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묵하게 신앙인으로 살라
김상배 | 단국대학교 교수, 동양학 연구소장
자서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렇다고 쓰여 진 자서전이 과연 읽혀지는지는 갸우뚱해진다. 쓰는 사람이 장식적 효과만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수로 변신한 이종덕 동문이 살아온 ‘오직 한 길’을 글로 남겨 친한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애기를 얼핏 들었을 때 필자는 무릎을 치며 ‘바로 그거다’하면서 적극 권했다.
그렇게 적극 서둘러 회고담을 쓰도록 한 이유는 이렇다. 이종덕 동문이 40여 년 간 한길, 즉 한국문화예술계의 일꾼으로 봉직해왔기 때문이다. ‘기록’하는 일에 소홀한 우리 습성 때문에 무엇인가 특별히 남길 수 있는 뒷얘기, 숨은 얘기 등 비화가 그냥 묻혀 질 지도 모르는데, 그것들의 기록을 통해 적어도 후진들에게 남길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이것이 내가 이종덕 동문에게 자서전 집필을 권유한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이종덕 동문이 달변도 아니고 평소 자기 하는 일들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이런 기회(회고록)에 그것이 일에 대한 것이든, 개인에 대한 것이든, 진실(또는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기회가 될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 가까운 지인들도 ‘이종덕’이란 사람의 참모습을 그리 자세히 아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전문직 관리가 고유 업무에 관해서 함부로 장광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왔으며 거기다 과묵한 성격이라서 실제로 권위와 명성, 그리고 리더십 등에 가려진 진실이 곡해된 측면도 있을 것 같아서 이 기회에 회고담을 털어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그 길고 어두운 과정을 접고 교단에서 동료와 제자들에 싸여 이론뿐 아니라 풍부한 경험을 정리하여 쏟아내야 하는 자리에 있으니 비록 자서전의 형식을 빌리지만 한국 문화계의 가치 있는 기록들고 함께 엮어 남겨주길 필자는 강조했다.
이종덕 교수는 고교 동창이다. 다른 동창과는 달리 고교 동창은 가식이 없는 순수하고 특별한 관계이다. 철없던 시절의 ‘끼’ 같은 것도 알고 있고 거기엔 꾸러기 같은 성품도 알게 마련이다. 그렇다보면 참으로 대단한 일을 했을 때도 이러한 친근감 때문에 과소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을 한번 바꾸면 친구(동창)가 존경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린 나이의 특별했던 끼가 오늘 큰일을 하는데 원동력이 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너니 나니 하면서도 아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종덕 교수는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이 가브리엘이다. 내 세례명과 같다.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는 나와 대자 대부 관계이다. 그때 나는 논현동 성당에서 사목위원으로 있었고, 그의 장모 되시는 분의 특별한 부탁도 있었고, 또 이종덕 동문도 신자가 되겠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대부를 서게 되었다.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천주교 신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그가 신자로서 소리 없이 해온 일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적지 않다.
나환자들의 생활터전인 라자로마을에서의 오랜 활동도 최근에 와서야 조끔씩 알려지고 있다. 물론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이종덕 이라는 평신도의 행적을 너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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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국립극장에서 김정옥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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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술을 좋아 하지만 그 자리를 친목과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화해의 장으로 삼는다. 특히 아름다운 여류 예술가와 어울리면서도 ‘뒷말’이 없다. 가끔 그의 가족들조차도 ‘이종덕’이 밖에서 하고 있는 그 많고 다난한 일들은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문화행정가이며 넓은 의미의 전문 예술인으로, 그리고 광화문문화포럼 등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 시대의 지도적 일원으로, 거기에다 신앙인과 우정 깊은 친구로서 그는 어느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해내려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그런 일들을 끝내고 돌아서 귀가하는 뒷모습을 볼 때면 ‘고독’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곤 한다.
말은 어눌하지만 정의감이 있고 의지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고 하나의 생활신조처럼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 그가 오랜 생활 한 길에서 성공한 비결을 엿볼 수 있다. 단단한 체격은 주먹을 연상케 하지만 인정적인 면에서는 순진한 소년처럼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필자는 여러 차례 보아왔다.
그가 예술행정의 달인이요, 실천적 관리이고 또 예술인의 친구요, 협조자로서 중책을 두루 거치고 마지막 공직 ‘자리’였던 세종문화회관 사장 시절 시대적 상황 속에서, 특히 그 무렵 처음 생긴 예술인 노조와 갈등으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일그러진 얼굴로 초인적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을 ㅂ존 일이 있다. 그때 그는 말했다.
“더 이상 순진한 예술인들의 기를 죽일 수는 없지......”
이 말을 혼자 되풀이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예술인들을 사랑했고, 예술인들의 대부역할을 어느 누구보다도 충실히 해냈다고 확신한다.
이제 국내에서, 또 화려했던 국제무대에서 그는 물러섰다. 허허로운 마음으로 교수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가 대학에 자리를 잡은 것은 평생 열성을 다해 우리 문화예술제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단국대학에서 자신을 초청한 것을 그 역시 명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석양이 아름다운 연구실 창에 기대어 회고담을 써보겠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 필자는, 이종덕 교수가 비록 글재주는 빼어나지 못하고 말처럼 어눌한 글을 쓰더라도, 있는 그대로 집필한다면 옆에서 훈수 두는 일은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의 회고록은 장식이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 예술계, 예술인들의 실상이며 증언이 될 것이다.
그가 회고록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털어놓을지 자못 궁금하지만 이종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드러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그의 글과 글의 행간 속에서 충분히 찾아 회상활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의 가족들, 부인과 네 딸과 사위들에게조차 숨기며 글을 다듬는 수줍음을 보면서 필자는 흐뭇한 마음을 갖고 그의 연구실을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