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처장관으로 재임 시에 제기되었던 문제나 사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는 수도권 해안매립지 문제를 들고 싶다. 왜냐하면 매립지가 인천시에 일부 걸려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김포군 검단면에 속해 있기 때문에 나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나의 출생지는 하성면(霞成面)이어서 매립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김포(金浦)가 고향이고 보니 여러 가지로 감회가 교차되었다.
환경처장관으로 취임한 후 제일 먼저 찾아간 현장이 바로 이 매립지였다. 원래 동아건설이 간척한 해안지역 중 630만평을 87년 9월 11일에 수도권 매립지로 확보한 것이다. 이 중 123만평을 제1공구로 하고 89년 9월에 착공하여 91년 11월에 준공하였다. 제1공구의 매입용량은 4천 7백만 톤이며 5년을 매립기간으로 잡았다. 물론 완전한 위생매립을 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매립지를 방문하였을 때 삼출오수처리장(滲出汚水處理場)을 비롯한 각종 시설이 한창 건설 중에 있었다.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55년 Minnesota대학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이 회상되었다. Bush 교수가 이 분야에 관한 강의를 해주었고, 또 현장에도 데리고 가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남의 나라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매립장에 와서 보니 옛적 생각이 떠오를 뿐만 아니라 그때 좀 더 열심히 공부했을 것을 하며 아쉬운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전체 매립지는 약 25년 간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계획되어 있고 환경연구단지도 이 지역에 설치할 예정으로 있었다. 91년 11월 20일에 제1공구 준공식이 있었고 92년 2월 19일에 경기도의 쓰레기 반입이 시작되었다.
이 날 11개 시 · 군 쓰레기 약 1,600톤이 반입 처리되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폐기물 처리문제로 사정이 달라졌다. 전년에 개정된 법에 따라 일반산업폐기물 중 오니, 피혁쓰레기 등 7개 품목이 특정폐기물로 지정되었는데 전에는 이런 것들이 일반 가정 쓰레기와 동등하게 취급되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특정폐기물로 취급되면서부터 심각한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4월 2일 수도권매립지에 일반산업폐기물을 반입 처리하는 문제를 놓고 관련실무자회의가 환경처에서 열렸고 4월 말까지 반입을 개시한다는 것과 주민설득대책반을 구성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4월 10일에는 지역주민과의 협의가 수도권매립지 운영관리조합 사무실에서 있었으며, 반입 전에 주민 합동설명회와 지역주민 지원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하도록 하였다. 다음 날 한국일보에 ‘산업쓰레기 김포반입 강행, 주민 계속 반발 땐 공권력 동원’이라는 내용의 보도가 있었다. 그 다음날인 4월 12일에는 산업폐기물 반입반대 김포군 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4월 16일에는 환경처 차관실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개최되어 주민요구사항을 검토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수도권 정비계획완화(整備計劃緩和)문제는 별도로 검토하도록 하였고, 지역발전기금은 100억 원으로 하고 시 · 도 분담금 50억, 산업폐기물 반입수수료에서 50억을 부담하되 조합의 지불보증조건으로 김포군에서 기채하도록 하였다.
4월 20일에 지역주민설명회를 개최하였으나, 지역주민의 농성으로 중단되었다. 다음 날 지역주민들은 대책회의를 열고 산업폐기물 반입을 절대 반대하고 가정쓰레기는 분리수거한 후 압축운반(壓縮運搬)하는 경우에만 반입을 허용한다는 것을 결의하였다. 한편 군의회(郡議會)에서도 군의원 전원(9인)이 참석하여 산업폐기물의 반입을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4월 23일에도 김포읍에서 환경처차관이 주관하는 주민과의 대화가 있었고 24일에는 검단 면장실에서 관계 실무자와 지역주민과의 대화가 있었다. 27일에는 중앙환경분쟁 조정위원회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개최되어 주민과의 충돌을 피하고 가시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할 것과 지역주민에 대한 홍보물을 제작 · 배포할 것 등을 논의하였다.
한편, 주민들은 추진위원회 주관 하에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28일에는 현판식을 갖는가 하면 5월 1일에 진입로 입구에서 제2차 주민농성이 있었다. 그 후 5월 4일부터 9일까지 3차 농성이 계속되었다. 5월 6일에는 제2차 실무대책회의가 정부 제 1청사에서 열렸고 부처별 실무검토안이 협의되었다. 5월 7일 오후에 나는 김포군수실(金浦郡守室)을 방문하여 직접 지역주민과 대화를 나누었다. 경기도 부지사, 경기도 의회의원 2인, 김포군 의회의원 3인, 반대추진위원 2인 등이 참석하였고 연영석(延永錫) 김포군수와 이원화(李元華) 김포경찰서장이 배석하였다. 주민 대표들은 여러 가지 불만을 토로하였다.
