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달(金仁達) 선생_1 (142회)

인생을 걸어오는 동안 많은 선배를 모셨지만 나의 생애 중 가장 오랜 기간을 함께 지냈고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 김인달(金仁達) 선배이다.

오늘의 내가 있게 된 바탕은 김(金)선배가 마련해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金)선배와 나와의 관계는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예방의학 교실에 입국한 1947년부터 시작된다.

해방 후 옛 경성제대(京城帝大)는 경성대학(京城大學)으로 불리었다. 의학부의 예방의학교실은 최희영(崔羲楹) 교수, 김인달(金仁達) 조수, 박윤덕(朴潤德) 조수 진용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김(金)선배는 일제 시 피부비뇨기과에서, 박(朴)선배는 소아과에서 근무하다가 뜻한 바 있어 예방의학 교실로 자리를 옮긴 분들이다.

한편, 구 경성의전 위생학 교실은 심상황(沈相煌) 교수가 이끌고 있었다. 심(沈)교수는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4년 간 의복 위생학(衣服衛生學)을 전공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연세대학 교수를 겸직하면서 연세의대 위생학 교실을 창설한 분이다.

많은 곡절 끝에 1946년 11월에 국립(國立) 서울대학교가 출범하였고 구 경성대학 의학부와 구 경성의전이 통합되었다. 다음 해에 예방의학 교실은 ‘예방의학ㆍ위생학’ 교실로 호칭되었다. 그리고 예방의학 분야는 최희영(崔羲楹) 교수, 김인달(金仁達) 강사, 박윤덕(朴潤德) 조교가 담당하였는데, 이 해에 나는 동기생인 차상임(車相壬)군과 함께 무급조교(無給助敎)로 입국(入局)하였다. 차(車)군은 최(崔)교수와 남매지간이었다. 위생학 분야는 심상황(沈相煌) 교수, 현규환(玄圭煥) 강사, 김응남(金應南) 조교가 담당하였다.

다음 해인 48년에 최(崔)교수가 일신상의 이유로 교수직을 물러났고, 나는 수의학부 전임강사로 전출됐다. 이 해에 교실의 명칭은 예방의학 교실로 개칭되었고 교수진영도 일원화되었다. 즉, 심상황(沈相煌) 교수, 김인달(金仁達) 조교수, 김응남(金應南), 조규상(曺圭常), 이호영(李鎬永), 박재빈(朴在彬) 조교로 구성되었다.

나는 수의학부에서 근무하던 중에 6ㆍ25 동란을 맞았고 1ㆍ4 후퇴 때에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얼마 후에 미 제 9군단 민사처병원장(民事處病院長)으로 임명되어 3년간 복무하다가 미네소타 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56년 12월에 대우조교수(待遇助敎授)의 자격으로 모교 예방의학 교실로 복귀했다. 이런 과정에서도 김(金)선배와의 관계는 끊임없이 유지되었지만, 정식으로 교실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김(金)선배와의 관계가 두텁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당시 교실에서는 차철환(車喆煥) 조교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무급 조교시절에 최(崔)교수는 한국인의 정상치(正常値)를 연구과제로 하였고 이것을 세분해서 여러 분야에 걸친 정상치를 산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최(崔)교수는 자리를 물러나게 되었으며, 이 일은 김(金)선배에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김(金)선배는 ‘한국인 체위에 관한 연구’에 전력을 쏟으셨으며 그 결과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것이 학위논문이기도 했다.

김(金)선배는 나에게 ‘한국인 혈액의 정상치에 관한 연구’를 테마로 주셨다. 전 교실원 뿐만 아니라 일부 학생까지도 동원되어 알찬 연구가 계속되었다. 이것이 나의 학위논문이 되었으며, 60년 3월에는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博士學位)를 취득했다. 이렇게 빨리 학위 취득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김(金)선배의 덕분이며 나는 언제나 김(金)선배에게 존경과 감사를 하고 있다.

▲ 서울대 정년퇴임식에서 김인달 선생에게 감사장을 올리고 있다(1980. 8.30.)

김(金)선배는 나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만큼 나는 김(金)선배를 모시는 데 정성(精誠)을 다했다. 김(金)선배께서 예방의학 교실을 이끌어 가시는 동안 교실은 많은 발전을 하였다. 많은 수의 연구원들이 연구에 참여했는가 하면, 김(金)선배 지도로 학위를 취득한 인사가 수십 명에 이르렀다. 오늘날 김(金)선배를 흠모(欽慕)하는 제자들이 많은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대외적인 활동도 대단했다. 보사부장관이던 정희섭(鄭熙燮) 장관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보사부의 간부직원과 교실원 사이의 간담회도 수없이 가졌다. 예방의학이나 보건학의 이론(理論)과 실제(實際)를 손수 교육시키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김(金)선배는 다재다능한 분이었다. 의과대학의 ‘메디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시기도 하였다. 그의 음악 실력은 대단했으며 고전(古典)과 현대음악(現代音樂)에 다 같이 자질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애주가이기도 하셨다. 거의 매일 밤 약주를 즐기셨으며 세계의 술병 수집은 유명하다. 술친구로서 대표적인 분들로는 한심석(韓沈錫) 총장, 박진영(朴鎭泳) 교수, 남기용(南基鏞) 교수 등을 들 수 있으며 학외 인사로는 5ㆍ16후 초대 보사부 장관을 지낸 장덕승(張德昇) 장군을 들 수 있다. 이 분들은 계기(契機)만 있으면 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그 때마다 나도 한몫 끼여서 심부름을 해 올리곤 하였다. 이 세상의 어느 분들보다도 가까운 처지인데도 거나하게 주기(酒氣)가 돈 후에는 한바탕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고집이 센 분들이어서 조금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쁘다고 자리를 뜨는 선배도 있다. 이럴 때 쫓아가서 백배사죄하며 다시 모시고 오는 것이 나의 임무(任務)였다. 선배들의 모임을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김(金)선배는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좌석이 마련되기만 하면 예외 없이 경창대회가 시작되었다. 레퍼토리도 많았으며,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사람을 도와주는 데도 대단한 기술이 있었다. 노래 없는 교실원 모임은 생각할 수가 없는 정도였다.

김(金)선배는 1961년부터 72년까지 10년 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장직을 맡으셨는데 이 기간 중 많은 공적을 쌓았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보건대학원의 독립건물(獨立建物)을 신축한 사실이다. ‘China Medical Board'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동안에 김(金)선배가 겪은 노고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61년에서 66년까지 김(金)선배 밑에서 교무과장(敎務課長)으로 일했다. 그러니 김(金)선배와 나는 예방의학 교실에서나 보건대학원에서 언제나 한 솥의 밥을 먹은 것이다.

김(金)선배는 박사 학위 취득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교수 중의 한 분이다. 생리학의 남기용(南基鏞) 교수와 더불어 쌍벽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후배지도에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