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27일부터 4일간 개도국 환경장관회의가 말레이지아의 Kuala Lumpur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55개국이 참석하였으며 참석자 중 41명이 장관이었다. 또한 미국, 일분 등 11개 선진국에서도 대표자가 참석하였는데, 이들에게는 옵서버로서 10분 정도 의견을 개진토록 마련되었으며 토론에는 참여시키지 않았다.
UNCED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6월 8일 출국했다. 리오데자네이로는 지구상으로 우리와는 정반대에 있는 셈이다. 시차가 12시간이란 점이 이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단은 정원식(鄭元植) 국무총리를 수석으로 나를 포함하여 15명의 정부대표와 12명의 자문관으로 구성되었다. 6월 3일부터 14일까지가 회기였으며 우리 환경처에서는 김형철(金亨徹) 기획관리실장과 노부호(盧富鎬) 지구환경과장이 다른 부처의 직원들과 함께 실무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이미 5월 말일에 출국하였다.
엄청나게 규모가 큰 회의였다. 183개국이 참가했으며 정상급만도 115명이 참석하였다. 약 2만 명이 참석하였으며 세계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회의로 기록되었다. 20년 전인 1972년에 스톡홀름에서 UN 인간환경회의가 개최된 바 있었는데 그 후 20년 만에 열린 것이다.
한편으로는 7천여의 비정부단체(NGO)에서 약 1만 7천여 명이 참석하여 별도의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52명의 NGO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들의 행사장은 ‘프래밍’공원 내에 있었으며 UNCED 회의장인 센트로에서는 50Km에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회의장으로 가기 전에 우리나라 캠프를 찾아서 격려하였다. 박영숙(朴英淑) 민주당 최고의원, 최열(崔冽) 공해추방운동연합의장, 김정욱(金丁勗) 서울대 환경대학원교수 등과 담소하기도 하였다.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건만 정부에서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는 불평은 여전하였다.
우리 일행이 투숙하고 있던 코파카파나 해안의 Rio Atlantica 호텔로부터 회의장까지는 40Km가 넘는 거리였다. 수일 동안을 매일 정(鄭)총리와 함께 묵고 있던 호텔에서 회의장에 가곤 했다.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브라질의 인구가 1억 5천만인데 생산분야에서 일하는 인구가 5천만이고 나머지 1억은 어느 의미에서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설명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회의장에서는 각국 대표들의 연설이 계속되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사람은 쿠바의 Castro 대통령이었다. 공산주의 위협도 없어졌고 냉전의 위협도 사라졌으며 오직 환경오염(環境汚染)의 위협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여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끝까지 자리에 앉아서 다른 대표의 연설을 경청하는 자세도 높이 평가받았다.
미국의 Bush 대통령은 사람이 지구를 괴롭히면 지구가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고 하는 중국의 속담을 소개하면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환경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지만 별로 인기는 끌지 못한 편이었다. 우간다의 목재는 우간다 것인데 왜 다른 나라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코미디조로 연설한 우간다 대통령도 특이한 존재였다. 어느 나라고 자기 나라의 자랑을 아끼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의 대통령도 자기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정(鄭)총리는 6월 13일 정상회의에서 행한 기조연설을 통하여 6월 5일 우리나라에서 선포된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선언(國家宣言) 등 환경보전 시책에 관한 설명을 하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특수상황을 고려한 지구환경보전대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DMZ 내 남북공동의 생태계조사(生態界調査)를 제의하였다.
나는 이보다 앞서 6월 11일 본회의에서 대표연설을 통하여 지구환경보전의 동참의지를 천명하고 동북아 환경협의체(東北亞 環境協議体) 구성에 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는 한편 지구 환경보전을 위한 책임과 부담의 공평한 배분 등 지구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6개 사항을 제시하였다.
UNCED 회의에서는 본회의와 더불어 전체위원회와 8개의 Contact Group로 진행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관계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다대(多大)한 성과를 올렸다. 특히 기술 이전분야에 있어서는 선(先) · 후진국(後進國) 사이의 중도타협안(中道妥協案)을 제안하여 관철시켰다. 즉 공공보유기술에 있어서는 특혜적 이전과 상업 베이스 이전을 마련했고 민간기술에 있어서는 강제실시권(强制實施權)(Compulsory Licensing)에 의한 첨단기술의 이전촉진방안을 확보하였다.
이 외에도 화석연료(化石燃料)의 사용규제나 공해상(公海上)의 어로문제에 있어서도 돌파구를 마련하였고, 환경을 이유로 한 무역장벽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Rio선언에 삽입토록 하였다.
또한, 해양자원분야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즉 캐나다,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 등 소위 연안국의 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공해상 어업의 자유를 규정한 일반 해양법 적용원칙을 삽입하는데 성공하여 당장의 피해는 피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환경과 무역의 문제에 있어서도 장벽화 금지조항을 Rio선언에 삽입토록 하였다. 환경이 무역규제(貿易規制)의 수단으로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대표들은 중도타협안(中道妥協案)을 제시하고 인정을 받은 셈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시에 초래될 수 있는 산업피해에 대하여 당분간 유예기간을 둘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부의장국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환경외교사상 고무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Rio회의에서는 Rio선언(Rio Declaration), 의제21(議題21)(Agenda 21), 산림원칙이 채택되었고 두 개의 협약이 처리되었다. Rio선언은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 ESSD)을 기본 정신으로 하여 지구환경보전(地球環境保全)을 위한 권리와 의무 등 27개 원칙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말하자면 지구환경보전의 헌법과 같은 것이다.
Rio선언을 실천하기 위하여 38개 분야에서 계획을 세운 것이 의제21이다.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 방지와 생물다양성(生物多樣性) 보전을 위해서는 산림보전이 요구되는데 이에 관한 원칙이 산림원칙(山林原則)이다. 이 원칙이 채택되기까지는 여러 곡절이 있었는데 특히 미국과의 타협이 필요하였으며, 본회의가 끝날 무렵에 겨우 타결되었다. ‘convention’이라는 단어 대신 ‘arrangement’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 타결점이었다. 엄격한 규제를 다소 푼 셈이다. 산림이 이산화탄소(二酸化炭素)를 흡수하는 작용을 하는 까닭에 산림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었다.
기후변화방지협약(氣候變化防止協約)과 생물다양성보전협약(生物多樣性保全協約)은 준비회의에서 마련된 초안을 각국대표들이 서명함으로써 처리되었다. 전자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규제함으로써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자는 것이 근간인데 나라마다 이견이 커서 애당초에는 2000년을 시한으로 정했다가 ‘될 수 있는 한 빨리’라고 표현토록 하여 타협이 이루어졌다. 후자는 개도국 특히 열대산림(熱帶山林)을 가지고 있는 나라와 선진국, 특히 미국 사이에서 견해 차이가 컸다. 즉 개도국에 있는 유전자(遺傳子)를 이용하는 유전공학(遺傳工學)(genetechnology)이 중심이 되는데 유전자를 이용하는 데서 얻어지는 이익과 유전공학의 기술을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 개도국의 강력한 주장이었다. 이것은 산림보호 원칙과도 연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