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회혼은 대단히 드물다. 자손에 하자(瑕疵)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건의 하나이다. 우리와 같이 10남매의 경우에는 대단히 힘든 것이 사실인데, 이 귀한 회혼의 예식을 올리게 된 것이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그 후 21년 동안 나는 회혼에 참석해본 일이 없다가, 1990년 2월 25일에 김중화 박사의 회혼례가 하이야트 호텔에서 개최되어 참석한 일이 있다. 중학교 이래 나의 절친한 사이였던 김정근 박사의 큰 자형이시며 평소 존경하는 의학계의 대선배여서 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축사도 올렸다. 이때 선친의 회혼에 관해서도 언급을 하였다. 이제까지 나는 두 번의 회혼례에 참석한 경험이 없었으나, 그만큼 축하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선친께서는 1980년 3월 20일에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당시 나는 서울대학교 병원장이었다. 수일간 입원치료를 받으셨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25일 밤에 성북동 집으로 모셨다. 그날 자정을 넘기자 운명하셨다. 자정을 넘기기 위해 젊은 의사들이 열심히 인공호흡을 하던 일이 생각난다. 고향으로 모셨는데 김포읍에서는 군민장을 치렀다. 경찰에서는 조포를 울렸고 구택 옆에 마련한 묘지로 모시는 동안 진성중‧고교에서는 학교장을 치렀고 곳곳에서 노제를 지냈다. 94년은 선친께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고사(古事)에 관하여 즐겨 설명해주시던 선고의 말씀이 지금도 귀 언저리에 들리는 것 같고 인자하신 모친이 지금도 옆에서 도와주시는 것만 같다. 남강(南崗)공께서는 7세에 선고의 상을 당했는데, 어른과 같이 치애(致哀) 하시고 집례(執禮)하셨으며 모부인을 효도를 다하여 봉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51세 때에 모부인이 돌아가시자 3년 간 여묘(廬墓)를 지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효성은 오늘날도 우리 문중의 자랑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비하면 나의 효성은 참으로 미미했다. 사후는 차치하고라도 생전에 조금만 더 효도를 했었더라면 하고 뉘우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친 이명의 여사는 전주 이 씨이며 경기도 연천 출신이다. 선친보다 2세 연하이며 2년 후에 선친의 뜻을 따르셨다. 현모양처를 말한다면 모친 이상의 안 계셨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생애 중 한 번도 불평하시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누구에게도 화를 내시는 일도 없었다. 학교 교육은 받지 못하셨지만 독서를 하시거나 편지를 쓰시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던 분이셨다. 어머니의 부덕은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많은 분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어머니의 어진 마음과 깊은 사려에 대해서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며 지금도 한 없이 그리워진다. 어머니께서는 1982년 11월 2일, 역시 87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우리 10남매는 큰 누님 ‘이남’, 둘째 누님 ‘이운’, 큰 형 ‘이범’, 둘째 형 ‘이강’, 셋째 누님 ‘이연’, 나, 첫째 동생 ‘이웅’, 둘째 동생 ‘이완’, 누이동생 ‘이충’, 셋째 동생 ‘이빈’이다. 큰 형만이 고향을 지키고 계신데 금래에는 김포군 교육장을 지낸 둘째 동생도 고향에 정착하여 집 안 일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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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형제들/앞줄 왼쪽부터 여섯째, 다섯째, 넷째, 나. 됫줄 왼쪽부터 막내누이동생, 큰누님, 둘째형님, 큰형님, 둘째형님, 셋째누님(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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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형은 가업인 농사일을 보시고 둘째 형 이강과 둘째 동생 이완은 교사출신으로 두 살마 다 같이 김포군 교육장을 역임하여 고향에서는 교육 선구자로 숭앙받고 있다. 이웅은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실업가로 변신하였고 이빈은 오래 전부터 운수업을 경영하고 있다. 매형 네 분은 모두 작고하셨다. 큰 자형은 의사였는데 나에게 의학의 길을 택하도록 권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나는 1남 3녀를 두고 있다. 첫째 딸인 인택은 서울 의대 소화기내과 의사인 윤용범 박사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그들의 장남인 윤원재는 서울대 의예과에 재학 중이다. 원재는 부티 윤 박사와 함께 흰 가운을 입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다. 아들인 윤택은 서울 의대를 졸업하고 해군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도미하여 알레르기 및 면역학 전문의가 되어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의사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 소생은 없다. 둘째 딸인 서울 의대 순환기내과 부교수인 이명묵 박사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기문은 뉴욕 뉴햄프셔 주에 소재하고 있는 킴볼 유니온 아카데미에 수학 중이다. 셋째 딸인 송택은 인하대학교 공대 부교수인 안화승 박사와의 사이에 2녀를 두고 있으며 한양 대학교 음악대학 조교수로 음악학(musicology)를 교수하고 있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모든 가족이 우리 집에 모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모임은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다. 때로는 야외로 나가서 대자연과 호흡을 같이 하기도 한다. 근래에는 자동차 홍수 때문에 야외로 나가는 일은 단념하고 잘 아는 식당에 가서 회식하는 일이 많다. 한편으로는 고향을 찾아가는 빈도가 늘었다. 그럴 때마다 외국에 나가 있는 가족 생각이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