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金相浹) 총리 (148회)

김상협(金相浹) 총리와 알게 된 것은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인데 직접 감화를 받게 된 것은 김(金)총리가 고려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실 무렵부터였다. 1970년부터 82년 6월 말까지 10여 년간 총장직에 계셨는데 일주일에 한번 정도 구 혜화동 고려대병원에 나오셔서 직접 집무를 하시기도 하였다.

나는 70년 4월부터 76년 4월까지 서울의대 학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간혹 고대병원으로 김(金)총장을 예방하곤 하였다. 특별한 목적이나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저 인사차 찾아뵙곤 하였다. 뵙게 되면 언제나 명랑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환영해 주셨다. 그래서 아무런 정신적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된다.

두툼한 경리 장부를 앞에 놓고 열심히 검토하고 계신 김(金)총장의 모습이 거룩하기만 했다. 총장으로서는 보기 드문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통해서 행정가로서 김(金)총장이 두각을 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부러운 심정이 앞서기도 하였다.

김(金)총리가 명문 집안에 태어나서 훌륭한 학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경복고(景福高)를 4년 수료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구제 야마구치(山口)고등학교를 거쳐 42년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일시 방적계에서 일하신 시절이 있었지만 46년부터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을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60년에는 제15차 UN총회 대한민국대표로 참석하였고, 62년에는 문교부장관에 취임하셨다. 그 후 오랫동안의 총장직을 거쳐 82년에는 국무총리가 되셨고, 85년 8월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직을 맡아 2기에 걸쳐 6년 간 봉사하셨다.

학자로서의 김(金)총장, 행정가로서의 김(金)총리, 사회복지가로서의 김(金)총재가 만인의 선망과 존경을 한 몸에 지니고 계신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김(金)총리가 ‘막힌 곳은 뚫고 나가겠다’고 하신 행정철학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다. 82년부터 고려대학교 명예총장으로 계신 김(金)총리는 학자로서의 풍모가 더욱 빛나시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기질인 ‘지성과 야성’을 함양하고 자랑하는데 김(金)총장께서는 언제나 앞장서 오셨다. 많은 저서 중에서 ‘모택동 사상(毛澤東思想)’ 과 ‘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은 특히 유명하다.

김(金)총리의 원만한 성격에 대해서는 정평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치밀성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르는 것은 반드시 규명하고야 마는 그의 집념을 나는 높이 평가한다. 김(金)총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김(金)총리의 좋은 면을 수없이 보아왔다.

▲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재단 설립총회에서 김상협 전 총리와 (1994. 12. 30.)

김(金)총리에게는 남을 편안하게 해주시는 성품이 특이하다고 할 정도로 가득 차 있다. 범인으로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세인들은 잘 알고 있다. 어느 모로 보거나 김(金)총리는 소탈하기만 하다. 많은 제자들이 그를 흠모하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소탈하고 그리고 학리적으로 규명할 것은 규명하는 것이니 제자들이 존경의 마음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성북동(城北洞)에서 살다가 89년에 아파트로 이사 왔다. 성북동에서 살 때에는 간혹 ‘스카이 웨이’ 골프 연습장에 가기도 하였다. 갈 때마다 김(金)총리 내외분을 뵙게 된다. 김(金)총리께서는 건강법이라고 하시면서 아침마다 땀을 흘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예찬하신다.

47년에 사모님 김인숙(金仁淑) 여사와 결혼하셨는데, 이 내외분이야말로 원앙과 같다. 상부상조하시면서 세상을 살아오신 두 분이야말로 우리나라 부부상의 대표임에 틀림없다. 두 분은 함께 해외여행을 하시는 것을 즐기신다. 사모님께서 기행을 총정리하시고 책을 출간하시기도 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신 일도 있다.

김(金)총리께서는 대한적십자자(大韓赤十字社) 총재직을 두 번 지내셨다. 연임하실 무렵에 나는 보사부장관직에 있었다. 이 훌륭한 분을 더 모시는 것이 좋겠다고 믿고 미력하나마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하였다. 김(金)총재께서는 이 일을 잊지 않으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씀하시곤 했다. 김(金)총리의 인간성이 단적으로 나타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훌륭한 조건을 갖추신 분이지만 내가 김(金)총리를 존경하는 것은 그러한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인간성 때문이다. 김(金)총리는 어느 의미에서 낙천가이시기도 하다. 그에게는 좌절이나 실망이 없다. 제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여유 있게 대응하신다.

그리고 모든 일을 즐겁게 처리하신다. 그렇게 되려면 상당한 수양이 필요한데 김(金)총리는 이러한 수양과정을 겪어 오신 것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면에서도 그의 인간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근래에 김상협(金相浹) 총리를 다시 한 번 조명(照明)해 보곤 한다. 40대 초에 UN총회 대표와 문교부장관, 50대 초에는 고대(高大) 총장을, 60대에는 국무총리를 역임하셨고 그 후에는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 총재직을 지내신 후 유유자적한 삶을 영위하고 계신 데 대하여는 이미 앞에서 지적하였는데, 정치적 격동기에 그가 빈번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다른 차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김(金)총리가 이런 재능은 뒤에 숨겨두고 대범(大凡)한 자세로 일을 처리하시는 데에서 매력을 끌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한마디로 김(金)총리에게는 덕이 있는 것이다. 세인(世人)들은 그의 덕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의 덕(德)이 앞에서 적은 바 있는 인간성(人間性)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 때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탐내는 것이다.

김(金)총리의 또 하나의 강점은 그가 명문 고려대(高麗大)의 존경받는 우상(偶像)이라는 사실이다. 고대(高大)하면 김(金)총리를 연상하게 되는데 이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지성인(知性人)들은 잘 알고 있다. 물론 김(金)총리는 총리로 전출되시기 전까지 오랫동안 고대(高大) 총장직을 맡아보셨다. 총장직을 장기간 맡았다고 해서 우상(偶像)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김(金)총리는 짧은 기간 동안 총장직에 계셨다 해도 존경받는 우상으로 받들어졌을 것이다. 이것이 김(金)총리의 매력이며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김(金)총리의 ‘무언(無言)의 설득력(說得力)’은 대단한 위력을 보인다. 김(金)총리가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