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규(趙軫奎) 형은 해방 후에 함께 된 학우이다. 경희(慶熙)대학교의 이비인후과 교수로서 실력을 과시했을 뿐만 아니라, 경희대학교 의료원장으로서 병원행정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그로부터는 언제나 신앙정신이 발현된다. 영락교회 장로로서 숭앙을 받고 있다. 정년퇴임 후에도 계속해서 의료원장직을 맡았다. 퇴임기념식에 참석해서 나는 퇴임식이 아니라 취임식이라는 축사를 했다. 경희대학교에서 물러난 후에는 을지병원(乙支病院)에서 일하고 있다. 93년 6월 말에 박찬무(朴贊武) 형의 뒤를 이어 을지병원(乙支病院) 원장이 되었다.
송정균(宋鼎均) 형 역시 해방 후에 함께 된 학우이다. 가장 빨리 군의관생활을 시작한 학우 중의 한 사람이며, 6․25동란중과 그 후에 많은 활약을 했다. 기생충학의 대가로서 많은 전문서적을 내고 있다. 한때는 월남으로 가서 실력을 과시하기도 한 그는 정년이 될 때까지는 경희(慶熙)대학교에서 기생충학 교수생활을 했다. 정년이 된 후에도 기생충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학구파이다.
허 걸(許 杰) 형은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으로부터 함께 된 학우이다. 졸업에 이어 모교에서 산부인과학 수련을 받은 후 고향인 전남 담양(潭陽)으로 내려가서 개업을 했는데 얼마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쉬고 있다. 아까운 인재인데 건강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홍장의(洪障義) 형 역시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에서 공부하다가 함께 된 학우이다. 소아과학의 권위자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가이다. 내가 서울대병원장으로 재직하였을 때 제1부원장으로 일했다. 총장으로 취임한 후에 나의 뒤를 이어서 제3대 병원장이 되었다. 학구파인데다가 행정능력도 상당하다. 환자소개제도를 도입하기도 했고, 가정의학과를 창설하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일찍부터 장로로 올랐으며, 교회를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그러면서도 주석에는 명창으로 좌석을 흐뭇하게 하기도 한다. 서울의대에서 정년퇴임한 후에는 현대(現代) 아산재단(峨山財團) 중앙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소아과 과장으로서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과정 위원장으로서 교육에 헌신하기도 하였다.
박찬무(朴贊武) 형과 나와는 그야말로 막역한 친구이다. 근인회원 중에서 가장 교분이 두터운 학우이다. 산부인과학의 권위자로서 국립의료원 산부인과를 육성했고 원장이 된 후에는 국립의료원을 부각시키는데 절대적 역할을 하였다. 국립의료원에 이어 보건사회연구원(保健社會硏究院)으로 자리를 옮겨 6년 동안 원장직을 맡았다. 그 동안에 우리나라의 보건사회정책을 마련하는데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원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사장직을 맡아 활동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또한, 을지병원장직을 맡아 전공분야인 산부인과학의 권위자로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한편, 병원운영의 경륜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박(朴)형과 나는 학생시절부터 한솥의 밥을 먹다시피 해왔다. 학생운동도 함께 했고, 모든 면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의 가창력(歌唱力)은 대단하여 좌중을 매료시키기도 하였다. 1968년에 골프를 시작하여 구력(球歷)은 대단히 길다. 나도 함께 시작했는데 우리 두 사람은 골프이야기가 나오면 맥을 못춘다.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스코어에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1969년 10월에 대한의학협회의 기관지인 의협신보(醫協新報)가 '유쾌한 독설(毒說)'란을 마련하여 상호 만평(漫評)을 실었는데, 그 때 실린 박(朴)형에 대한 나의 평과 나에 대한 박(朴)형의 평을 소개한다.
