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敎授)와 학생(學生)_3 (172회)
  제20장 수상(隨想)1

한국교수(韓國敎授)는 행복하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 유학했을 때다. 그러니까 거의 40년 전의 일이다. 난생 처음 외국에 와있는 처지라서 모든 것이 새롭고 마음이 쉽사리 안정되지 않았다. 학교당국은 용서 없이 스케줄대로 학업을 진행시킨다. 풍습의 차이, 언어의 장애 등은 고사하고 시험 때가 되니 조마조마하게 된다. 잘못 걸리면 창피한 꼴이 되고 잘된다고 해도 별로 자랑스러울 것이 못되니 이렇듯 다급해지고 조마조마 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그 중에서도 곤란한 것이 출제의 경향이다.

막상 시험시간이 되어 문제를 보니 공부해 온 것과는 각도가 다르다. 내 딴에는 상당히 준비했다고 자부하였는데 웬걸 대부분이 예상 밖의 문제들이다. 성적이 발표되었다. 간신히 낙제점은 면했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항상 같이 공부하고 토의하고 기숙사에서도 옆방에 있던 중국인의 성적이 뛰어나게 좋은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실망은 컸다. 그런데 그 중국 유학생의 성적이 뛰어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수 여비서에게 교섭해서 10년 내의 문제집을 얻어 보았다는 것이다. “시험 전에 알려주지 자네 혼자만 그럴 수 있느냐”고 했더니 “생존경쟁인데 무슨 잔소리냐”고 그 중국 유학생은 태연하게 대꾸한다.

그 후 나도 그 중국 유학생의 비결을 실행해 보았다. 나의 성적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발군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는 미국대학의 시험이지만 이렇듯 허술한 구멍이 있으니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 없나보다.

그렇지만 미국대학의 시험이 엄격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학생들은 ‘교수란 시험 때나 권위가 있는 직업’이라고 서슴지 않고 규정한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규정은 보편적인지도 모른다. 동양의 도덕이나 윤리를 중심으로 하는 교수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 1979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공적상을 수상 했을 때

1964년 2월 스웨덴을 여행했을 때의 이야기. 만나는 상대란 직업이 직업인지라 대체로 교수에 국한된다.

어느 교수는 스웨덴의 학생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너무나 안정되어 있는 까닭에 의욕을 잃고 있다는 것이 어느 교수의 견해다. 젊음의 발산구가 없는 까닭에 여학생이 남학생같이 보이려 하고 남학생이 여학생 같은 외모를 풍긴다. 그래서 남녀의 구별이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스웨덴뿐만이 아니라 구미의 여러 나라에서도 매한가지다.

노교수는 해결책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교수의 말을 듣지 않는 학생에게는 종교가 유일한 해결의 수단이라는 것, 그러나 이 종교마저 형식적이니 문제는 심각하다고 한탄한다. 그리고는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에서 오히려 의욕이 생기고 노력이 존중된다고 주장하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한국이 부럽다는 농담 아닌 결론을 내린다.

그가 끝으로 남긴 말은 지금도 귀언저리에 생생하다. ‘50년 후에는 한국이 스웨덴보다 앞설 것입니다.’

영국을 여행할 때에는 그야말로 교수의 권위를 실감했다.

명색이 교수인지라 나에게는 ‘시니어 리더(우리나라의 부교수에 해당)’ 한 분이 언제고 수행했다. 머리도 나보다 더 벗어졌고 어느 모로 보거나 나보다는 경륜이 많은 인사임에 틀림없다. 반드시 경어를 쓰고 굽실굽실하는 데는 죄송한 감마저 든다. 손가방을 들어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타고 내릴 때에는 언제고 문을 열어준다. 제발 그만두라고 해도 자기 교수의 엄명이라고 막무가내다.

이렇게 3일 간 지내던 날 저녁, 교수는 자기 집에서 송별연을 열어주었다. 참으로 친절한 교수였다. 연회가 끝난 후 이 ‘시니어 리더’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차 속에서 호텔의 바에서 한잔 더 하자고 권유하였다. 교수가 알게 되면 자기입장이 어려워진다고 사양했으나 결국 승낙했다.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교수론이 시작되었다. 교수는 바보를 천재로 만들고 천재를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되풀이 주장하더니 지금 교수는 자기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며 다소 흥분조로 털어놓는다. 신세타령을 하는 것이다. 자신은 천재라고 생각하는데 교수는 바보 취급을 하니 기가 막힌다는 결론이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이름 있는 일본인 교수들과 ‘교수(敎授)와 학생(學生)’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한 일이 있다. 그들의 화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스트라이크(파업)’가 중심이다. 모두들 의학부에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도 않지만 의학부 교수들이 옛적 군주와 같은 태도를 버리지 않은 까닭에 이런 사태가 왔다고 의학분야 교수를 공격하기도 한다.

‘전학련(全學聯)’이란 좋지 못한 학생단체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단체가 있는데 도대체 그들의 목표가 분명치 않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학생은 4․19라는 위대한 목적을 달성시켰는데 이에 비하면 일본의 학생은 돼먹지 않았다고 투덜댄다. 일본의 대학교수가 갈 길이 어디냐고 비관하기도 한다. 교수와 학생간의 대화가 끊긴지 오래되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교수에 대한 권위의 인정이나 존경의 감정은 이제 되찾을 수 없다고 슬퍼한다.

교수의 말을 듣지 않는 ‘전학련(全學聯)’이란 단체가 묘한 대명사로 변했다는 농담도 털어놓는다. 양기가 부족해서 그것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전학련’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고 가가대소한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교수의 권위가 그렇게도 강하던 일본에서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니! 나는 일본 땅에 우리의 6․25와 같은 격동이 있었던들 그와 같은 현상이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모두들 수긍한다. 몇몇 교수들은 ‘한국에서 교편을 잡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고 한국의 교수를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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