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 엘리트’의 육성(育成)과 그 보존(保存)
어느 국가나 ‘엘리트’육성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엘리트’의 육성이 결국 국가의 이익이 되는 까닭이다. 육성기관으로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대학이 중추적으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데에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미국의 하버드대학,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옥스퍼드대학, 일본의 도쿄대학 등은 좋은 예이다.
이들 명문대학이 ‘엘리트’육성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터이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명문대학을 만들고자 힘쓰고 있으며, 특히 ‘엘리트’ 육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되어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엘리트’에 대하여 간혹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근래에 영재교육(英才敎育)문제가 빈번히 거론되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영재교육이란 ‘엘리트’교육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것이 마치 교육기간을 짧게 단축하면서 빨리 학위(學位)라도 얻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교육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원래 교육이란 정신과 신체의 성숙도를 균형적으로 부합시켜야 하는 것이며 이 원리에 어긋나는 교육이 훌륭한 성과를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제아무리 영재교육이나 ‘엘리트’교육이라 할지라도 이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럴 경우에는 자칫하면 비정상적인 교육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만성형(大器晩成型)의 ‘엘리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 사정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아인슈타인’박사는 세인이 잘 아는 대표적인 ‘엘리트’인데, 그가 대기만성형의 좋은 예라는 것도 식자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대학을 ‘엘리트’육성기관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대학에 대한 일반적인 투자(投資)확대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선도적(先導的)인 대학에 대하여 ‘엘리트’육성을 담당하도록 장치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 매우 긴요한 과제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보다 중점적인 투자(投資)가 필요하게 된다. 투자 없는 ‘엘리트’육성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엘리트’육성은 값비싼 과업임에 틀림없다. 그런 만큼 기존 교육기관을 활용하여 이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인 것으로 믿어진다.
대학이 ‘엘리트’육성기관으로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근거는 대학이 많은 전문분야를 망라한 인재양성(人才養成)과 연구(硏究)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야마다 ‘엘리트’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날에는 전문분야가 독자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모든 분야가 상호간에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부분(部分)도 중요하지만 전체(全體) 속의 부분을 관찰할 수 있는 안목은 더욱 중요하다. 전문분야의 ‘엘리트’가 필요하고 귀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관련분야에 대해서 무관심할 때는 전문적인 ‘엘리트’는 존재하되 사회적 종합력(社會的 綜合力)을 갖지는 못한다. 대학은 전체(全體)를 볼 수 있는 도장이다. 따라서 대학은 전체를 볼 줄 아는 전문분야의 ‘엘리트’를 육성하기에 가장 적절한 기관인 것이다.
일단 육성된 ‘엘리트’를 어떻게 보존하느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엘리트’는 지속적으로 재교육(再敎育) 내지 수련(修練)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수련이나 재교육의 상당한 부분이 대학에서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편 특수한 분야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대학 이외의 기관에서도 물론 그 역할을 담당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중앙공무원 교육원(中央公務員 敎育院), 국방 대학원(國防 大學院), 외교안보연구원(外交安保硏究院) 등은 그 좋은 예이다. 국가에 따라서는 ‘엘리트’의 보존을 위하여 특수한 기관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이와 같은 독자적인 기관이 대학과 어떠한 형태로든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이러한 기관과 대학과의 공동노력 없이 ‘엘리트’보존의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이론과 실제는 사물(事物)의 표리(表裏)와도 같다. 대학이 이론을 중심으로 한다면 위에서 들었던 기관들은 실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양자는 언제나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의 상호협조는 절대적인 요건으로 되는 것이다.
훨씬 전의 일이지만 필리핀의 과학기술처장관이 내한하여 나와도 두어 차례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이 장관은 필리핀 대학의 과학분야담당 책임자직을 겸임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처가 필요로 하는 ‘엘리트’의 양성은 대학에 맡기고 양성된 ‘엘리트’를 과학기술처가 활용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의견이다. 이들 ‘엘리트’의 보존은 대학(大學)과 과학기술처(科學技術處)가 다 같이 책임진다는 이야기이다.
