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소(告白所)의 인내
신부에게 어려운 일 한 가지가 고백소에서의 인내이다.
신자들은 신부들은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신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게 생각해볼 수가 있다. 나도 신부가 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신부가 고백소에 앉아 있을 때만큼 인내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때도 없다.
나는 사제서품을 받고 중앙성당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공식미사 한 시간 전에 신자들이 고백소 앞에 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신부는 신도들이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으면 지체 없이 고백소로 들어가야 했다. 고백소라야 의자 하나 놓여있는 환기도 잘 안 되는 곳이기 때문에 한 시간을 있기도 힘들다. 지금은 고백소가 잘 꾸며져 있지만 그 전에는 그렇질, 못했고 고백자도 많았었다.
처음에는 본당 신부님과 내가 함께 고백소로 들어가지만 본당 신부님이 공식 미사 때문에 고백소에서 나오시면 그 쪽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내 쪽으로 합세하여 미사가 끝날 때까지 줄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이렇게 2시간 정도 앉아 있으면 혈압이 오르고 머리가 지끈거릴 때도 있다. 판공성사 때가 되면 1주일 정도는 고생해야 한다.
고해성사는 영적상담으로 생각해야 한다
면담고백이라도 좋으니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청해야
일평생 고백소에서 화를 내지 않으면 성인신부...
본당 공지사항 때 구역반별로 날짜를 분산시켜 보아도 전혀 효과가 없다. 그리고는 성탄 때나 부활 때 바로 닥쳐서 한꺼번에 몰려든다. 본당에서는 손님 신부님을 모셔서 해결도 하지만 어쩐지 쫓기는 시감에 형식적인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러니 많은 신자들을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영적 훈화할 수 있으며, 그들의 말을 차분하게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수차례에 걸쳐 공지를 해도 고해성사를 영적상담으로 생각하기보다는 1년 중 부활과 성탄 때 치러야할 교회법을 지키는 습관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지금도 시간 있을 때마다 고해성사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시간을 가지고 준비된 마음으로, 면담고백이라도 좋으니 본인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청하라고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변화된 것은 별로 없다. 처음에 시작을 잘못하면 그것을 고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모든 일은 시작을 잘해야 바른 전통이 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지금 현실대로의 고해성사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저렇게 늦게라도 줄을 서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생각도 든다. 교회를 영영 떠난 냉담자들은 성당에서 볼 수도 없으니 길 잃은 양보다 우리 안에 있는 양을 보고 위안을 해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심이 들 때가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1시간이 지나 고백자에게 “다음 사람이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대여섯 명 남았다고 한다. 한참 있다가 다시 물어보면 그 사람의 대답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뒷자리에 앉았다가 고백자 차례가 되면 줄을 서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분심이 생긴다.
조금 쉬었다가 할까? 물이라도 한잔 마시러 나갈까?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내가 나가면 그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은 내 속도 모르고 신부가 인내심도 없이 고백소에서 들락거린다는 말을 할 것 같고, 바로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은 왜 하필이면 내 차례에 나온담, 혹시 나하고 유감 있는 것 아냐 하고 빈정거릴 것 같아 여간 고민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기다렸던 사람들이 되돌아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참으로 갈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 할머니들이 들어오셔서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언제 고해성사를 받았느냐고 물어보면 저번 주일에 받으셨다고 하신다. 왜 오셨느냐고 하면 판공성사니까 들어왔다고 하신다. 그냥 가셔도 된다고 하면 사죄경이나 해달라고 주문도 하신다. 사죄경을 해주면 보속(補贖)은 왜 안주느냐고 하신다. 그냥 가시라고 하면 밖에 나와서 신자들에게 우리 본당 신부는 보속도 안 해주는 신부라고 속닥거린다.
이 자리에서 하는 말이지만, 보속이 필요 없는 분이었기 때문에 그냥 가시라고 하신데도 말이다.
이렇게 고백소에서 시달리다보면 다음에 고백소 앞의 줄이 길면 솔직히 겁이 난다. 아, 오늘은 인내를 많이 해야겠구나.
보속으로 생각하고 잘 극복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들어가지만 힘들 때가 많다. 나는 그 뒤로 고백소에 들어갈 때는 휴대용 물병을 들고 들어간다. 그곳에서 까무라치더라도 물을 먹고 버티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신자들이 실망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이럴 때면 선배 신부님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신부가 일평생 고백소에서 화를 내지 않으면 성인신부라고 할 수 있다 하였다. 나는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다. 고함을 지른 일도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고백해야 할 일은, 농촌 본당에 있을 때 한 달 이상 공소 방문으로 지쳐 고백소에서 잠깐 졸아본 일이 있다. 다행히 내가 졸고 있는 동안에는 고백자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혹시 들어왔었다면 하느님께서 피곤한 당신 제자를 귀엽게 보시어 당신이 직접 들으시고 사죄경까지 해주셨을 테니 그보다 더 정확한 고백이 어디 있었겠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주님께 용서를 청한다.
지금까지 고백소에서 고함을 치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참고 인내해야 되겠다.
“주님, 부족한 사제가 고백소에서 고백하는 자에게 친절의 성사를 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영적인 도움의 말도 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십시오. 주님, 저도 성인신부가 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