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총(科總)회장 재임기간의 사업실적 중 중요한 것만 몇 가지 소개한다.
과총(科總)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가 과학기술정책(科學技術政策)의 개발과 건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예컨대 과학기술 정보 유통 효율화를 위한 건의를 90년 5월 19일 상공부와 과학기술처에 제출하였다. 이것은 산업기술정보원법(안) 입법예고에 대한 과총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90년 12월 28일에는 기술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학협동(産學協同) 활성화에 관한 건의를 정부와 관계요로에 제출하였다. 산업기술관련분야 대학교수요원의 증원, 기업의 원활한 기술개발촉진을 위한 기금조성,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한 각종 지원정책 및 제도보완(세금 등) 등이 그 내용이었다.
91년 12월 3일에는 과학기술혁신 정책구현을 위한 건의를 청와대와 각 정당에 제출하였다. 전국구(全國區)의원 후보에 과학기술계 대표를 다수 공천해 줄 것과 대통령 과학기술 특보(特補) 신설 또는 과학기술전담 수석비서관 신설 등이 그 내용이었다. 또 하나의 기능이 학술진흥이다. 90년 6월 25일부터 7월 7일에 걸쳐서 세계 한민족 과학기술종합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수리 · 물리과학 · 생명과학 · 지구과학 · 정보산업 · 재료공학 · 산업Ⅰ·산업Ⅱ· 농수산 ·의약보건 · 복지기술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468편(국내 158편, 국외 310편)이 발표되어 성황을 이루었다.
특기할 사항은 중국과 소련 등 공산권에서 최초로 대표들이 대거 참석하였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10명, 소련에서 13명의 교포과학자가 참석하였으며, 이들의 대부분은 처음으로 조국을 방문한 것인데 여러 가지로 값진 경험을 한 것이 분명하다. 회의가 끝나던 날 이들은 조용필(趙容弼)과 주현미(周炫美)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요청해 왔다. 수소문한 결과 두 가수가 다 국외에 체재 중이어서 퍼시픽 호텔의 ‘홀리데이 인 서울’로 안내했다. 내 자신도 훨씬 전에 한번 가 본 일이 있었던 처지여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구경한 셈이다.
코미디언 이주일(李周一) 씨가 소유자였으며, 본인이 직접 무대에 나와서 동포과학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만담도 하였다. 자기 같이 묘하게 생긴 사람도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곧 민주주의라고 하던 그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김(金)세레나 등 많은 가수들이 출연했는데 동포과학자들은 대단히 감격하였던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과학기술논문목록집(科學技術論文目錄集)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90년도 과학기술우수논문 시상식을 갖기도 하였다. 전년에 발표된 최우수논문을 학회별로 추천 받아서 시상하였는데, 처음으로 시도한 이 신규사업은 학회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990년 4월 17일에는 남북민간과학기술 교류추진협의회 현판식이 있었다. 나는 이 협의회의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앞으로의 포부에 대하여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
1991년 7월 8일에는 재소 고려인 과학기술협회의 창립총회가 모스크바 건축공과대학 강당에서 개최되어 나는 민관식(閔寬植) 명예회장, 정조영(鄭助英) 회장직무대행, 이걸삼(李傑三) 사무차장과 함께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당시 주소 대사였던 공노명(孔魯明)씨도 참석하여 격려해 주었다. 소련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동포과학기술자 약 1,000명을 발기회원으로 하고 19개 지부를 바탕으로 재소 고려인 과학기술협회를 창립하였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소련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1991년 8월 19일부터 8월 24일까지 중국 국제과학기술 학술대회가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시(延吉市)에서 열렸다. 나는 참석하지 못하였으며 정조영(鄭助英) 회장 직무대행이 우리 대표단을 인솔했다. 화학(化學), 지질학(地質學), 환경(環境) ·조경(造景), 약학(藥學) · 약물검사(藥物檢査) 등의 분야에 걸쳐서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학술회의사상 최초로 북한대표 45명의 참석을 성사시킴으로써, 남북한의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두 기관 즉 남한의 과총(科總)과 북한의 조선과학기술총연맹(朝鮮科學技術總聯盟)이 주축이 되어 남북학술교류의 장을 열고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동반등정하여 통일기반 조성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과총(科總)이 안고 있는 과제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과학기술진흥센터의 건립이다. 이 과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지만 쉽게 해결되지는 못하였다. 정부지원을 받아 건립대지를 마련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즉 88년부터 3년 간 분할 매입해 온 대지를 최종적으로 완전 매입하고 90년 6월부터 3년 간 분할 매입해 온 대지를 최종적으로 완전 매입하고 90년 6월18일 등기 · 이전하였다. 1,250평 중 최종 986.5㎢(298.4평)이 과총(科總) 재산으로 등록된 것이다.
