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집을 짓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당면과제가 있다면 의(衣), 식(食), 주(宙)일 것이다. 첫째는 ‘식’이요, 둘째는 ‘의’요, 셋째는 ‘주’일 것이다.
우리가 성장해서 결혼하게 되고 자녀를 낳아 독립하게 되면 집을 소유하고 싶어진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기본적인 이러한 욕구들이 충족될 때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하루가 그렇게 바쁘지 않은가?
나는 성직자로서 이러한 것에는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또 이런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가끔씩 고향 생각이 날 때면 성직자 이전에 인간적인 인연들이 솔솔 솟구쳐 나올 때가 있다.
우리 형제는 30년 전 고향을 떠날 때 아픈 상처를 안고 떠났다. 고향에 토지나 친척이나 어떤 인연도 없이 떠났다. 그러나 가끔 씩 고향 생각이 나게 하는 어릴 때의 추억을 갖고 있다. 특히 도심을 벗어나 농촌 들녘을 볼 때는 모든 풍경이 산천이요, 고향같이 정겨웠다. 외딴집 굴뚝에서 연기 나는 것을 보아도 어머니가 밥 짓는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고향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가 없는 곳인가 보다.
우리 형제는 1년에 한번씩 모이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고향 얘기를 나누던 중 고향에 집을 지어 어머님을 그곳에 모시고 우리는 가끔씩 고향에서 만나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고향 호수아의 언덕배기에 예쁜 집을 한채 지었고, 이곳에서 장형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전에는 그저 거쳐 가는 추억이 있는 곳으로만 생각되었던 고향이 어머니를 모시고부터는 하룻밤을 자고 올수도 있는 곳이 되어서 참 좋았다. 그리고 나는 한 달에 한번씩 어머니를 찾아뵙기로 약속했고, 어머님 살아계실 동안에는 그 약속을 꼭 지켰다.
고향에서 하룻밤을 자는 동안에도 먆은 옛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냇물 소리와 바람소리, 밤하늘의 별들과도 이야기 할 수가 있었다. 식탁에 놓인 방금 텃밭에서 기르던 채소며, 시냇가 개울에서 잡은 피라미들이며 어느 하나 추억이 아닌 것이 없다.
어머니를 고향에 모시면서 우리 형제들은 자주 고향에 모이게 되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우리는 고향에 집이 있어서 행복ㅎ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고향집에서 4년간 사시다가 88세로 세상을 뜨셨다.
우리 어머니는 88세를 사시면서도 병고의 큰 고통 없이 선종하셨다. 그리고 장례도 성대하게 잘 치러드렸다. 매가 지켜본 바로는, 우리 어머니는 행복한 마침을 하신분이라고 생각된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서 그 불편한 노구에도 당신 몸을 당시 스스로 추스르셨다. 마지막 돌아가시기 3주일 정도만 몸을 놓고 남의 도움을 받으셨다.
그렇게 정갈하고 남의 신세를 철저히 거부하시던 어머니가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고 보니 고향도 이제 멀어져버렸다. 어머니 계실 때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어머니와의 약속이었기에 꼭 들렀지만, 어머니 떠나시고 나서는 그곳에 안 간지가 일 년이 넘었다.
어머니 안 계신 고향은 초가을처럼 찬바람이 부는 것 같다. 나의 고향 양지바른 곳 호숫가에서 어머니 모시고 효도하며 살았던 형제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 형제 모두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올 추석 본당에 행사가 있어서 고향엘 가지 못했다. 길이 풀리고 날씨가 좋아지면 따로 시간을 내서 고향집 형제도 찾아보고 어머님 묘소에도 들러 성묘도 드려야겠다.
어머니가 안 계신 고향집은 이제 나에게서 멀어져갔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온화한 웃음으로, 영원한 사랑으로 내 마음 속에 어머니의 집을 하나 지었습니다. 고향에 집을 짓고 어머니와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지금은 안계시지만 마음속에서 항상 나와 함께할 것입니다.
어머니를 내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 것입니다. 내 맘의 고향, 어머니를 그리며........
개인 식사를 거절하는 이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로의, 친교를 나누는 데에는 음식을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음식을 나누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에는 마을에 경사가 났을 때는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누었고, 생일이나 돌잔치 그리고 이사를 왔을 때는 음식을 돌리곤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웃이 되었다는 표시가 되는 것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신입사원이 왔다던가 직장 동료 간의 화합을 위해서는 단합하는 뜻으로 술 한 잔을 함께 나누는 것이 관례이다.
천주교 신자도 새 본당에 취임하면 신자들이 제일먼저 부임파티를 열어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얼굴을 알리기 위해서 신심 단체별, 또는 개인적으로도 식사초청이 많다. 신부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애로가 있다. 어느 시골 본당에 있을 때 경험했던 일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골 사람들은 인정이 많고 특히 손님에 대해서는 깍듯한 예의를 지켜 대접하려는 마음이 있다. 이 본당에서도 처음 부임하여 개인적으로 식사 초청을 받아 기쁘게 응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다보니 집에서 식사하는 날보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생활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불규칙한 식사시간으로 건강에도 좋지 않았고, 개인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겨 계획된 생활에 차질을 가져왔다.
또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잘 사는 사람 집에만 가서 식사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 집에는 오지 않는다는 소리와 함께 신부가 사람차별 한다는 말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가슴이 뜨끔했다. 그 뒤로 나는 새 본당에 부임하면 내 공식 일정과 공적인 모임 외의 개인 식사는 사절한다는 발표를 해버린다. 이때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이해해준다.
어떤 신자 분들은 가끔씩 자기는 예외로 생각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떼를 써보지만 냉정하게 거절해왔다. 처음에는 오해도 받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다.
나는 그 뒤로 이런 오해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신자들 간에 편애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죽고못살게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혈압 오를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내 주위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 떠날 때 얼마나 마음 홀가분한지 모르겠다.
신부는 공인이다. 신부가 특별한 사람을 편애하는 것도 안 되지만 신자 쪽에서도 특별히 자기만 생각해달라는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된다. 공적인 사람은 공적인 일에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특히 신부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성당에서도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해야 하고, 본인도 항상 이런 일에 타인으로부터 오해받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어느 본당에 가든지 허세 부리고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충고를 해준다. “우리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릿고개가 있지 않았오. 지금 좀 살기 좋아졌다고 낭비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니 음식을 먹을 때도 대충 음식점에서 적당한 것으로 먹읍시다.”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나는 대중음식점에서 파는 메뉴밖에 모른다.
중국음식점에 가면 짜장면, 우동, 짬뽕밖에 모른다. 한식으로는 삼겹살, 설렁탕, 백반, 육개장, 곰탕, 비빔밥 정도밖에 모른다. 양식집은 음식 값만 비싸고 내용이 없어서 아예 가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값도 싸고 음식도 실속 있는 것을 먹자고 권한다. 값은 5~6,000원 선으로 정해놓고 간다. 그리고 여름에는 보신탕도 자주 먹는다.
우리 본당 신자들은 나와 식사할 때 이 규칙은 정만 잘 지킨다. 그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는 음식만큼은 가리지 않고 먹는다.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고, 배불러서 못 먹는다. 식성 하나는 끝내준다. 그러나 못 먹는 게 하나 있다. 값만 비싸고 내용 없는 음식이 그것이다. 그런 음식은 먹고도 후회하고 소화도 안 된다. 그래서 우리 본당 신자들은 내가 소화 잘 시키는 음식으로만 대접한다.
감사합니다. 내 마음 알아주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