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동란 중 처가(妻家)에서 기르던 개를 식용으로 한 일이 있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개밥을 마련할 수도 없고 하여 최후 수단으로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맡겨서 이루어진 일인데 모든 가족이 슬퍼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던 광경이 생각난다.
내가 소위 보신탕을 먹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요, 끝이다. 왜냐하면 그 후에는 입에 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 인사 중에는 보신탕을 애용하는 분이 많다. 1년 365일 동안 매일 거르지 않는 분도 있다. 보신탕은 문자 그대로 몸에 좋다는 관념이 크기 때문에 나에게도 보신탕을 권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별로 탐탁하게 생각되지 않아 그때마다 사양해 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하여 몇몇 나라에서 보신탕에 관한 항의나 진정이 간간이 있었다. 매스컴을 통해서 보도되는 것이 상례였는데, 심한 예로는 개고기를 먹는 나라에서 어떻게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가 하고 규탄(糾彈)하는 악의에 찬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특기할 만한 일이 생겼다.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동물복지기금(國際動物福祉基金)(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 IFAW)으로부터 개와 고양이 보호에 관한 서명자 명부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올림픽 개회(開會) 전날인 88년 9월 16일 외무부(外務部)로부터 명부 인도계획을 통보받았고, 9월 2일에는 서울 세관장으로부터 명부가 도착했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9월 23일 명부를 인수했다는 조기욱(曺基彧) 위생국장(衛生局長)의 보고가 있었다.
1차분은 영국(英國) IFAW로부터 필리핀 사람인 매코르 아리피오(Mekhor Alipio)의 편으로 9월 20일 서울 세관(稅關)에 도착하여 23일에 인수되었고, 2차분은 미국(美國)·네덜란드로부터 미국(美國) IFAW를 거쳐 9월 23일 서울 세관(稅關)에 도착 당일로 보사부가 인수했다는 내용이다.
서명자는 영국인(英國人) 89만6천명, 미국인(美國人) 42만3천명, 네덜란드인(人) 38만1천명 등 1백70만 명이며 중량이 약 1,146Kg으로 두 트럭분이니 대단한 양이다. 문명사회(文明社會)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잔혹한 방법으로 개와 고양이를 도살하는 행위의 종결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진정서이다.
고양이를 식용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일인데 어떠한 경로로 이와 같은 오해가 생긴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한국 사람들이 고양이를 먹는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
|
| ▲ 올림픽을 즈음해 우리나라는 국제 동물단체로부터 보신탕 식용에 대해 항의를 많이 받았다 (경향신문 1988. 4.15.) |
|
보사부(保社部) 내에서 대책회의(對策會議)가 열렸지만 묘책이 없었다. 오히려 불문에 붙이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정식 의안(議案)은 아니었지만 국무회의(國務會議)에서도 보고를 했다. 그리고 그 대처방안에 관하여도 지혜를 얻고자 했다. 역시 별다른 묘안이 없었다.
그동안 실무자와 논의하여 얻은 결론은 아무 말 않고 덮어두자는 데에 의견이 일치되었다.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C장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올림픽이 지난 후에도 보신탕에 관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화제에 올랐다. 일부에서는 보신탕을 선전하자는 의견도 대두하였다. 식용견(食用犬)을 따로 사육한다든가 영양가가 좋다는 점 등을 들어서 떳떳하게 선전하자는 보신탕 애호가들도 많았다.
식품위생법상(食品衛生法上)으로는 혐오 대상이 된다는 조항에 저촉될 뿐 별로 규제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니 역시 덮어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나라에 따라서 식생활 중에는 특이한 것이 많다. 보신탕은 한국(韓國)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보신탕이 유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식품위생법(食品衛生法) 시행규칙(施行規則) 제42조(식품 접객영업자의 준수사항) 21항을 보면 “보건사회부장관(保健社會部長官) 또는 시(市) · 도지사(道知事)가 국민에게 혐오감(嫌惡感)을 준다고 인정하는 식품을 조리 또는 판매하지 아니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교부장관(文敎部長官) 시절에 워싱턴 D. C.를 방문한 일이 있다. 서울대학교 재미 동창회장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식당에서 만찬을 마련해 주었다. 식당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이라는 아주머니가 일부러 나와서 식당의 역사를 설명하며 자랑하였다. 상당히 역사가 있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뱀 샐러드(snake salad)가 메뉴에 올라왔던 일이었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니고 10가지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진까지 붙어 있었다. 이런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적지 않다는 대답이었다. 나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깊숙이 파고들어 가면 나라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메뉴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보신탕이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내려온 민간 토속식품(民間 土俗食品)이어서 역사가 길어 단속으로 조절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보신탕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국제동물복지기금(國際動物福祉基金)(IFAW)도 한국인(韓國人)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한국의 뿌리 깊은 음식문화임을 인식하고 공개 장소에서의 잔인한 임의 도살(任意 盜殺)을 피해 줄 것을 요망한 일이 있었다.
1990년 4월에 이 단체의 회장인 브라이언 데이비스(Brian Davis)씨가 내한한 바 있었다. 그는 한국정부가 동물학대를 금지하는 내용의 ‘동물애호법(動物愛護法)’을 제정키로 한 것이 매우 반갑다고 말하고, 법제정을 계기로 동물사랑 운동이 널리 전개되기를 기대했다.
이 단체는 65년에 세워진 ‘물개보호재단’이 모체인데 69년에 모든 동물을 대상으로 하고 IFAW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 세계에 후원자를 갖고 있으며 미국(美國), 영국(英國), 프랑스 등 7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각국의 동물애호법 제정(動物愛護法 制定) 등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89년 11월 18일부터 12월 4일에 걸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유럽순방기간 중에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