 학교에서 약 6km이상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높이 976cm인 금오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
현재에는 중턱에 있는 대혜폭포까지 케이블카로 놓여져 있어 그곳으로 놀러가게 되어 있으나 그보다 더 높은 산꼭대기에 가면 작은 절이 있고, 멀리 낙동강도 내려다보이는 등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영동으로 이사 간 후에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본 적이 없으니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