나는 김포가 내 고향이고 애향심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요구사항은 최대한으로 수용하고자 하며, 정부가 어느 경우보다도 진지하게 문제해결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학교생활을 하였을 때의 경험 등을 예로 들고 빨리 농성을 끝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고향에 쓰레기를 가져온다는 것도 못마땅한데 공권력(公權力)까지 행사하겠다고 하니 참을 수가 있느냐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공권력 투입 운운은 금시초문이며 자기 고향에 공권력을 투입하려는 장관이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쓰레기 반입 여건이 미비된 점, 사전에 주민들과 충분한 의견교환이 없었던 점 등은 솔직히 사과하기도 했다. 주민대표들의 자세도 누그러지는 듯했다.
다음날에는 관계부처 차관회의가 소집되었고 그 다음날에는 이 진(李 進) 차관과 주민대표, 환경단체 대표, 대학교수 등이 KBS 심야토론에 출연하여 수도권매립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5월 11일에는 환경처차관을 비롯하여 교육부, 건설부, 교통부의 관계국장과, 경제기획원, 내무부의 관계과장,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의 관계국장, 그리고 주민 약 120명이 참석하여 관계부처 합동설명회(合同說明會)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주민의 요구사항에 대하여 정부의 조치계획이 미흡하다는 반발이 있었다. 주민의 요구사항 21건 중, 수용 11건, 부분수용 3건, 긍정검토 2건, 추후 별도검토 3건 등이 그 내용이었다. 다음날에는 지역주민 반상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5월 14일에도 지역주민과의 대화가 있었다.
지역주민들은 나름대로 대책회의를 몇 차례 가졌다. 정부와 주민 양측에서 회의는 연일 계속되었고, 5월 28일에는 수도권매립지 주민공청회가 김포군청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제시된 대전대학(大田大學) 장 원(張 園) 교수의 중재안을 주민측이 검토하고 반추위 및 이장단 회의를 거쳐서 반입허용문제와 반입개시일을 결정한다는 결론을 얻어 실마리가 트이기 시작했다. 장(張)교수의 중재안은 특정 산업폐기물을 제외한 일반 산업폐기물을 향후 5개월 동안 선별 반입, 선별 처리하되 5개월 동안 민간 연구기관의 유 · 무해성에 대한 환경영향조사(環境影響調査)를 실시하고 유해성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이송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6월 3일 반추위에서 장(張)교수의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하였고 5일부터 15일 사이에 4회에 걸쳐 실무회의가 열리기도 하였다. 주민 측에서 향후 특정 폐기물을 반입처리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요구한 것이 새로운 불씨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추후 피해 예상 영향권 지역주민의 80% 이상의 동의 없이는 반입계획을 수립하지 않는다는데 합의하였고, 6월 16일부터 일반 산업폐기물 반입이 개시되었다.
수도권매립지(首都圈埋立地) 문제가 나에게는 좋은 교훈을 안겨주었다. 나는 제 20회 세계환경의 날인 6월 25일 저녁에 김포군 검단면 소재 식당에 지역주민 80여 명을 초대하여 만찬을 나누면서 매립지 문제가 내 고향 김포를 발전시키는데 값진 계기가 될 것임을 다짐했다. 함께 참석한 이진(李進) 차관에 대한 찬사가 대단했다. 지역주민들은 이(李)차관과 정이 들었노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번까지 8차에 걸쳐서 김포를 방문했다고 하니 이(李)차관의 노력과 정성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李)차관은 김포(金浦)가 제2의 고향이 되었다고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부임하자마자 매립지 문제로 동분서주했던 심재홍(沈載鴻) 경기도지사도 이 자리에 나와서 회포를 풀었다. 김포 출신인 심(沈)지사는 고향을 아끼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연일 궂은일을 놓고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성의를 다했으며 지역주민들도 감동했다.
수도권매립지(首都圈埋立地)에 대하여 내 자신은 물론 정부가 정성을 다한 것은 이 문제가 우리나라 환경행정사상 대단한 비중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환경처에서는 전국에 34개의 광역 매립지(廣域 埋立지)를 마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연차적으로 실현시키게 되어 있는데, 소위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현상 때문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수도권매립지가 시범적 역할을 하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