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여름철 휴가여행 (48회)

1990년 여름방학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 등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나는 78년에 자가용 자동차를 산 이후 80년경에는 여름휴가를 남들과 같이 가족동반 하여 동해안, 서해안 등으로 자주 다녔으나 한 5년 전부터는 일절 여름휴가를 가지 않았다. 교통이 붐빌 뿐 아니라 날이 더워 시원한 집에 있는 것 보다 휴가 가는 것이 더 고생이 되고 해수욕장 등의 휴가지에 간다 해도 콩나물시루 같이 많은 사람으로 붐비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년에는 여러 딸과 사위의 채근을 이기지 못하여 8월 2일 우리 내외, 세 딸 내외와 막내딸 모두 9명이 자동차 3대에 타고 동해안의 묵호(동해시)로 떠나게 되었다. 이는 묵호에 셋째 딸의 시댁이 있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군산의 처가에 가고 둘째 아들은 처가 일행과 함께 별도로 휴가를 가게 되었으니,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처가 쪽으로 함께 가서 제각각이나 딸들은 내 쪽이니 세간에 아들보다 딸들이 낫다 하는 것도 어느 점에서는 틀리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일행의 차가 영동고속도로에 들어가자마자 꼬리를 문 많은 차량 때문에 거북이 걸음이 시작되어 서울에서 온 중부고속도로와 합해지는 곳(호법인터체인지)에 이르러서는 도로가 아니라 아예 일종의 별난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으므로 이럭저럭 한 시간 이상 기다리게 되었다.

영동고속도로는 왕복 2차선이나 가는 쪽의 길은 아예 두 대의 차가 나란히 줄지어 갔다. 세말 조금 지나기까지는 차가 섰다, 가다가 하여 아마 평균 시속이 5km도 될까말까이다. 목적지에 갈때 먹기 위하여 점심을 미리 준비하였으나, 그것을 꺼내 먹을 엄두가 나지 못했다.

세말을 조금 지났을까, 오후 3시가 되었다. 휴가로 놀러간다는 것이 땡볕에 점심마저 굶게 되었다. 엣다, 모르겠다, 조금 넒은 공간이 있어서 도로 노변에다 차를 세웠다. 다른 두 대의 차도 오는 족족 뒤에 세우게 하여 가져온 휴대용 레저 테이블을 도로 옆에 펴서 조립하여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도로에 줄지어 있는 차에 탄 다른 사람들은 우리들을 보고 모두 한결같이 웃는다. 이리하여 배를 채우고 다시 떠나게 되었는데, 그 식사광경을 비디오카메라에 찍어두었으니 두고두고 잊지못할 90년의 휴가행 고난의 한 추억광경이 되리라.

수원을 떠나서 12시간이 걸려 묵호의 사돈이 마련해놓은 묵호해안에 가까운 여관에 도착하였다. 하룻밤 유숙한 후 사돈댁에서 장만한 정성어린 아침을 먹고 오전에는 무릉계곡에 가서 맑고 찬 물과 푸른 경치를 만끽하여 어제의 고생을 잠깐 잊는 듯하였다.

오후에 그곳을 나오니 그곳은 이미 차가 만원이어서 다른 차가 더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으니 우리는 그래도 아침 일찍이 갔으니 다행이다. 계곡을 나와 망상해수욕장에 가서 보니 그곳은 이미 만원이라 하여 들어가 보지 못하고 규모가 작은 어달리 해수욕장에 가서 아쉬운대로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날에는 아침부터 망상해수욕장에 들어가 하루종일 오래간만에 진짜 해수욕의 맛을 보았다. 둘째딸 내외는 일이 있어 오후 2시경에 먼저 떠나고 나머지 일행은 여섯시 경에 나와 묵호의 사돈댁에 들러 감자수제비를 곁들인 특별요리를 대접받고 8시경에 묵호를 떠났다. 저녁에는 차량통행이 좀 덜하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 정체된 차량이 줄지어 서 있는 90년대 휴가철의 고속도로

과연 가는 길은 올 때와는 다르게 속도는 느리기는 하나 한 곳에 마냥 서서 기다리는 것은 없이 대관령고개를 이럭저럭 넘어 상당히 먼 평지까지 내려왔을 무렵 막내딸이 운전하는 내 차가 발동이 꺼져 길에 서버렸다. 아무리 다시 발동을 걸어보았으나 헛된 일이었다. 왕복 2차선 고속도로에 어두운 밤 11시경에 차가 섰으니 난감한 일이다.

