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누이동생의 울음 (59화)

기도고민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이며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이다. 그리고 고해성사와 영적 상담을 통해 죄를 사해주는 치유자이며, 병자를 찾아 기도해주고 그들의 아픔을 달래는 위로자이다.

신부는 어느 환경에서든지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이들이나 노환으로 치매증세가 있는 사람들,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불치병 환자들을 만나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당황할 때가 있다. 그래도 정신이 조금이라도 있는 할머니들을 만나면 제발 병 좀 낫게 기도해달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할머니는 죽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며 빨리 주님품으로 갈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거짓말 하지 마세요.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과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 그리고 노인이 죽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이랍니다.”하면서 웃어 넘기고 만다.

하지만 식물인간 상태에서 오랜 투병생활 때문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겪게 되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어떤 환자의 경우 지금 그 자체가 환자에게 있어서 인간생명을 존중한다기 보다는 그 생명을 모질게 학대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는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생명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지만, 왜 저토록 시련을 주시는지 설명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솔직한 내 개인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생명을 붙들고 저런 고통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선종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럴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할머니 말씀대로 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지, 선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내가 원할 때 기도대로만 된다면야 모두를 치유해달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가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설령 내 기도가 하느님께 전해진다 하더라도 하느님 편에서 보시기에 죽어야 할 사람이나, 살아야 할 사람, 치유 받아야 할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어찌 나의 뜻대로만 다 이루어질 수 있으리오.

그러나 성서의 말씀대로 믿음을 가지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열리고, 찾으면 얻으리라는 말씀을 믿고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기도하는 사제는 기도할 뿐이지,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 제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했듯이, 우리도 당신의 자비를 베풀러주시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혹시 이럴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좋은 방법 있으면 가르쳐주기 바란다. 나는 지금도 기도 맨 마지막에 “주님의 뜻대로”란 말을 꼭 빠트리지 않고 바친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 앞에 서면 생명을 구걸하거나 생명을 포기하는 그런 기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살던지 죽던지 당신 뜻대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청하면서 선종하고 싶다.

막내 누이동생의 울음

지금으로부너 50년이 훨씬 넘은 일이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연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형제는 남자 넷과 막내 누이동생 한명이다. 아버지는 면사무소 호적계에 근무하셨고, 생활은 공무원들의 배급제로 인해 아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6.25전쟁 직후라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특히 공무원들은 신변에 위험이 많던 때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낮에는 평상시와 같이 평온한 것 같지만 밤이 되면 빨치산들이 동네로 내려와 음식과 물건을 약탈해갔고, 어떤 때는 사람까지도 해치는 일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밤만 되면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대청마루 밑에 토굴을 파고 안쪽에서 문을 잠그면 열수 없는 은신처를 준비해놓았다. 급한 상황이 닥치면 바로 식구들이 그 토굴로 피신하였던 것이다.

어느 초가을 밤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날 밤은 달도 밝았다. 동네에 빨치산이 내려왔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피신하셨고, 마침내 위의 형들은 집에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나 그리고 네 살짜리 남동생과 갓 태어는 막내여동생과 함께 네 명이 토굴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놈들이 온 집을 뒤집어놓고 가져가고 싶은 것을 다 가져가버렸다. 또한 우리가 숨어있던 대청마루를 쿵쿵 차오면서 반동분자 나오라고 소란을 피웠다. 그때 그놈들에게 잡히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뻔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갓난이 누이동생에게 젖을 물렸고, 우리 모두는 솜이불을 둘러쓰고 두려움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놈들은 얼마동안 소란을 피우다가 나가버렸다. 그때 갓난이 막내가 울음을 터뜨렸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여동생이 울지 않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뒤 나와 나이 차가 6살인 막내여동생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만치 순하게 커준 것이다. 그런데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지막 입관할 때 또 한 번 더크게 울었다. 솔직히 나는 속으로 울 수밖에 없었고, 눈가에 눈물을 적실 뿐이지 통곡을 하며 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주위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큰소리로 울었다.

나는 누이동생이 그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여동생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50여 년 전 토굴 속에서 네가 울지 않았기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만약 그때 네가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도 울음을 터뜨렸더라면 우리는 오늘의 네 그런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머니를 묻고 돌아오던 날, 막내 여동생의 통곡하는 모습에서 토굴 속에서 살아남았던 그 일을 기억하게 되다니........ 그것도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

지금 어머니는 가고 안 계신다. 토굴 속에서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고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 형제를 품어주셨던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된다. 어머니 가시는 길에서 여동생은 통곡으로 그의 슬픈 마음을 나타냈다.

나는 정중한 장례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편안한 안식을 위한 기도를 미사 때 바치고 있다.

나의 하나뿐인 누이동생이 행복하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참았던 울음, 어머니 산소를 폭포수처럼 울리고도 남았던 그 소리가 지금 메아리쳐 들려오고 있다. 우리 5남매의 울고 싶은 슬픔을 혼자서 다 울어준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 5남매는 지금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