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훈련도 심하게 하기는 하였으나 현역의 배속장교는 없이 이리에[入江主計] 예비역 중위가 가르쳤는데, 총검술을 배우지 않고 검도는 상당히 하였다. 여름에는 부서훈련, 겨울에는 부동훈련을 하는 등 그 당시의 어려운 경제형편에서도 각 개인이 검도복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니까 얼마나 많이 하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 당시는 귀한 채소로써 땅감이라고 부르는 토마토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는데, 실습 중 학생이 그것을 따먹기라도 한다면 여지없이 처벌이다. 그러나 그 토마토를 즐겨먹는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고 나도 토마토 밭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상한 냄새가 나서 토마토를 먹지 못하는 측에 속했다.
지금 와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토마토를 즐겨 먹으며 나도 그다지 즐겨 먹는 편은 못되나 그대로 먹는 것을 보면 세태의 변화에 따라 그 기호성이 많이 변하는가보다.
학교에서는 자기네 말로 국어상용이라 하여 일본말만 사용하게 하였고, 만일 우리말을 하는 것이 선생한테 들키면 어김없이 어떤 처벌을 받게 마련인데 보통 선생님 수첩에 이름이 적혔다가 성적표에 품행이 나쁘게 감점되는 수가 많았다.
실습도 많이 하였지만, 학과 공부는 하기도 하였다. 학생들이 하나같이 순진하고 진실하며 열심이니 학교에 다닐 때 어떤 학생이건 간에 연애를 하는 수는 거의 없고 어쩌다가 여자한테서 연애편지를 받게 되면 친구 사이에도 그 자는 이제 다 된 것으로 생각하여 접촉하는 것을 진심으로 꺼렸다.
만일 연애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 어김없이 처벌을 받았다. 해방 후에 보면 이들 동창들이 국민학교 교사를 거쳐 현재는 대부분 은퇴하였으나, 교장이 된 사람이 대단히 많은 것을 보아도 얼마나 순진하고 착실하며 진실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제는 삼국시대에 백제를 도와준 역사적인 인연을 간직한 부여를 신성하게 여겨 내선일체의 상징이 될 대규모 신궁을 짓는다고 하여 43년 5월에 3학년 전체를 부여에 끌고 가서 근로농사작업을 시키기도 하였다.
이럭저럭 44년이 되어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는 어려운 도지사상을 받았다. 그러나 을종 3년제를 나왔으니 갑종 5년제에 가야 하는데, 그해 전시라 하여 갑종도 수업이 4년제로 단축되었으므로 농업학교 4학년에 편입하면 불과 1년만 다니다가 졸업해야 하니 문제가 생겼다. 갑종학교에서는 1년만 더 배우게 하여서는 편입학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청주에 시험 치러 가다
그러나 충청북도의 학무과에서 주선하여 편입학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충청농업학교로 가고 나를 포함한 4명은 청주농업학교에 편입학을 지원하였다. 그런데 시험을 치러 갈 때는 영동에서는 기차표를 사가지고 갔으나 시험을 치고 나서 돌아올 때는, 청주에서 차표를 살수가 없었다.
물론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생각해낸 것이 청주에서 사지 못하면 그 다음역인 조치원에 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일행은 걸어서 조치원역에 왔으나 여기서도 헛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식량의 배급제가 철저해서 식량배급표를 여관에 주어야만 여관에서 식사를 주게 마련이므로 도중에는 음식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사먹을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하였다. 조치원 다음의 내판역에 가면 혹시나 기차표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제 이 방도밖에 없었다. 청주에 되돌아가야 표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집이 있는 영동 쪽으로 한 발자욱이라도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때도 허기지고 걸을 힘도 없었으나 어찌하랴. 서로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하면서 내판역까지 왔으나 여기서도 허탕이었다.
이제 어쩌지. 무작정 역동까지 걸어야 하나. 걸어갈 힘도 없다. 모두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궁하면 통하는 방도가 있을 법한데! 그때 생각난 것이 신탄진 영동농업학교 동급 친구가 있는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신탄진이 여기서 얼마나 먼데! 그 중에서 그다지 강하지 못한 김진모 친구가 먼저 비명을 지르며 나는 못 걷겠다고 하고 소리쳤다.
어찌하랴. 다른 방도가 없지 않은가. 내가 쾌연히 일어나면서 “힘을 내라” 외치면서 “가자!” 소리치고 앞장서서 걸었다. 다른 친구도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뒤따랐다. 그 후부터는 별말도 없이 느릿느릿 걸었다. 자주 쉬어갈 수밖에 없었다. 쓰러질 듯 한 친구의 가방은 좀 기운이 나은 친구가 받아들고 걸었다.
길에 씨감자가 몇 개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친구는 그것을 주워서 깨물어먹기도 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어둠이 깔릴 때가 되어서야 겨우 신탄진의 친구가 있는 마을에 겨우 도착했다. 이 친구가 집에 없으면 어찌하나, 새로운 걱정이 생겨났다. 친구가 없으면 이제 굶어 죽는다. 이제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이리저리 물어서 그 집의 문밖에서 친구의 이름인 오권진을 불러보았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조금 있으니 드디어 하느님 같은 존재인 오군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일행은 다 같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겨우 방에 들어가서는 배고픈 것도 모르고 모두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는지 흔들며 소리치는 소리에 깨어보니 옆에 푸짐한 밥상이 놓여있지 않은가. 이것이 왠 횡재밥인가. 누구나 할 것 없이 환장한 사람같이 거의 씹지 않고 순식간에 물과 함께 밥을 위속으로 밀어 넣는 식으로 먹어치웠다. 이제 살아난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또 깊은 잠에 떨어지고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다음 날은 오군의 형의 주선으로 어렵지 않게 기차표를 살 수 있어 무사히 집으로 올수 있었다. 이것이 1944년의 기차타기 형편이었다.
청주농업학교 입학
전시의 44년 4월이 되어 청주농업학교에서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 학과 공부는 이미 배운 것이 대부분이어서 별것은 아니나 총검술을 배운 바가 없어 이것이 당장 큰 문제였다. 학과 시간이 끝난 방과 후에 영동에서 온 학생이 네 명만 남아 있다가 총검술을 기초부터 배우란다.
이제 와서 총검술의 기초 동작을 하나, 둘 배우는데 원래부터 있던 학생들이 시큰둥하게 멸시하며 쳐다보고 지나가니 열적고 창피하여 못 견디겠다.
다음 날 일행 중 비위가 약한 학생인 김진모 군이 이제 나는 못하겠으니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짐을 싸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참으세.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 보세.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이렇게 만류하여 겨우 진정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