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대회(大會)-1 (109회)
  제13장 보사부장관 시절

서울대 총장 재임 시였던 81년 9월 30일 저녁 KBS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몇 사람이 총장 공관으로 찾아 왔던 일이 생각난다. 서독 ‘바덴바덴’에서 88년 올림픽개최지로 우리 서울이 결정됐다는 뉴스가 날아오던 날이었다. 누구나 흥분했다. 나도 물론 흥분상태에 있었다. 촬영장치를 하고는 소감을 묻는다. ‘올림픽’은 남의 나라의 일이고 우리들은 단지 참가하는 것만으로 뜻을 찾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올림픽’이 우리 서울에서 열린다니 참으로 꿈만 같다고 이야기했다. 말하는 나나 묻는 기자나 흥분상태는 지속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분단된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니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때 느낀 감정은 영원한 것이며 지금도 피부로 느껴진다.

2개월 후에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組織委員會) (SLOOC) 가 발족되었다.  그 직후인 11월 26일에 제10회 아시안게임의 서울 유치가 결정되었는데 그야말로 금상첨화격의 행운(幸運)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서울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의 리허설 구실을 할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행정적(行政的)으로 지원할 목적으로 82년 3월에는 체육부(體育部)가 출범(出帆)했고 8월에는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관한 종합계획(綜合計劃)이 수립되었다. 제반시설도 착착 진행되었으며 84년 9월 29일에는 잠실 주경기장(蠶室 主競技場)이 개장되었다.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로서 호돌이가 선정되고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표어도 채택되었다.

나는 문교부장관시절 조직위원회(組織委員會)의 집행위원(執行委員)의 한사람이었던 관계로 준비작업에 관하여는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당시의 조직위원장(組織委員長)은 후에 대통령으로서 올림픽 개회선언(開會宣言)을 하신 노태우(盧泰愚)씨였다. 초대 위원장인 김용식(金溶植)씨의 뒤를 이어 노태우(盧泰愚)씨를 거쳐 올림픽은 박세직(朴世直)씨에 의해서 치러졌다.

86년 9월 20일에는 제10회 아시안게임이 잠실벌에서 개막되었다. 27개국에서 4천 8백 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였는데, 모든 것이 완벽하였다고 자부한다. 경기 면에서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중국에 이어 2위로 부상하였는데 양국 사이의 차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3위에 머무른 일본과는 대단한 격차를 유지했었다. 일본(日本)에서는 반성론(反省論)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눈으로 우리를 보기 시작하였다.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의 예행연습과 다름없었다.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우리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얻었다. 하면 된다는 각오를 재삼 다짐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우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값진 것은 국민의 자세였다. 어려움을 참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를 극복하여 승리로 승화(昇華)시킨다는 고귀한 정신을 국민이 간직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바라던 것은 북한(北韓)의 참여였다. 이 일을 위해 스위스 로잔에서는 네 차례의 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87년 7월의 제4차 회담을 끝으로 이 과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문을 닫고 말았다. 북한의 생떼에 관하여는 더 설명할 나위가 없는 줄로 안다. ‘바덴바덴’에서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된 후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9차례에 걸쳐서 내한한 바 있다. 그의 관심과 정열은 대단하였다. 각종 경기장은 물론 세계 최상급의 선수촌(選手村), 국제방송(國際放送)센터, 기자촌(記者村)이 완공되었고 많은 외국전문가들이 우리 시설을 점검하기도 하였다.

드디어 88년 9월 17일이 되었다. 전 세계160개국 1만 3천 6백 26명의 선수단을 맞이한 사상 최대의 올림픽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프리카 각국이 불참했던 76년 몬트리올 대회, 서방국가가 불참했던 80년 모스크바 대회, 공산진영(共産陣營)이 불참했던 84년 LA대회 이래 실로 12년 만에 동서화합(東西和合)의 장(場)이 우리 서울에서 열린 것이다.

화합(和合)과 전진(前進)을 상징하는 개막행사(開幕行事)가 전 세계 50억 인구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잠실벌에서 시작되었다. 1854명이 출연한 개막행사는 3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는데 공식행사와 더불어 개막행사의 축하는 장엄과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그리스 선수단을 필두로 하여 5대양 6대주에서 모인 선수들이 가나다순으로 입장하였다.
 
