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부에는 6․25동란이 발발했던 50년 6월까지 근무했다. 50년 초 입학시험이 끝난 후 생긴 일이 생각난다. 학부형 한 분이 자기 아들의 수의학부 입학을 자축하기 위한 만찬을 마련하고 보직교수들을 초청했다. 어지간히 주기가 돌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중학교가 어디냐고 초청자가 묻는다. 경기중학(京畿中學)이라고 했더니 몇 회냐고 한다. 37회라고 답하였더니 다짜고짜로 따귀를 친다. 돌발적인 일인지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뿐이었다. 4년이나 후배인데 건방지다고 한다. 나도 울화통이 터졌지만 선배라고 하니 참기로 했다.
잠시 후 이성을 되찾은 이 선배는 자기의 잘못을 사과했다. 모 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다는 이 초청자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저질렀다고 되풀이 사죄했다. 일생을 통해서 따귀를 맞은 일은 이것이 세 번째이다. 두 번째는 앞서 적은 바와 같이 경기중학시절에 광화문 전차정류장에서 있었고, 첫 번째는 1년 선배였던 박찬무(朴贊武) 형으로 부터였다.
교무과장직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수의학부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많은 해프닝이 있었다. 그 중 두 가지만 소개한다. 한번은 미군대령이 '셰퍼드'개 한 마리를 데리고 내교하였다. 탐이 날 정도로 잘 생긴 개였다. 이 대령은 자기소개를 하며 다른 나라로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개를 데리고 갈 수가 없으니 자기 앞에서 죽여 달라는 부탁이다.
이렇게 훌륭한 개를 왜 없애려 하느냐고 반문했더니 살려두면 결국 보신탕용으로 되고 말 것인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잘 길러줄 터이니 맡기고 가라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완강하게 거절한다. 어떤 주사약을 사용하였는지 모르지만 동물병원장이었던 홍(洪)교수가 조치하였다. 대령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면서 사체를 차에 실었다. 양지바른 곳에 묻고 명복을 빌겠다는 말을 남기면서 떠났다.
어느 날 오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애견이 입원차 병원에 도착했다. 병명이 확실치 않아 임시로 병동 앞 기둥에 매두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개가 없어졌다. 야단이 났다. 총동원되어 찾았지만 허사였다. 경찰도 동원되었다. 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지 않지만 당시는 동숭동(東崇洞) 대학로에 개천이 있었다. 샅샅이 찾아봤지만 여기에도 없었다. 훨씬 후에 종로 근처에서 경찰관이 개를 찾아냈다. 이 경찰관은 1계급 특진했다고 들려왔다. '개팔자 상팔자' 라는 말이 실감을 준 예다. 이 개가 발견된 후 학내에서는 다시 웃음이 살아났다.
6·25동란(動亂)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관찰되고 평가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밀어닥친 북한군(北韓軍)의 침략상은 필설(筆舌)로 표현하기 힘들다. 1950년 6월 25일은 일요일이었다. 오래간만에 고향인 김포(金浦)로 놀러갔다. 저녁때가 되어 귀경하려는데 지프가 있으니 편승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 만나본 중령(中領)계급의 군인이었는데 처가(妻家)에 놀러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당시로는 대단한 고위(高位) 장교였다. 뒷좌석에 자리하고 앞좌석의 이 중령(中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포(金浦)비행장 가까이 왔을 무렵이었다.
10여 명의 헌병이 차(車)를 세우더니 38선에서 북한군(北韓軍)의 침공이 시작되었으며 모든 장병에게 귀대(歸隊)하라는 명이 내렸다고 알린다. 이 중령(中領)은 미안하지만 하차하고 다른 차량을 이용하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이것에 6·25동란(動亂)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된 처음 순간이었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북침설(北侵說)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허구(虛構)한 설(說)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치안국장(治安局長)이었던 장석윤(張錫潤) 선생이 6·25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장 국장(張 局長)은 나의 처백부(妻伯父) 및 빙장어른과 오랜 교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에게는 중학교의 대선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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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발발 4일 전인 1950년 6월 21일 치안국장에 임명된 장석윤 씨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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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李承晩) 박사와는 미국시절부터 측근으로 알려져 있었다. 구(舊) 제일고보(第一高普)를 졸업하자마자 1923년에 도미하여 갖은 고생을 하신 분이다. 미국시절에는 이(李)박사를 도우며 활동하는 한편 제2차 대전 중에는 말레이시아, 버마전선에서 특수 활동을 수행하고 미국승전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해방이 되어 이(李)박사보다 2개월 후에 귀국하시고 이(李)박사의 바른팔 역할을 하셨다. 6·25가 발발하기 1주일 전에는 치안국장으로 임명되었다.
6·25동란이 발발하자 그는 중앙청을 지키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전세가 불리한데도 국방부에서는 북한군이 곧 격퇴될 것이니 모든 시민은 동요하지 말고 직장을 지키라고 해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지 못하였던 일은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장(張)선배는 일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알았지만 부하직원 40명과 함께 중앙청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는 이야기다.
6월 28일에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었다. 그날 저녁 장(張)선배는 부하들과 함께 이태원 산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29일 아침에 해산하여 개인별로 행동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태원 산속까지 총탄이 날아 들어와 단체행동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29일 아침 용산(龍山) 방면으로 가봤지만 적의 탱크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광나루를 통하여 남하할 것을 계획하고 그쪽으로 발을 돌렸다고 한다. 을지로 6가 현 전신전화국청사가 세워진 자리에 옛 경성 서비스공장이 있었고 그 일각에 처백부(妻伯父)의 살림집이 있었는데 장(張)선배가 여기에 들르셨다.
일부러 복장을 지저분하게 꾸민 것이 분명하였다.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나는 장(張)선배를 뵙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별다른 정보기관이 없었던 당시에는 치안국장이 이 분야의 총수였고 모든 정보를 통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분이 나타나셨으니 말이다.
장(張)선배는 나에게 중앙청 앞에 가서 지프와 시체가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하신다. 가보았더니 아닌게 아니라 지프가 한 대 있었고, 그 옆에 거적이 덮여있는 물체가 있었다. 돌아와서 보고를 하였더니 치안국장이 지프를 타고 가다가 사살되었다고 적군이 떠든다는 이야기다. 자신은 엄연히 건재하고 있는데 우스꽝스럽다는 말씀이다.
처백부(妻伯父) 베적삼과 바지를 얻어 입고 장(張)선배는 광나루 방향으로 떠나셨다. 나의 동행을 거절하면서 단신으로 행동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하시며 떠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