④ 집단(集團) 내에서의 ‘엘리트’의 자세
‘엘리트’가 집단을 지배(支配)한다는 것이 결코 이론상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지배라는 표현은 다분히 강제적 수단을 내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즉 집단을 지도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무방하다.
집단을 지도하고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 전제적인 요건은 존경심(尊敬心)이다. 즉 집단의 구성원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사라야 소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엘리트’는 또 다른 차원에서 지도자를 말하는 것인데 존경받지 못하는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指導者)의 구실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성(知性)을 도외시한 ‘엘리트’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지성은 위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엘리트’란 용어가 지성의 대명사같이 사용되는 것을 세인들은 숙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성이 만능은 아니다. 지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지성(知性)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덕성(德性)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품성(品性)이 덕성이다. 덕성이 결여되어 있는 인간이 인격자(人格者)일 수는 없다. ‘엘리트’는 지성과 덕성을 겸비하고 있는 인사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엘리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며 여기에는 천부의 자질과 후천적인 노력의 축적이 전제조건으로 되는 것이다.
어쨌든 지성(知性)과 덕성(德性)을 겸비했을 때에 존경을 받게 된다. 집단 내에서의 ‘엘리트’의 자세는 한마디로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언동을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되풀이하여 지적하지만 집단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작게는 전문적인 소집단이 있는가 하면 크게는 국가(國家)와 같은 대집단도 있다.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그 속에서 활동하는 '엘리트‘의 종류도 많게 된다.
많은 분야의 ‘엘리트’가 얼마나 조화(調和)를 이루느냐에 따라서 집단의 운명이 달라진다.
집단속에 여러 전문분야가 있고 전문분야마다 ‘엘리트’가 있게 마련이다. 이들 ‘엘리트’가 조화를 이룰 때에 그 집단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후퇴와 혼란이 있게 마련이다. 집단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능하고 존경받는 ‘엘리트’가 있어야 하고 이들 ‘엘리트’가 상호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각 분야의 ‘엘리트’가 상호 협조한다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현실적으로 ‘엘리트’중에는 아집(我執)만을 내세우고 일체 다른 ‘엘리트’와의 협력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 차제가 문제를 안게 된다.
모든 경우에 특정한 ‘엘리트’의 독점(獨占)은 문제점을 내포한다. 집단이 크면은 클수록 더욱 그러하다. 상호간에 협조하고 보완하는 경우에는 공동책임(共同責任)을 느끼게 된다. 집단 내에서의 ‘엘리트’의 자세는 한마디로 존경과 협력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명언 즉, “for the people, of the people, by the people"은 언제나 값진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을 위하고 국민의 것이라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民主主義 原理)는 불변의 지도 원리이며 ‘엘리트’들이 항상 지녀야 할 이념이다. 동시에 ‘엘리트’의 자세도 이러한 원리에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 그런데 by the people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시 음미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민주주의적이고 함축성 있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by the people은 실천적으로는 국민을 배경으로 한 ‘엘리트’에 의한 정치라는 뜻이 될 것이다. 즉 by the people의 핵심은 역시 ‘엘리트’인 것이다. ‘엘리트’에 의해서 모든 국가사업이 추진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엘리트’가 얼마나 국민의 공감을 얻느냐에 있는 것이다. ‘엘리트’가 지녀야 할 자세는 국민을 의식한 이러한 공감대(共感帶)의 형성 그 기초가 두어져야 할 것이다.
‘엘리트’는 여론(輿論)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여론에 대해서 신중한 일면을 지녀야 할 것이다. 여론에 따르는 것은 민주적인 것 같지만 무책임한 여론이 상당한 위세를 부리는 사례가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경험하고 있다. ‘엘리트’는 여론을 존중하되 여론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라야 한다. 더 나아가서 여론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집단의 여론에 귀를 기울일 아량이 있어야 하지만 집단의 여론을 옳게 형성시켜야 하는 것이 또한 ‘엘리트’의 과제인 동시에 자세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