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학(生理學)교실의 구두시험장에 역시 다섯 명의 학생이 말없이 앉아 있다. 엄숙한 얼굴의 W교수가 묻기 시작한다.
일본인인 S군의 차례다. 질문이 여러 가지였지만 하나도 시원한 대답을 못한다. 교수의 얼굴이 긴장했다.
1분간의 호흡횟수가 얼마냐고 물었다. 60회라고 답한다. 화가 치민 W교수는 그러나 낮은 목소리로 한번 숨을 쉬어 보라고 명령한다.
상기한 S군은 붉은 얼굴로 열심히 숨을 쉰다. 1분간에 60회이니 더욱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물론 보기 좋게 '뷔콤(재시험(再試驗))'이다. 이 일본인 학생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W교수는 가끔 기문(奇問)을 던지기도 한다. 사람의 눈에는 렌즈가 하나뿐인데 영상이 거꾸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따위다. 어느 학생이고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궤변(詭辯)을 늘어놓는다. 교수는 묵묵히 듣고 있다. 머리를 끄덕이며 학생의 궤변(詭辯)이나 기변(奇辨)을 들어준다.
이런 궤변에 대해서는 양념으로 생각하는 탓인지 아무런 코멘트도 붙이려 하지 않는 것이 이 교수의 태도이다.
다섯 학생의 성의 있는(?) 대답을 다 들은 다음에 왈 "사람이니까 그렇다." 정답은 이와 같이 극히 간단하다. 인간의 신비성(神秘性)을 다시 한 번 맛보게 된다.
생리학(生理學)의 O교수는 수십 장의 카드에 문제를 적어놓고 테이블 위에 엎어놓은 다음 학생의 입실(入室)을 기다린다.
입장한 학생은 자기 마음대로 카드를 집는다. 학생의 답이 빗나갈수록 공부 많이 해왔다고 칭찬을 한다. 당사자인 학생은 정말 그런 줄 알고 더욱 사족(蛇足)을 붙인다. 듣다 못한 교수 얼굴에 노기(怒氣)가 비치며 대갈(大喝)한다. "집어치워! 다시 와!"그야말로 비행기 탔다가 떨어지는 격이다.
학생 중에는 동료애(同僚愛)가 무던한 자(者)도 있었다. 나중 조(組)의 동료를 위해 머리를 쓴다. 손가락 끝에 잉크를 묻혀 두었다가 '카드'를 뽑을 적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퇴실(退室) 후 마음에 맞는 동료에게 자랑스럽게 이 비밀을 전해준다. 표가 찍혀있는 카드에 적혀있는 문제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 학생, 의기양양하게 입실한다. 그러나 아뿔싸 표식(表識)이 붙어있는 '카드'가 한 장이 아니다. 결과는 뻔하다. 집중적인 공부가 수포(水泡)로 돌아간 것이다.
기생충학의 K교수는 가장 학자풍(學者風)의 노신사이다. 모든 학생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교수께서는 언제나 연구와 교육의 정화(精華)같은 것을 느낀다. 그런데 이 교수에게도 괴벽(怪癖)은 있었다.
여름철의 어느 날, 찌는 듯이 더운 날이지만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강의(講義)와 수강(受講)에 여념이 없다. 강의 때마다 흰 가운을 입고 나타나는 이 교수에서 아무런 이상(異常)도 발견하지 못했다. 교탁(敎卓)으로 가려지는 까닭에 강의실(講義室)에 들어오는 장면을 일부러 지켜보지 않고서는 이날따라 무슨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한참 강의를 하던 이 교수, 별안간 말이 끊어진다. 모기가 팔을 문 것이다. 근육을 긴장시켜 모기가 날지 못하게 한 후 다른 손으로 안경을 조정하더니 한참동안 모기를 응시한다. 그러는 동안에 다리 하나가 자동적으로 교탁(敎卓)대 위에 놓여진다. 모든 학생이 응시하는 속에서 별안간 모든 학생이 웃음을 터뜨린다. 이 선생님은 바지를 입지 않고 있는 것이다. 팬티 위에 가운을 걸치고 있을 뿐이다.
학생의 웃음엔 아랑곳없이 이 모기의 학명(學名)을 말하고 생태(生態)를 설명한다. 모기에 관한 얘기가 끝난 다음에는 중단되었던 강의가 계속된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의 서울의대 '캠퍼스'는 숲에 싸여 있었다. 함춘원(含春苑)에는 고목이 울창했고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대낮에도 태양을 볼 수 없다는 표현을 빌릴 만했다. 여러 종류의 새가 자연을 구가(謳歌)해 주었고 학생들은 자연의 영감(靈感)에 사로잡히기 마련이었다. 그런 반면에 모기의 공세(攻勢)가 심했는데 지금도 조그마한 흑백색 모기 때문에 골탕 먹었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이놈의 모기는 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무는 습성이 있었으며 무례하게도 이 순박한 노(老) 교수를 그것도 강의 도중에 괴롭힌 것이 당시의 기풍이고 보면 이 위대한 강의를 중단시킨 소구(小軀)의 모기가 괘씸하기는 했지만 점잖은 선생의 기벽(奇癖)을 공개해준 그 고약한 모기가 지금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데 대해서는 나무랄 생각이 없다.
이상은 일제시대 몇몇 교수들의 기행(奇行)이나 괴벽 중 몇 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 것이다. 학생의 눈에 비치는 교수의 모습에는 일반인의 경우와는 판이한 것이 많다. 어린이같이 느껴질 때도 있고 괴물같이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러나 교수들의 기행이나 괴벽이 애교로 받아들여졌던 것만은 분명하다.
·N교수(생 화 학):나카무라(中村 拓ㆍ나카무라 타쿠)
·I 교수(해 부 학):이마무라(今村 豊ㆍ이마무라 유타카)
·W교수(생 리 학):와고(和合 卯太郞ㆍ와고 우타로)
·O교수(생 리 학):오츠카(大塚 藤吉ㆍ오츠카 토우키치)
·K교수(기생충학):코바야시(小林 晴治郞ㆍ코바야시 하루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