▲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가 불타오르고 있다

박세직(朴世直) SLOOC위원장의 대회사(大會辭)와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환영사(歡迎辭)가 있은 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개회선언(開會宣言)에 이어 올림픽기가 게양되었다. 그리스 헤라 신전(神殿)에서 채화되어 25일 간 달려온 성화가 최종 주자인 박춘애(朴春愛) 선수에 의해서 점화대(點火臺)에 골인하고 3인의 점화자에 의해서 점화되었다. 인종(人種)이나 이념(理念), 빈부(貧富)의 벽을 넘어서 한자리에 모인 지구촌(地球村)의 가족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졌다.

16일간 계속된 명승부(名勝負)의 장(場)은 10월 2일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모든 벽을 넘어선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의 폐회식(閉會式)은 에밀레종(鍾)의 은은한 울림 속에서 시작되었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폐회를 약속하는 드라마틱한 행사가 서울의 밤을 장식하였다. 개막행사 못지않게 폐막행사 또한 놀라움과 찬미의 극치였다.

서울올림픽에서는 33개의 세계신기록이 속출하였는데 86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우리는 또 다시 기적과도 같은 훌륭한 성적을 올렸다. 즉 금(金)메달 12개, 은(銀)메달 10개, 동(銅)메달 11개 도합 33개로 우리나라는 소련(蘇聯), 동독(東獨), 미국(美國)에 이어 세계 제4위로 부상한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 해도 10위 정도에 머물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세계 제4위로 뛰어 오르자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올림픽 때 보사부장관(保社部長官)이었던 나는 세 가지 책임을 맡고 있었다. 첫째 의무지원(醫務支援), 둘째 식품위생(食品衛生), 셋째 환경(環境) 특히 공해대책(公害對策)이 그 내용이었다. 어느 하나도 화려한 성질의 것이 못되지만 어느 하나도 소홀하게 다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었다. 잘 된다고 해도 겨우 밑천을 찾는 것이며,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긴다면 올림픽 자체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분야의 인사들이 다 그러했지만 보사부(保社部) 직원들의 노고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궂은일이어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들이었다. 가령 식중독(食中毒)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그야말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식중독환자가 한 사람이라도 생긴다면 우리나라 전체의 망신이 되는 것이다. 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 도시락 만드는 업소도 생전 처음으로 가 보았고 재료 취득부터 조리(調理), 공급(供給)에 이르는 과정을 지도 감독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살피기도 하였다. 겪은 일들이 많았지만 여기서는 의무지원활동(醫務支援活動)에 관하여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올림픽헌장(Olympic Charter) 제29조는 약물검사(藥物檢査)와 성검사(性檢査)를 규정하고 있고 올림픽 편람(The Administration of an Olympic Games)에서는 올림픽 신분증 소지자(Olympic Family)에 대한 의료(醫療)서비스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올림픽 의무지원(醫務支援)을 기획, 준비, 집행하기 위하여 각 대회조직위원회는 위원회 내에 의무지원회(醫務支援會)(Medical committee)를 설치한다.
2. 올림픽선수촌 내에는 24시간 운영되는 올림픽선수촌 병원(Olympic Village Medical Center)을 설치하여 15개의 병상(病床)(남자 10, 여자5)을 둔다. 또한 내과(內科), 물리치료(物理治療), 외과(外科) 등의 전문의(專門醫)를 두고 약국(藥局)을 두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3. 각 경기장 및 행사장에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클리닉을 설치하고 환자의 후송조치(後送措置)가 가능하도록 구급차 서비스를 제공한다.
4. 마라톤, 경보(競步), 승마(乘馬) 등 도로경기에는 구급차(救急車) 및 특별 의료(醫療)서비스 대책을 강구한다.
5. 관중을 위한 응급진료시설(應急診療施設)(First Aid Facilities)을 운영한다.
6. 마라톤 선수, 복싱 선수를 위한 의무검진을 한다.
7. 성검사(性檢査) 및 약물검사(藥物檢査)를 실시한다.

 
  콩나물 사건(事件) (108회)
  서울올림픽 대회(大會)-2 (110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