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복귀 (6회)

1.4후퇴 이후 집을 떠난 지 어느덧 2년 6개월쯤 되었다. 마을에는 곧 전쟁이 끝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서울에 가보기로 했다 서울에 가신지 며칠이 지나서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이제 집으로 가자.”

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그동안의 고생을 잠시 잊게 만들었다. ‘다시 집으로 갈수 있구나. 나는 학교에도 갈수 있을 거야.’ 온 가족들이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올 때 가져온 리어카에 짐을 싣고 우리는 서울로 향했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당도한 미아리 집은 이미 예전의 그 집이 아니었다. 폭격을 맞아 여기저기 부서진 데다가, 문틀도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집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우리 가족은 한동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암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멍하게 서있는 우리를 다그친 건 역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형수들과 부엌에 먼저 가더니 불을 피워 밥을 지었다. 그러자 우리도 집안 여기저기 손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휴전이 선포되었다.

고등공민학교에서 배움을 이어

근 3년간을 피난민으로 객지에서 보내다왔다. 우리 가족은 미아리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렇지만 차츰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복덕방을 하며 부동산중개업에 뛰어들었다. 군대에 갔던 네 명의 형들도 차츰 돌아오고 있었다, 첫째 형과 둘째 형은 취직을 했고, 샛째 형은 농사를 짓기 위해 포천 시골로 내려갔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숭인초등학교 3학년에서 멈춘 학교생활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3학년이었다. 동네 친구들은 벌써 6학년에 올라가고 있었다. 3학년으로 들어가자니 창피하고 6학년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교를 안 다닐 수는 없었다.

집에서는 각자 생활전선에 뛰어드느라 내 공부에 신경을 써줄 여력이 없었다. 내 위의 형들과 누나의 진학문제가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초등학생인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골목에 앉아 코를 박고 있으니, 마침 친구 해강이가 지나갔다.

“야, 해강아 오랜만이다.”

“그래, 오랜만이네. 그동안 피난갔다 이제야 왔다며?”

“그래, 그렇게 됐어.”

“그런데 왜 그리 죽상을 하고 앉아 있냐?”

▲ 휴전직후인 1953년 서울거리

“음....... 사실 말이지. 난 지금 학교에 갈수 없어. 피난가 있는 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했거든. 그렇다고 3학년으로 들어가겠냐, 6학년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과목을 이수하지 않았으니 학교에서는 안 된다고 그러고...... 그래서 고민이야.”

“야! 좋은 생각이 있어. 내가 아는 교회에 성경구락부가 있는데, 거기서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쳐준댔어. 너처럼 피난갔다가 학교에 못 들어가는 애들도 많다더라. 거기 가볼래? 내가 소개시켜 줄게.”

나는 해강이의 소개로 정릉교회 고등공민학교(성경구락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해강이를 따라 정릉교회를 찾아갔다. 정릉교회는 내가 사는 미아리에서 고개를 넘어야 하는 정릉동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한국전쟁으로 예배당이 파괴된 상태였다. 학교 교실도 따로 없었다. 천막을 치고 그 안에 가마니를 깔고 수업을 하고 있었다.

정릉성경구락부는 1952년 3월 2일 개교해 전쟁고아나 가난한 아리들을 위하여 초등학교 과정과 성경공부를 시켜주는 곳이었다. 주로 정릉교회 청년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의 교장은 박순실 선생님이었고, 김교성, 심재소 등 7명의 젊은 교사들이 있었다.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도 했지만, 그곳의 첫 인상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를 맞아주는 박순실 선생님은 아주 자상해보였고, 옆에 있는 선생님들도 인상이 무척 맑았다.

고등공민학교의 학생들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있었다. 나는 고등공민학교 3학년으로 들어갔다. 반 아이들은 40여명 정도 되어보였다.

나는 3학년으로 들어가 곧 반장이 되었다.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비록 천막교실이지만 배우려는 학생들과 가르치려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있으니 교실의 열악한 환경도 불편하지 않았다.

여름이면 더운 천막교실을 벗어나 신흥사 절 중턱에 칠판을 걸어놓고 수업을 하기도 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바람 속에서 풀 냄새가 났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정겨웠다.

자연을 만끽하면서 친구들과 같이 듣는 수업은 재미가 있었다. 너무 더워 땀이 너무 많이 날 때면 친구들과 함께 계곡에 가서 등목을 했다. 차가운 계곡물로 등목도 하고, 나면 한순간 더위가 가시곤 했다.

고등공민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성경공부를 했다. 수요일이면 한시간 동안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기 전 항상 읽은 성경구절이 있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누가복음 2장 52절 말씀이었다. 선생님은 반장인 나에게 먼저 선창하게 하고 학생들이 따라하게 했다.

그 학교에는 합창단도 있었다. 수업 후에 기독교방송(CBS) 초기 아나운서를 하던 이현숙 선생님이 와서 우리에게 합창지도를 해주었다. 또한 고등공민학교 선생님들은 수업이 끝나고 다시 우리들에게 과외공부를 시켜주었다.

과외공부를 할 때에는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러니 우리들은 정시 초등학교보다 더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박순실 선생님의, 딸인 심재소 선생님이 우리의 과외공부를 맡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