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무(朴贊武) 박사를 말한다
우선 보라! 그의 신비한 눈을. 뭇 남성이 동경하고 사랑하는 그 무엇과도 같지 않은가. 구김살없이 고이 고이 안경 너머로 숨어있는 그의 눈은 자세히 볼수록 맛이 난다. 때로는 예술적이요, 때로는 과학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전적 위엄을 간직하고 있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는 초현대적인 요부형으로 변하기도 한다.
참으로 그의 눈은 그의 전부를 대표한다. 공식 장소나 공무집행 때는 눈부실만큼 빛을 낸다. 바야흐로 혜안(慧眼)이다.
그러나 얼근하게 주기(酒氣)가 돌고 기분이 맞게 되면 실오라기 같이 살며시 감은 눈에서 노래가 나온다. 자동적이다. 노래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눈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다. 일단 흥이 나면 앳된 소녀 어조로부터 우렁찬 군가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18번은 '가든 인 이태리'. 그의 18번을 듣고도 감흥을 돋구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적어도 교양있는 남자나 여자는 아니다. 중학 때 그는 보컬트리오의 한 사람으로 순진한 동료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흥겨워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양반의 씨라 예의범절이 엄하다. 따라서 그의 노래는 상당히 비싸다. 말하자면 개흙 속에 있는 맛살이 아니라 창해에 있는 진주라고나 할까.
가장(家長)으로서의 그의 존재는 당당한 것이었다. 직장에서의 별명은 호랑이지만 가정에서는 호랑이의 조부에 가깝다. 집안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놈이 직장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느냐는 것이 그의 변. 그러니까 집안에서 엄해야 한다는 것이 인생관일 수밖에…….
그런데 일단 수영장에 가면 이 사정이 돌변한다. 언젠가 부부동반으로 몇 조가 동해안으로 놀러간 일이 있다. 강릉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게 되었는데 그 꼴이 가관(可觀)이다.
부인은 천하가 다 아는 왕년의 운동선수. 수영도 일급이다. 그렇게 위세가 당당하던 그가 물속에서는 어머니 품에 안긴 젖먹이의 격이다. 그의 과학적인 눈이 모유를 찾는 천진난만한 동자로 둔갑한다. 이런 예는 한두 번이 아니다.
수 년 전에 제주도를 찾았을 때의 일. 서귀포 앞바다에서 배를 탔는데 절벽 밑을 지나가니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금새라도 배가 뒤집힐 것만 같다. 수영에 약한 박(朴) 박사, 돛대를 꽉 붙잡고 원숭이같이 붙어 있다. 그래도 부인들 앞에서 체면은 지켜야 할 처지인지라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는데 그 모습이 우습다기 보단 가련하다. 그 예술적인 눈은 하나님 앞에 요행을 애걸하는 초추상형(超抽象型)이다.
선창가에 닿자 낙원에 상륙하는 개선장군과도 같이 침착하다. 침착한 것이 아니라 얼이 빠진 것이다. 왈 "10년은 감수했다"고. 솔직해서 좋다.
그의 코를 꺾으려면 수영이야기만 무조건 지껄이면 된다. 원래 호랑이와 수영은 인연이 깊지 않은 법.
|
|
| ▲ 근인회 예회를 마치고 서울대 병원 시계탑 현관에서 / 앞 줄 왼쪽부터 홍창의, 송선진, 박찬무 형, 뒷 줄 김종설, 윤경현, 이상일 형, 나, 김교명 (2001. 9. 12.) |
|
그의 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많이 관찰한 눈이기도 하다. 인생을 보았고 낭만을 보았고 탄생의 기쁨을 보아 온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 피로도 겹칠 수밖에.
그에게 있어서 피로를 푸는 방법은 사우나탕. 시간이 맞지 않아서 함께 가게 되는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일단 가 놓으면 제법 사우나탕 전속교사 같은 행세를 한다. 동행자는 누구나 자기 명령에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의 명령은 임기응변적이 아니라 상당히 조직적이고 과학적이다. 엉터리는 아닌 성 싶다.
피로가 풀린 그의 눈은 지혜롭기 짝이 없다.
그에게는 적나라한 인간들을 감상하고 소신을 밝히는 여유가 있다. 어쨌든 그의 눈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 또한 예술이나 과학만이 아니라 의리가 있고 효도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동양적이고 고전적이면서도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감각 또한 일품이다.
특히 현대적 미인 감식안은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보다도 모든 것을 잘 보아 왔으니까.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의 특징은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을 명백하게 구별할 줄 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구별이 눈과 직결되는 것이다. 호랑이 같은 패기와 가냘픈 갈대와 같이 몸을 흔들어대는 댄싱의 모습이 그의 눈에서는 언제고 발산된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학우 중 서신연락이 있는 것은 노병림(魯丙林) 형이다. Wisconsin 주 NEW berlin 에 있는 보훈병원에서 임상약리학을 담당하고 있는 노(魯)형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꼭 보내온다. 훨씬 전의 일이지만 내가 노(魯)형 댁을 방문했을 때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김현규(金賢奎) 형도 시카고 댁으로 방문한 적이 있는데, 요사이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시카고에서 거는 줄 알았더니 서울에서였다. 백씨 김웅규(金雄奎) 박사의 회혼례(回婚禮)에 참석했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고 하여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다.
김광서(金廣瑞) 형은 과거에 여러 차례 만나봤다. 한때는 워싱톤 D. C.에 가게 되는 일이 많아서 그럴 때마다 김(金)형 댁을 방문하고 했는데, 근래에 와서는 그렇지 못하다. 김(金)형은 원래 George Washington 대학에서 약리학 교수로 있었는데 자녀들 학비관계로 임상으로 바꿨다. 노령에 다시 공부를 하여 미국 의사시험에 합격하고 개업을 하게 된 것이니 그의 노력과 기백은 대단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정성장(鄭聖障) 형은 Tenesy Morriston 시에서 살고 있었는데 한때 부모가 보고 있는 앞에서 자녀가 익사한 것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이 참사가 있은 후 소식이 끊겼는데, 그 후 출생한 따님이 Johns Hopkins 의과대학을 나와 활약중이라고 전문하고 있다.
백창기(白昌基) 형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있다가 미국으로 가 있는 것으로 듣고 있는데 소식이 없다.
손의석(孫宜錫) 형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L. A.근처에서 살고 있다. 간혹 서울에 올 때에는 알려줘서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이영희(李榮熙) 형은 일본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누구도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