그러나 센터의 건립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었다. 91년 2월 12일에는 과학기술진흥센터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내가 위원장이 되어 1차 회의를 개최하고 건립추진방향을 토의하였다. 이미 고인이 되신 신무성(愼武晠) 박사의 풍부한 경험담과 지혜가 지금도 떠오른다. 서울특별시에 건축허가가 신청되었으나 문제는 건축자금이었다. 내가 회장직을 사퇴한 후에도 민관식(閔寬植) 명예회장의 노력은 계속되었으며 결국 국고 지원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92년 4월 3일 과총 회장단회의에서 나는 정식으로 사의를 표명하였다. 사표는 18일 개최된 이사회에서 처리되었으며, 정조영(鄭助英) 대행 후임으로 김시중(金始中) 박사가 취임하였다. 내가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의 회장직 대행과 회장직을 떠난 후의 대행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정(鄭)대행의 임명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일부 인사도 있었지만 내가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였으니까 상임 부회장이 대행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마치 부당한 조치인 것 같이 지적하는 일부 여론이 있었던 것은 사정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해석된다.
4월 18일부터는 그 배경이 달라졌다. 즉 내가 회장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여러 후보를 놓고 인선을 했지만 나는 고려대 부총장을 역임한 화학교수인 김시중(金始中) 박사를 강력하게 추천하였다. 추진력과 과총에 대한 열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회장직무대행으로서 김(金)박사는 많은 일을 하였다. 분야별로 회원단체와의 간담을 마련하여 과총의 진로를 정립하기도 하였고 대선을 앞두고 과총의 역할을 제시하는 등 다대한 업적을 쌓아올렸다.
93년 2월 24일 과총 총회가 외교안보연구원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지난 해 총회에서 차기(次期) 회장으로 박태준(朴泰俊) 포항제철 회장을 선출했지만 본인의 사정으로 고사했던 것은 주지의 일이다. 과총의 정관은 취임 1년 전에 차기 회장을 선출하게 되어 있다. 1년이 지나면 차기회장이 자동적으로 회장이 되는 것이다.
93년 총회에서는 회장 선출방법도 종래의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종래에는 전형위원회에서 선출하였는데 이 관행에 대하여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시대의 흐름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촉구하였는데 과총(科總)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총(科總) 내 5개 분야 즉 이학(理學) · 공학(工學) · 보건(保健) · 농수산(農水産) · 종합(綜合)에서 각각 선거인을 선출하고 이 5명의 선거인과 명예회장, 상임고문, 회장대행 등 3명의 당연직 선거인으로 선거인단이 구성되었다. 물론, 이 방법은 총회에서 논의되고 의결되었다. 분야별 선거인 선출은 과총 사상 가장 민주적으로 진행되었다.
선거인단 회의에서는 나를 의장으로 선출했다. 후보 추천을 받고 무기명 투표를 하며 과반수득표자가 회장으로 선출되도록 기준을 정했다. 동수일 경우에 대비한 규정도 마련하였다. 후보로는 과학기술원의 최순달(崔順達) 박사와 경인(京仁)에너지의 성낙정(成樂正) 회장을 천거받았다. 두 분을 대상으로 무기명 투표를 실시한 결과 성(成)회장이 7표를 얻어 과총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시간관계로 부회장과 이사 인선은 다음 선거인단 회의에서 하도록 하였다. 3월 4일 아침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에서 선거인단 회의가 소집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미루어 왔던 부회장과 이사들을 선임하였다.
김시중(金始中) 박사는 총회 다음날 출범한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과학기술처장관으로 입각하였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김(金)박사의 입각을 축하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