권이혁(權彛赫) 박사를 말한다
본래 천성이 조잡하여 독설에는 약간의 소질을 인정받고 있으나 존경하여 마지않는 외우(畏友) 권(權)박사를 까라는 데는 당혹하지 않을 수 없으나, 말썽 많은 기자님의 하명이니 고수(苦受)할 수 밖에 없다. 본관은 안동(安東) 권씨, 아호는 우강(又岡)인 권이혁(權彛赫) 박사는 신체구조 특히, 안면해부학부터가 괴이한 변형(變形)인데다가 이름자가 또한 괴상 망칙하다. 본인이 풀이하듯이 구학(舊學)깨나 했다는 친구도 '떳떳할 이(彛)'자를 제대로 읽을 줄 알면 보학(譜學) 깨나 한 사람이다. 이유인 즉 통칭 양반이라는 권씨의 행렬에서나 볼 수 있지 도시 옥편을 찾기 전에는 볼 수 없는 글자인 까닭이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학자님이라 그 친구의 성품을 소개할 필요는 없고 학생시절부터 친숙하여 오장육부로부터 신체중심부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필자인지라 한두 가지 흠을 끄집어 내 보기로 한다.
권(權)박사는 필자와 마찬가지로 본시 체능에는 천부(天賦)가 업서 농구부의 일반부 선수로 투구(投球)하면 '바스켓'보다도 태(台)의 양각 사이로 들어가는게 일쑤요, 평균체조 때 양팔을 올리면 한쪽 어깨가 불가항력적으로 기울어져서 선생이 기형(畸形)의 표본으로 전시까지 하였던 부류인데, 당시 일인 학생들로부터는 호신술 깨나 하는 거물로 오인(誤認)받고 있었으니, 까닭은 일제시 연례행사로 추계교련연습을 강원도 평강(平康)에서 마치고 귀로차 중에서 생긴 춘사(椿事)가 그 동기가 되었다.
군사훈련에서 꿀릴대로 꿀린 한인 학생들이 차중에서 '봉선화' 등 한국민요를 고창(高唱)하며 울분을 소화시키고 있을 즈음, 일인 총대(總代) K가 이를 제지하자 한인 총대(總代) 권(權)이 맞서 차외 계단에서 옥신각신하다 권박(權博)이 발로 K를 찬 것이 정통으로 잘 들어가 그 녀석 하마터면 낙차압사(落車壓死)를 할 뻔 하였던 바, 그 자가 당시 유도 삼단의 용장이었던 것이다. 그 후 학생과 호출로 약간의 고난을 겪었으나 일인 K군은 그 후로는 권박(權博) 앞에서 영 기세가 오르지 않았다.
신체기능은 그쯤 해두고 예능을 살펴 보면 딴에는 예과시절에는 '만돌린'부에 가입 했다가 소질을 무시당하여 자퇴한 일화는 성심병원 임광세(林光世) 박사가 잘 알고 있고, 대학시절에는 음성(音聲)에 '가락'이 없다하여 창경원 숲속에서 점심시간에 김종설(金鐘卨) 박사로부터 친히 교수받았다는 '황성옛터'가 작금까지도 노래자랑 차례 때 읊는 변곡이고 보면 대개 짐작이 가나, 요즈음 어느 집 요정 마담한테 배웠는지 젓가락으로 필자도 모르는 최신식 '팝송'을 고창(高唱)까지 하는 경지는 기특하다고 본다.
독설만 토하다 보니 귓속이 가려운 것 같아 몇 가지 특기도 소개해야 할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권(權)박사 취미에 시민회관 '쇼'감상이 있는 바, 무대에 나타나는 배우, 가수, 코미디언은 일류에서부터 형편없는 삼류급까지도 전부 빈틈없이 이름을 알고 있으며, '퍼스널 히스토리', '프라이버시' 심지어 다리통에 털이 몇 개 있나 까지 속속 파고 들다시피 알고있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능인의 호적계를 맡았는지 부업으로 흥신소(興信所)를 가지고 있는지, 하여간 그 방면에서의 재주는 비상하다.
권박(權博)의 주도(酒道) (주석에서의 자세)를 간단히 소개하면 한 잔 술에 벌써 넓은 이마에 벚꽃이 피기는 하나 제법 끝까지 따라가며 아직 설렁탕을 빚어내는 풍경을 보지 않았고, 주흥(酒興)이 오르게 되면 의외의 폭음발언(爆音發言)으로 배석한 접대부를 놀라게 하고 다음 순간 '뽀뽀'로 '어프로치'하는 풍류수단도 제법이고 악대 반주에 특이한 '샹송'보행으로 아기(兒妓)를 '리드'하는 품은 가관이다.
필자가 아는 한 아직 외박정사의 일화가 없음이 호가독호(好可讀乎), 석호(惜乎), 독호(讀乎).
폭음심사(暴音深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