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에 경기도 김포군 <진성보통학교(현 하성초등학교)에서 나의 학교교육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3킬로미터였다. 4년제 보통학교였으며, 학급 수는 2개였다. 일본인 교장과 한국인 훈도 한 분, 즉 두 분의 선생이 계셨다. 일본인 선생은 2-4학년을 맡았고, 한국인 선생은 1-3학년은 담당했다. 3학년까지 이 학교를 다니다가 상경하여 당시의 죽첨(竹添)보통학교(현재의 김화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 선친께서 발이 넓으셔서 이와같은 전학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성보통학교가 4년제 학교이어서 중학교에 전학하려면 어차피 6년제 학교로 옮겨야 했다.
죽첨보통학교로 전학한 후 며칠동안은 불안하기만 했다. 웬지 겁도 나고 학교가기가 무서웠다. 울기도 꽤 울었다고 회상된다. 그런데 이때 용기를 물어넣어 주신 분이 이공우 선생이셨다. 이 선생께서도 그 해에 전입해오셨는데, 오시자마자 우리 담임선생이 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선생께서는 “너는 얼굴은 별로 어렵게 생기지 않았는데 무엇이 그렇게 어렵게 생각되느냐”고 타일러 주시며 “나도 새로 왔고 너도 새로 왔으니 힘을 합해 잘해나가자”고 격려해주셨다.
그후 이 선생에 대해서는 어린 마음에도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잘 따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 선생께서는 만능이셨다. 학업은 물론, 음악에도, 미술에도, 체육에도 일인자이심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존경심이 절로 생기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 선생의 지도로 학교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공부하는데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졸업할 때까지 담임선생이셨으니까 3년 동안 됫바라지를 해주신 분이다.
당시의 명문고이지만 경성제일고보(현재의 경기중고교)에 입학하였는데, 이것은 이 선생의 덕분으로 믿고 있으며 지금도 항상 감사하고 있다. 이 선생에 대한 느낌과 인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간혹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관하여 질문을 받는데, 그럴 때마다 서슴없이 이공우 선생이라고 대답한다.
공교롭게도 막내 사위인 안화승 군의 부친인 안의선 형도 나와 길을 밟았다. 안 형은 황해도 출신인데 나와 같은 해에 죽첨보통학교로 전학해와서 급우가 되었고, 제일고보에도 같이 진학하였다. 형 억시 이공우 선생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었다. 3남인 화승 군이 나의 막내사위가 되기 전에 타계하였는데, 우리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이공우 선생에 관하여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1952년 가을이었다고 기억되는데, 전선에서 우연히 이 선생을 뵙게 되었다. 당시 나는 경기도 포천에 위치했던 미 제9군단 민사처병원의 병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병원 구내를 순시하던 중에 낯설은 노인 한 분이 페인트 칠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서 가만히 보니 이 선생 아닌가. 나도 놀랐지만 이 선생께서는 더욱 놀라신 것 같았다. 사연을 여쭈어보니 개성에서 제일 큰 초등학교의 교장을 맡고 계셨는데 6‧25사변이 발발하자 아드님 한 분만을 데리고 허겁지겁 남하하였다는 것이다. “얼마동안만 지나면 다시 돌아가게 되겠지.” 하고 있었는데 결국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고 넋두리를 하신다.
일거리를 구하다보니 포천 주둔 미군부대의 도장공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이때까지도 비극을 수없이 맛보았지만 이 선생과의 조우는 더욱 전쟁의 쓰라림을 절감하게 하였다. 이 선생과의 생활이 얼마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이 선생이 본래의 작업을 살리실 수 있도록 뛰었다. 마침 경기도 학무과에 죽첨국민학교에서 근무하시던 박중강 선생이 계신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는 경기도청이 서울에 위치하였고 근무지인 포천에서 서울을 다녀오는데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박 선생을 뵙고 이 선생 말씀을 드렸더니 깜짝 놀라셨다. 박 선생의 도움으로 이 선생은 포천읍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초등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셨다. 몇 년 간이나 그곳에서 근무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근무하시는 동안에 몇 차례 방문한 일은 있다.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단구의 이 선생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1954년 내가 미국으로 건너간 후 포천에서 서울 근교의 학교로 전근하셨다고 들었는데, 찾아뵙지 못했던 것이 한 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저 세상에서 괘씸한 녀석이라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