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도는 내력
요새 시내를 지나가다 보면 옛날 생각이 나게 하는, 고풍스러운 치장을 해놓은 음식점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황토집에,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싸리문 울타리에, 가지런하게 쌓아놓은 장작더미이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물레방아가 돌아가면 운치는 그만이다.
나는 이런 곳을 보면 갑자기 묘한 충동을 느낀다. 우리 고향에서의 시골 5일 장날의 시끌벅적했던 생각도 나고, 동네밖 입구의 주막집 막걸리도 생각난다. 그래서 기분이 울적할 때는 이런 분위기 있는 집으로 저녁 늦게 술 한 잔씩 하러 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옛날 이야기를 즐겨 하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고 했다.
봄이면 어머니를 따라 산나물도 캐러 다니고,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하루종일 고기잡이를...
가을이면 뒷산에는 먹을 것이 지척에 많았고,
겨울이면 논두렁에 물을 가두어 얼음치기를...
나는 시골촌놈이다. 봄이면 진달래꽃 피는 것을 보았고, 어머니를 따라 산나물도 캐러 다녔다.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하루종일 고기잡이를 하다가 등짝을 홀랑 익혀 먹어 밤잠을 못잔 일도 있었다. 가을이면 뒷산에는 먹을 것이 지척에 많았고, 겨울이면 논두렁에 물을 가두어 얼음치기를 하느라 손이 얼어터진지도 몰랐다. 나의 성장기는 이렇게 농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오늘 특별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물레방아에 얽힌 추억이다. 우리 동네 어귀에는 여름이면 쉬지 않고 보리방아를 찧어대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나는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가 좋아 물레방앗간에서 방아 찧던 어머니의 잔심부름을 거들어 드린 일이 있다. 물이 많을 때에는 방앗코가 “콩덕쿵 쿵덕” 자주 움직였지만, 날이 가물면 게으름을 부려 한참만에야 방앗코가 움직였기에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을에는 더욱 바빴고 겨울이 되면 물레방아는 쉬었다.
그곳에는 큰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방앗간을 관리하는 사람이 거처하는 작은 방이 하나씩 딸려있었다. 겨울에는 이곳에서 동네 개구쟁이들이 모여 화투짝을 돌리면서 놀 수 있는 동네 말썽꾸러기들의 집회장소가 되기도 했다. 워낙 외진 장소였기 때문에 동네 개구쟁이들이 작당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살던 마을에도 내가 자주 들르던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나는 어느 곳을 지나다가 물레방아를 보고 고향생각이 떠올라 물레방아 돌아가는 바퀴를 쳐다보며 한참이나 서 있었다. 지금도 TV에서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란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른다. 물레방아 도는 내력도 모르면서 말이다.
하루내 돌고 돌지만 누구 한 사람 그놈 보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그 놈은 아무 불평도 없이 제 할일만 한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여 한참동안 턱을 고이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전원생활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작은 장난감 물레방아라도 정원에 놓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 모습을 보며 살 것이다.
일정에 먼 길을 가다가 옛날 그대로의 물레방아를 보았다. 옛날이 그리워 그곳에서 잠깐 쉬다가 술 한 잔을 하면서 주인에게 이런 좋은 시설을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주인은 나와 같은 동년배였기 때문에 바로 마음이 통해 주인과 객이 술 한 잔씩을 권하는 사이가 되었다.
주인이 하는 말이, 손님이 추억을 말씀 하시니 자기에게도 이곳에 물레방아를 만든 사연이 있다면서 설명해주었다.
자기도 농촌에서 살았고, 지금도 함깨 하는 부인은 자기 고향 물레방앗간에서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서, 나이 들면서 부인과 추억을 회상하며 살기 위해 만들었다고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멋진 추억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인생은 자기 스스로가 연출해야 한다. 노년기라도 이런 추억을 가꾸며 살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는 오늘 행복했다. 물레방앗간 주인과의 술 한 잔이 너무나 즐거웠으며, 물레방아 도는 내력도 알게 되어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 글을 그때 그 추억의 부부에게 드리고 싶다.
물레방아처럼 둥글게, 보름달처럼 둥글게 행복하시길 빕니다.
약주 한잔도 고마웠습니다. 추억의 물레방아 지금도 돌아가고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