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한 사람
옛날 어르신들 말씀에 좋은 책과 좋은 친구는 인생에 큰 보탬이 된다고 하였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는 학교를 4km쯤 떨어진 곳에서 결석을 하지 않았고, 성실한 친구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음이 통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함께 힘을 합쳤고, 서로가 상대방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주는 그런 편한 친구였다.
졸업을 하고 같은 중학교는 아니었지만 얼마동안 하숙도 같은 방에서 했다. 그 친구는 말수가 적고 생각이 깊은 친구였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며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마음 아파하는 인정도 많은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어
나는 천주교 신부, 그 친구는 직업인으로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세상욕심에서 멀어져
친구는 자연과 순리에 따라 순박한 삶 살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친구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나는 신학대학에 갔다. 얼마간 생활이 달라 떨어져있었지만 마음 속에서는 항상 잊지 않고 남아 있는 친구였다. 그때도 서로 안부를 전하고 몇 번의 서신 연락도 하면서 우리의 우정을 잊지 않았었다.
세월이 지나 나는 천주교 신부가 되었고, 그 친구는 직업인으로서 가정을 꾸리며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우리는 서로의 생활에 쫓겨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전화는 가끔 주고 받았다.
그뒤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을 가지면서부터는 내가 해외에 나가 있을 때를 빼놓고는 꼭 참석해주었다. 동창생들이 들으면 시기할 지를 모르지만 나는 그 친구를 만나는 기쁨이 제일 컸다. 그러나 오랜만의 동창모임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잠깐의 만남을 가진 후 헤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름이 가기 전에 고향에서 만나 식사라도 하자고. 나도 기다렸던 소식이었기에 하던 일을 제쳐두고 약속을 해버렸다.
약속된 장소에서 친구와 단둘이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도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인 9월 초순에 고향 마당 평상에 마주 앉아서 익어가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정말 재미있는 옛날 추억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라야 그동안 살아왔던 이런저런 이야기였지만, 오래간만에 나누는 편하고 마음 통하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세상의 욕심에서 멀어져버린다. 그는 항상 만날 때마다 자기의 남은 여생 설계를 들려주었다. 복잡한 세상을 털어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아직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면, 비록 내가 신부이지만, 내 종교를 가져보라고 말해본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와의 대화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고, 또 그가 나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있을테니까........
그 친구는 특정종교보다는 자연이 주는 우주의 신비함과 그 속에서 자기 몫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성공한 인생을 이루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직장에서는 인정받는 책임자로, 가정에서는 자상한 가장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제일 편한 사람이다. 그에게서는 욕심을 볼 수가 없다.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절간의 스님보다도 더 세상을 초월하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가 마음에 든다.
그는 노후를 걱정하는 말을 하다가 고향 언덕배기에 초가삼간을 짓고 오고가는 사람들 쉬어가며 살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 옆으로 갈테니 함께 살자고 했다.
함께 살고픈 친구, 함께 이야기하고픈 친구가 있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현세에 살면서도 세속화 되지 않고, 가정을 가졌으면서도 가정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생각을 듣다보면 내가 그에게 해줄 말이 없어진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소위 성직자인 내가 마음을 비우지 못해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나는 그 친구가 하고 싶은 일이 꼭 이루어지도록 기원하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친구가 고향에 집을 짓고 살면 내가 그 곁에 살고, 그리고 마음에 맞는 또 다른 한 사람을 만나면 작은 마을을 이루어 이 마을을 ‘흥부네 마을’이라 하리.
그래서 옛날에 있던 흥부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들 내 교향으로 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