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3월에 당시 미군정청 문교부 차장이던 오천석(吳天錫) 박사가 종합대학 설립 계획에 착수하였다. 경성대학(京城大學)을 모체로 하여 서울시내와 근교에 있는 전문학교를 통합해서 새로 '국립서울대학교'를 만든다는 것이 국대안(國大案)의 내용이었다.
즉 기존의 경성경제전문학교(京城經濟專門學校),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경성약학전문학교(京城藥學專門學校), 경성법학전문학교(京城法學專門學校), 경성광산전문학교(京城鑛山專門學校),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 경성공업전문학교(京城工業專門學校), 경성여자사범학교(京城女子師範學校), 수원농림전문학교(水原農林專門學校), 경성대학(京城大學)등 10개교를 '국립(國立)서울대학교(大學校)'로 흡수한다는 안이었다. 일본식의 교육편제를 미국식으로 바꾸려는 의도로 미 군정당국이 구상한 안이었다.
오(吳)차장은 상당한 기간 구상한 국대안(國大案)을 유억겸(兪億兼) 문교부장(文敎部長)에게 제의하고 찬성을 얻었으며, 군정청(軍政廳)의 미국인(美國人) 관계인사(關係人士)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오(吳)차장은 우선 일부 학교를 대상으로 하여 설득공작을 펴기로 하고, 그 첫 단계로서 경성대학의학부장(京城大學醫學部長)이었던 윤일선(尹日善) 선생과 경성의학전문학교장(京城醫學專門學校長)이었던 심호섭(沈浩燮) 선생에게 두 학교의 통합(統合)을 종용했다. 두 분 다 반대였다. 윤일선(尹日善) 선생은 최고 엘리트를 양성하는 대학의 의학부(醫學部)를 전문학교(專門學校)와 통합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고, 심호섭(沈浩燮) 선생은 전통을 자랑하는 경의전(京醫專)을 다른 학교와 합치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
|
|
| |
|
▲ 해방 후 미 군정청 문교차장으로 경성대학을 모체로 한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을 주도한 오천석 전 문교장관 |
|
|
타협을 통한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오(吳)차장은 1946년 5월 19일 일방적으로 양교의 통합을 선언(宣言)하였다. 이 선언이 있은 후 6월 19일 경성대학(京城大學) 의학부 학생은 통합을 반대하는 결의문을 발표했고, 7월 10일 경성의전(京城醫專)은 교직원 명의의 반대성명을 발표하였다. 양교의 반대에 이어 언론계에서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오(吳)차장은 국대안(國大案)을 기정사실로 추진하였다.
7월 13일, 유억겸(兪億兼) 군정청 문교부장과 피핀췰 미국인 문교부장(육군 중령)은 출입 기자단 회견에서 이 안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교육부는 각계의 이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종합대학교의 이익이 많다는 점을 밝혔다. 이러한 발표가 있자, 일부 교직원과 학생 등은 맹렬한 반대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7월 31일에는 조선교육자협회(朝鮮敎育者協會)와 전문학교 교수단 연합회가 공동으로 전국 교육자대회를 열고 국대안(國大案)의 철회를 요구하면서 의도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어서 광산전문학교, 경제전문학교, 경성사범, 경의전 등 통합대상으로 되어 있는 전문학교의 일부교수나 학생들도 합세하여 반대운동에 가담하였고, 반대 투쟁위원회 대표들은 러취(A. L. Lerch) 군정장관을 면담하여 철회를 요구하는 등 반대운동은 점점 조직화 되었다. 그러나 당국에서는 그해 8월 27일에 '국립(國立)서울대학교(大學校) 설립(設立)에 관한 법령(法令)'을 군정법령 제 102호로 공포하였다. 반대운동은 더욱 가열되었으나, 당국은 9월 6일에는 국대안 세목을 발표하고 추진을 강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안(案)이 관련학교나 사회인사(社會人士)들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며 찬반양론(贊反兩論)이 무성했지만 점차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언론도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한편, 공산당(共産黨)은 국대안(國大案)반대운동을 최대한으로 악용하여 소요를 선동하며 민중봉기의 도구로 만들려고 하였다. 원래 국대안(國大案) 반대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며 좌익운동(左翼運動)은 아니었는데 결국 공산당(共産黨)의 수법에 말려들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국대안 반대운동은 좌익운동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윤일선(尹日善) 선생도 처음에는 이 안에 반대했으며 학생들의 반대가 당연하다고 하셨다. 실제로 학생뿐만 아니라 전 교직원이 반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대안(國大案)이 군정법령(軍政法令)으로 확정 공포된 후 초대총장으로 법학박사(法學博士)인 안스테드(Harry B. Ansted)대위가 취임하고 주요 보직자들도 임명되었다. 윤일선(尹日善) 선생은 대학원장(大學院長)이 되셨고 의과대학장(醫科大學長)으로는 심호섭(沈浩燮) 경의전교장(京醫專校長)이 취임하셨다.
윤일선(尹日善) 선생은 나를 부르시더니 반대운동은 그만두라고 하셨고, 심호섭(沈浩燮) 선생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실기(失機)하지 말라고 설득하셨다. 나는 학급대표였던 박찬무(朴贊武) 형과 상의하였다. 국대안(國大案)을 열렬하게 반대하는 급우에 대한 문제가 주요과제였다. 서약서(誓約書)를 먼저 제출한 후에 등록하는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서약서에는 날인(捺印)을 해야 하는데 반대의사가 뚜렷한 급우의 인장이 문제였다. 박찬무(朴贊武) 형과 숙의한 끝에 둘이서 도장집에 부탁하여 서둘러 도장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급우(級友) 전원이 날인을 하게 되었고 탈락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었다. 등록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의외로 일은 그렇게도 반대하던 급우의 학부형(學父兄)이 제일먼저 대리등록을 한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 급우들 중에는 희생자가 한 사람도 생기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고소(苦笑)를 참지 못한다.
국대안이 확정됨에 따라 경성대의학부(京城大醫學部)와 경성의전(京城醫專)이 통합되어 국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되었다. 연건동(蓮建洞)의 대학병원은 제1부속병원이 되고 소격동(昭格洞)의 경의전병원은 제2부속병원으로 되었다. 제1부속병원장에는 명주완(明柱完)교수가, 제2부속병원장에는 윤치왕(尹致旺) 교수가 취임하였다.
두 학교가 통합함에 따라 교수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의사학(醫史學)교실이 신설되고 내과, 외과 등이 보다 세분되는 등의 개편도 있었다. 경의전에서 정일천(鄭壹千), 이종윤(李鍾倫), 기용숙(奇龍肅), 심상황(沈相煌) 선생 등 기초교수와 백인제(白麟濟), 전종휘(全鐘暉), 노병호(魯炳鎬), 김동익(金東益), 송호성(宋浩星), 강승호(姜承鎬), 임정순(任正淳), 이재복(李在馥), 오명수(吳明洙), 김자훈(金子勳), 김덕호(金德鎬), 김장성(金將星), 윤치왕(尹致旺), 윤태권(尹泰權), 김희달(金喜達), 오원석(吳元錫), 강의원(姜義遠), 이 준(李 晙), 박영돈(朴泳敦), 이병숙(李炳肅), 이동소(李東泝) 선생 등 임상교수가 새로 드러오고, 이명복(李明馥), 김 철(金 喆), 이종환(李鐘晥), 이근배(李根培), 장경(張慶) 선생이 신규로 임명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