이 밤중에 교통순찰차라는 것은 이때까지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였고, 도대체 여기가 어디이며 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차량정비소까지 연락한단 말인가. 이곳은 도로 우측에 공사를 하던 곳이 되어 차를 옆으로 댈 곳도 없다. 내 차 뒤를 따라오던 다른 차는 다행히 서울쪽에서 오는 차가 드물었으므로 종앙선을 넘어 차가 오는 도로로 돌아서 간다.

어쨌든 간에 고속도로에서 공사구간을 피하여 도로변에 차를 세워야 했으므로 모두 내려서 뒤쪽에서 차를 밀게 하여서 150미터가량 갔다. 이것을 본 다른 차에 탄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어 이 심각한 와중에서도 쓴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저 멀리 도로 표지판에 고성 쪽이라는 화살표가 보이는 것 아닌가. 그곳에 가면 고속도로에서 차를 빼낼 수 있을 것 같아. 계속 차를 밀게 하였더니 다행히 그곳에 용전 휴게소가 나오는 것이었다.

여하튼 이제 살았다. 휴게소에 가니 차량 정비소까지 있으나 사람이 없어 한참을 기다렸다가 정비사가 와서 이곳저곳 뜯어보더니 디스트리뷰터의 코일이 망가졌는데, 부속품이 없단다. 그러면 가까운 곳이 어딘가 물으니 원주에 가야 하는데 내일은 일요일이니 자신이 없다 한다.

차를 고속도로에서 겨우 꺼냈고 전화가 있는 휴게소에 와서 한숨을 놓았으나 또 문제다. 밤을 새워 내일 원주에 간다 해도 부속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하룻밤 자야 하지 않는가. 할 수 없다. 셋째 딸 내외와 운전할 막내딸만 용전 휴게소에 남기고 큰딸 차에 우리 내외, 큰 딸 내외가 타고 밤을 새워 수원에 오니 새벽 6시 반경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부속품을 사가지고 설악산 쪽으로 아침에 떠나게 되어 있는 둘째 아들을 서울서 오게 하여 그 부속품을 주어서 보냈더니 용전휴게소에서 고쳐 그날 한밤중에 고장 난 차가 도착하였다. 이것이 잊지 못할 여름휴가와 차량고장의 추억이다.

O O O

TV에서 여러 가지 곡마단의 곡예와 마술을 가끔 보았으나, 미국의 데이비드 커퍼필드의 마술은 특별하다. 오래된 건물을 폭파하는데 그 금고 속에 수갑을 차고 갇혀 있는 상태에서 폭파장소를 귀신같이 빠져나오는 장면,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깜쪽 같이 없어지게 한다든지 중국의 만리장성을 통과하는 등 아무리 하여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카퍼필드가 우리나라에 왔으니 구경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 딸이 5만원짜리 입장권 2장을 사주어 9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우리 내외가 카퍼필드의 마슬공연을 관람하였다. 보통 흔히 보는 마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마술은 손놀림이고 속임수라 들었으나 펑 하는 연기와 함께 무대에 오토바이를 탄 채 카퍼필드가 나타나고 갑자기 저쪽의 무대에 눈깜짝 할 일순간에 이동되고 그 큰 톱날로 자기 몸을 두쪽이 되게 잘랐다가 다시 합치는 등 아무리 보아도 생각해보아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지도로 되어 있는 순천대학의 최갑성 교수와 마산 간호보건전문대학의 교수인 박우원 군의 박사 논문을 심사통과 시켜 1991년 2월에 박사학위를 받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