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애자(障碍者) 올림픽 대회(大會)-2 (113회)
  제13장 보사부장관 시절

단군성조의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강화도(江華島) 마니산 참성단에서 7선녀가 채화(採火)한 성화(聖火)가 118명의 장애자와 정상인 주자의 손을 거쳐 올림픽경기장 성화대를 밝혔을 때 감동(感動)과 흥분(興奮)은 절정에 달하였다. 주자 중에는 스케이팅보드 위의 천사(天使)인 Kenny군도 끼어 있었다. Kenny군은 배꼽 이하가 절단된 장애자인데 두 팔만으로 무엇이든 해내는 인간승리자(人間勝利者)이다. 많은 화제(話題)를 뿌렸으며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의 당당한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성화 최종주자인 척수장애자 조현희 여사와 그의 휠체어를 미는 딸 윤보람 양 모녀의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8만 관중을 모두 울려버린 이 모녀의 신선한 감동은 우리의 가슴속에 사랑의 불꽃을 영원히 밝혀주었던 것이다.

나는 개막되기 전에 공연연습을 하고 있던 장애자들을 틈틈이 찾아가서 격려하였다. 그들은 불굴의 의지도 대단하였지만 그들을 지도한 여러 인사들에게는 나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졌다. 땀 흘리면서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던 문일기(文一技)씨의 모습이 생각난다.

경기(競技) 종목에는 정식종목과 시범종목이 있었다. 정식종목은 16개 종목인데 세부종목으로는 732개가 있었다. 육상(陸上), 수영(水泳), 농구(籠球), 골볼, 탁구(卓球), 사이클, 축구(蹴球), 배구(排球), 유도(柔道), 양궁(洋弓), 사격(射擊), 펜싱, 론볼링, 보치아, 당구(撞球)의16개 종목이 장애 정도에 따라서 구분되기 때문에 732개의 세부종목으로 나뉘는 것이다. 그러니 메달 수가 엄청나게 많았으며 수상 행사에도 상당한 배려를 해야 했다. 시범종목은 휠체어 테니스 1개 종목이었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직접 개회식에 참석하여 격려를 아끼시지 않았고 경기 상황을 두루 살피시기도 하였다. 때마침 뉴욕에서 열린 UN총회에 참석하시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연설을 하고 만방(萬邦)의 공감(共感)을 얻는데 성공하고 귀국하여 경기장을 찾으신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메달 수에 있어서 미국(美國), 독일연방공화국(獨逸聯邦共和國), 영국(英國), 캐나다, 프랑스, 스웨덴에 이어 일곱 번째의 성적을 올렸다. 금메달 40개, 은메달 35개, 동메달 19개, 도합 94개의 메달을 따낸 것이다.

경기에 몰두하는 장애자 선수들의 모습은 성스럽기만 했다. 만일의 경우 불상사가 나면 어찌하나 걱정도 하였지만 별일 없이 잘 지냈다. 매일 매일이 걱정되는 날의 연속인데 대하여는 더 설명할 나위가 없다.

선수촌 식당에서 이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면 눈물겨운 정경이 많았다. 어떤 선수는 발가락으로 먹을 것을 나르고 또 먹는데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선진국의 선수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자립(自立), 자조(自助)의 정신이 충만해 있는 것이다.

10월 24일 오후 5시 30분부터 폐회식(閉會式)이 시작되었다. 10일 동안 다함께, 굳세게, 끝까지 저마다의 기량을 겨루었던 세계의 장애선수들이 승패(勝敗)를 넘어서 우정(友情)을 다지는 자리로 흥겨우면서도 정겹게 진행되었다. 모든 참가선수들이 서로가 존귀한 존재이며 홀로서기보다는 어깨를 마주하는 것이 이 세상을 더 밝게 하는 것임을 재인식했다. 인종(人種)이나 성별(性別)에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임을 깊이 인식한 것이다.

장애자 올림픽기(旗)가 서서히 하강하고 성화(聖火)가 꺼지고 경기장이 어둠에 싸이면서 서로서로 손을 잡고 석별의 아쉬움을 나누는 정경, 그리고 오색폭죽이 잠실(蠶室)벌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던 광경이 영원히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 사실상 폐회식(閉會式) 전후에 공연된 자체공연작품(自體公演作品)인 “코리아 환타지”와 서울올림픽 폐회식 연계작품인 “안녕” 등의 행사는 예술의 극치였음이 분명하다.
 
▲ 서울장애인올림픽대회(농구)

올림픽의 경우와 같이 장애자 올림픽 때에도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文化藝術行事)가 전개되었다. 즉 10월 10일부터 25일까지 16일간을 장애자 올림픽 문화예술축제기간(文化藝術祝祭其期間)으로 정하고 공연행사, 전시행사, 선수촌 문화행사 등이 펼쳐졌다.

또한 세계장애자 스포츠 기구 국제조정위원회(國際調整委員會)(ICC)와 그 산하에 있는 국제장애자(國際障碍者)스포츠기구(IOSD)는 대회 전과 기간 중 각종 회의를 열고 장애자 스포츠의 발전, 회원국의 유대강화, 현안문제 등에 관하여 광범위한 토의를 하였다.

서울장애자 올림픽대회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자복지체육회(障碍者福祉體育會)가 탄생하였다. 김석완(金錫完) 쌍용그룹 회장이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장애자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사무총장직을 맡아서 수고한 조일묵(趙一黙)씨가 상근부회장(常勤副會長)이 되었다. 고귀남(高貴男) 위원장은 고문(顧問)으로 추대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새로운 조직체(組織體)가 탄생하였다. 이제까지 4개의 장애자 스포츠기구가 모여서 구성되었던 세계장애자 스포츠기구가 발전하여 국제장애자 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Paralympic Committe, IPC)를 낳게 하였다. 이 위원회는 89년 9월에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출범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조일묵(趙一黙)씨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서울장애자 올림픽대회를 회상해 보면 지금도 ICC위원장이었던 옌스브로만(Jens Bromann)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덴마크 출신인 그는 10세 때 실명(失明)하여 맹인(盲人)이 되었는데 모든 것을 극복하고 법학(法學)을 전공한 변호사(辯護士)이다. 덴마크 정부의 보건성(保健省)에서 근무한 바도 있으며 서울장애자 올림픽대회에서 시종 그를 도왔던 부인과는 그 당시에 맺어졌다고 한다. 의연한 그의 자세와 정열을 쏟는 그의 행동은 높이 평가될 만한데 그 뒤에는 부인의 숭고한 희생정신(犧牲精神)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원봉사단원의 헌신적인 봉사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85년 6월에 발족한 봉사단은 대회기간 중 일반 통역(通譯), 안내(案內), 수화통역(手話通譯), 경기진행(競技進行), 행정보조(行政補助), 급식(給食), 급수(給水), 의료(醫療), 질서(秩序) 안전(安全), 미아보호(迷兒保護)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활동을 펼쳤는데 특히 장애자를 상대로 하는 봉사활동에는 눈물겨운 장면이 많았다. 그야말로 사랑과 인내(忍耐)의 극치(極致)를 상징하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感動)시키기에 충분하였다. 5,911명의 단원 중 3,421명은 자체 확보하여 현장에 배치되었으며, 나머지 2,590명은 서울 올림픽에 참여하였던 경험자를 주축으로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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